드디어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다 읽게 되었다. 왠만하면 앞서 <일리아스> 서평에 썼었던 중복된 내용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도 혹시라도 수많은 <오뒷세이아> 혹은 <오딧세이아> 번역본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나라 번역 현실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번역본의 가장 큰 명제는 언제나 가장 좋은 번역본은 해당 언어에 능통하면서 해당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사람이 직접 번역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인문/사회 분야 책은 많은 옮긴이의 노력 끝에 좋은 번역서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대표적으로 나는 김만수 교수가 번역한 <전쟁론>의 번역본을 보고 이건 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했었다. 최초로 독일어→한국어로 번역한 완역본인데다가 거의 책의 1/3을 차지하는 옮긴이의 주석은 옮긴이의 정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너무 많은 주석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긴 한다.) 하지만 자연과학 책의 번역 현실은 굉장히 취약하다. 대표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 최악의 번역본으로 꼽는 책이 바로 도올 김용옥의 형님인 김용준 선생이 번역한 <부분과 전체>이다. 이건 진짜 번역도 책도 아니다!! 대체 왜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별점을 높게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김용준 교수의 다른 '한글' 책들은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 챕터는 구어체를 쓰고 다른 챕터는 문어체를 쓰는 등 딱 봐도 각 챕터마다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줘서 번역한 것이 눈에 띄는데 왜 사람들은 별점을 높게 주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책이 <서울대 100권 추천 도서>에 포함된 것을 보고 내가 멍청해서 이해 못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높은 평점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좋은 번역본과 옮긴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을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기 위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감히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번역에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좋은 옮긴이는 <천병희> 교수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YES24에 올라온 천병희 교수의 번역관을 아래 그대로 옮겨 왔다.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 라틴 고전들도 원전으로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작가 또는 저자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정확히 알아야 우리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입학하자마자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계속해서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라틴 고전을 편역하는 수준을 넘어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잘된 우리말 번역이 잘된 영역이나 독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원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어를 배운 지가 벌써 50년이 훨씬 넘었고 번역할 때면 영역 몇 가지와 독역 몇 가지를 참고하니까 계속해서 독일어와 함께하는데도,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잘된 독역이라도 읽어 보면 알쏭달쏭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빗대어 말하자면, 외국어 번역을 읽는 것이 달밤에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 우리말 번역을 읽는 것은 대낮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일 경우 말입니다." 결국 가장 좋은 길은 해당 언어를 배워 원전을 읽는 것이고 차선책으로는 한글 완역본을 읽는 것이고 그조차 안 되면 영역본이나 중역본을 읽으라는 말이다. 그 만큼 자신의 번역본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지만 이 책에서도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2006년에 주석을 첨가하면서 증가된 주석 번호를 그대로 두어 잘못된 주석을 찾아가게 하는 잘못은 여전하다. 또한 왠만하면 지도 하나 정도는 첨부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단순히 어떤 지명이 어디에 있다고 주석에서 설명하면 그냥 읽고 넘어가지만 지도가 같이 있다면 좀 더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일리아스>와 비교해보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뒷세이아>는 일종의 모험담에 가까워서 단순히 영웅담에 그쳤던 <일리아스> 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나는 이 두 개의 서사시가 같은 인물이 썼다는 점에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했고 이 책 뒷편에 있는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라는 글에서도 말하듯이 이상화된 자연이 있는 <일리아스>와 달리 <오뒷세이아>에서는 자연의 힘 앞에 주인공은 무력하며 비유 역시 <오뒷세이아>에서 훨씬 적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리아스>에서는 사납고 자제력 없고 굽힐 줄 모르고 오직 불멸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아킬레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에서는 참을성 많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오뒷세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일리아스>가 쓰여질 당시에는 용감한 군인이 필요했던 사회적 배경에 비해 <오뒷세이아>가 쓰여질 당시에는 참을성과 임기응변에 능하고 모험심이 강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던 사회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토(Mentor)가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떠나며 자기의 재산을 관리해 줄 것을 부탁한 친구로 후에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훌륭한 조언도 해준 맨토르(Mentor)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만큼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미치는 영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번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 함께 호메로스가 안내하는 세계로 탐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