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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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이른바 [고전]'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는다. 분명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고전이 전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시대에 맞는 구체성보다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쓰인 책이 이른바 고전으로 전해지게 되어 오늘날 이렇게 고전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은 이런 고전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고전에 '칼집'을 넣은 책이다. 사실 되도록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아무도 고전을 찾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칼집'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씁씁함을 감출 수 없다. 또한 그나마 제대로 '칼집'이 된 책을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 용으로 나오는 책들은 이리 저리 난잡한 '칼집'으로 본래의 뜻을 찾기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 만큼은 제대로 '칼집'을 넣은 책으로 고전에 담긴 의미는 잘 살리면서도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게 잘 버무려 놓았다. 하지만 원전을 읽지 않는다면 수박 겉 햝기에 불과하므로 다음에 [논어] 원전을 찾아 읽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 동양 철학의 [논어]를 찾으면 너무도 많은 책이 있어 놀라게 된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의 경우 원문 보다는 이를 해설한 '주석'이 중요한데 사람마다 논어 원문을 해설하는 주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책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정통적인 논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배병삼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김학주의 [논어],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 도올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세트]가 좋은 논어 책이라고 생각된다. 배병삼 교수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는 한글 세대를 위해 쉬운 우리말로 풀다보니 의역이 좀 심한 느낌이 있지만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쓰면서도 원문에 비교적 충실하였고 김학주의 [논어]는 딱딱하긴 하지만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 돋보이며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번역한 것으로 가장 정통적인 논어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도올의 [논어한글역주세트]는 도올 김용옥의 엄청난 노력이 담긴 역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이제 이 책 내용을 살펴볼까 한다. 3번째 챕터인 문명을 숨을 쉰다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팔일 편에서는 글쓴이는 공자는 사회를 버리고 자기 몸의 안전만 취하는 이기주의와 국가가 개인을 위협하는 폭력인 전체주의 사이에서 이른바 중용을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p.71) 일단 [논어] 속에서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 시각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글쓴이가 지적하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찾기는 힘든 일 같다. 공자의 비판은 전체주의에 대한 것보다는 민생과 상관없이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전쟁을 거듭하는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이지 이를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은 '전체주의'란 단어에 대해 글쓴이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공'이라는 제자-공야장 편에서는 [논어] 9장 12편의 아래 내용을 단순히 돈에 밝은 자공의 재능과 그를 둘러싼 상업적 환경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p.86) 이렇게 단순히 볼 것이 아니라 공자는 자신의 재능을 썩힐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뜻을 펼쳐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옳은 해설이라고 보인다. 이런 해석이 은둔자와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일관된 부정적 시각에 알맞는 해설로 보여진다.

 

 자공이 여주었다. "아름다운 구슬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궤짝 속에다 감춰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값에 팔아야 할까요?"

 공자 말씀하시다. "팔아야지. 팔아야 하고 말고! 다만 난 제값에 팔리길 기다릴 뿐이다."(p.80)

 

 이어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 사이에 등호를 그리는 이른바 충효 사상은 [논어]와 상관없는 후대 천하통일 시대의 논리라는 지적은 놀랍다. 즉, [논어]에서의 충(忠)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성실성'을 뜻하는 말인데 비해 이것이 임금에 대한 충성의 뜻으로 쓰인 것은 전국 시대의 [순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p.110) 나는 국민 의례나 애국가 제창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국민 의례 할 때도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고 애국자 제창할 때도 그냥 가만히 있곤 한다. 이렇게 국가에 대해 충성심은 이런 요식행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개인을 위해줄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어서 공자 당대에도 공자의 가르침이 먹고 사는 현실적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p.206) [논어] 13장 4절에서는 번지가 농사 기술에 대해 공자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는 자신은 농사 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번지 보고 소인배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시대 정신이 요구하는 바는 농사 기술이 아니라 농사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데 있다는 점을 공자는 지적한 것이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자의 사상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곤 하는데 당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런 전문 기술보다는 전문 기술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다만 곳곳에서 글쓴이의 현 시대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는데 글쓴이는 이와 같이 비판한다. "결국 바른 색깔을 흩트리는 간색(間色), 노래 중에서도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히는 사태, 그리고 겉치레 말로 여론을 오도하여 끝내 공동체를 망치는 언어와 실천 간의 괴를 증오한다는 것이다."(p.256) 여기서 앞에서 말하는 간색(間色)은 비유니까 그렇다 쳐도 두번째 구절인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힌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글쓴이의 주장 속에는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숨겨져 있다. 클래식이 최고의 음악이라고 믿는가? 새로운 해석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악보 중심주의, 관객과 연주자를 완전히 분리시켜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클래식 음악회의 풍경, 어느 누구도 길 가며 MP3를 통해 클래식을 듣지 않아 대중에서 외면받고 새로운 클래식 작곡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은 클래식은 이미 '죽은' 음악이자 박제된 음악이다. 그런데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렵힌다니…. 글쓴이의 클래식 중심주의, 좀 더 나아가 서양중심주의에는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른바 동양 철학을 했다는 분이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이 책은 [논어]라는 고전에 잘 '칼집'을 내어 청소년이 먹기 좋게 만들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논어]를 접하고 이후 원전을 통해 논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인(仁)을 추구하여 군자(君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은 철학보다는 윤리 혹은 사상으로 보아야 하는바 [논어]를 읽어도 이를 실천할 수 없다면 [논어]를 읽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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