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라틴 고전을 읽으려고 큰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떤 번역본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번역자가 <천병희> 선생님인 것을 찾는 것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라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 분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 것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도 깔끔한 번역과 편집은 빛을 발한다. 특히 행을 표시하고 우리나라와 원문 사이의 행을 최대한 맞출려고 노력한 점이나 현존하는 그리스 문헌이 아티케 방언을 따르고 있으므로 번역본에서도 아티케 방언을 사용한 점이나 자음이 중복되는 경우 둘 다 읽어주는 것은 최대한 원어와 비슷하게 음절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즉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 이렇게 표시하여 낯설게 느껴지지만 라틴어어 그리스어는 모든 자음을 있는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다만 2006년에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주석을 추가한 것 같은데 제 19권의 4번째 주석은 제 8권의 9번 주석을 참고해야 하는데 제 8권의 8번 주석을 참고하라고 적혀 있어 추가한 주석 증가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깔끔하게 번역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자그마한 오탈자나 잘못된 표시가 있는 경우 그 책에 대한 인상이 바뀌기 쉽다. 개정판에서는 이를 수정하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먼저 글쓴이인 호메로스(Homeros)에 대해 살펴보면 이른바 <호메로스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른바 호메로스가 과연 한 명이냐 다수냐 하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다수라는 의견이 힘을 받다가 근래 한 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어 현재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어찌되었건 다수의 학자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말경에 활동하였으며 활동 장소는 이오니아 지방이라는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가 남긴 서사시 두 편이 바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은 이른바 [트로이아 서사시권]에 속해있다. 즉, 우리가 아는 '가장 예쁜 여신에게'라고 쓰여진 황금 사과로부터 트로이 전쟁,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여행 등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총 8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일리아스>를 읽을 때 황당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부터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부터 <일리아스>는 시작되어 헥토르의 장례로 끝나는 것이다. 미리 신화나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난감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트로이의 별명인 'Ilios'부터 유래된 <Ilias>는 15000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쳐 호메로스는 최고(最古)의 시인으로 숭상 받고 있는 것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비판한 점도 있지만… 이 서사시가 대략 기원전 8세기 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플롯이나 구성 등에 대한 비판은 부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우연히 물리적으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꾸준히 인용되고 읽혀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서사시이다. 현재 우리 나라 글 중에 기원전 8세기의 것이 남아 있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는 고전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에 중심을 두고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철학자 플라톤은 비교육적이라고 호메로스를 비판했지만 <일리아스>가 주는 교훈에 집중해서 읽는다면 기존 문학과 다른 서사시가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