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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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책을 읽는 방법 중에는 어떤 한 가지 주제를 잡고 이와 관련된 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어나가는 방법과 어떤 한 사람을 읽어나가는 방법, 즉 한 글쓴이의 책을 모두 읽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이 책은 독서클럽 인문/사회 1기(지금은 <e-멋진 책세계>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08.11월의 인물로 "서경식" 선생님을 정하고 읽어가는 중에 처음 읽게 된 책이다. 기본적으로 인물을 읽어갈 때도 오래된 책부터 읽어나가면서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정석'이기 대문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하지만 "서경식"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부담되는 일이었다. e-멋진 책세계로 바뀐 이후 첫 시작을 여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독서클럽 인문/사회 2기 분의 메일에는 서경식 선생님의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을 읽고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보다는 젊은이의 호기심과 호승심이 나를 이끌었다. 아직 젊어서 겁이 없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단점이 있는 나는 아무리 내용이 거슬러도 담담히 이 책, 혹은 서경식 선생님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서경식 선생님을 완전히 이해/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 책은 200여쪽 정도로 얇은데다가 책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저 서양미술에 대한 에세이 정도로 보이지 않던가?

 그러나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미술 에세이가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인 [나의 서양미술순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나""서양미술"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글쓴이 서경식 선생님의 개인적 체험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불행한 가족사와 접점이 있는 책형도나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그래서 였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불행했던 한국 현대사가 떠오르고 서경식 선생님의 두 형님과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 온전히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를 바로 자신의 형이라고 부른 것(p.60)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고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는 바로 자신이라고 표현(p.110)하는 것은 바로 서경식 자신, 즉 "나"를 서양미술을 통해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바로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Christ showing his wound)]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두 손의 손가락들을 오른편 옆구리의 상처 속에 집어넣어 그것을 확 열어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글쎄…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 책이 바로 [상처를 보여주는 서경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 곳곳에 담겨있는 서승, 서준식 형님의 고초와 부모님의 침략자의 나라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그리스도와 서경식 선생님은 이렇게 상처를 보여줌을써 무엇을 알리고자 했던 것인가?

 어쨌든 서경식 선생님의 첫 책은 나에게는 그저 무난가헤 다가왔다. 아무리 남의 아픔에 민감한 사람이라도 남의 고통을 그대로 자신이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감정이 메마른 나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AT필드를 뚫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저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으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역사 앞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을 다하고 계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올 뿐이다. 자 이제 다음에 읽을 책은 [소년의 눈물]인데 과연 나에게 어떻게 이 책은 다가올지 기대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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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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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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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경계에서 말한다(talking at the edge)"란 제목으로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에 연재되었던 "우에노 치즈코 - 조한혜정 서신교환"을 묶어서 낸 책이다. 조한혜정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해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는 도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주로 사회학과 여성학 연구에 집중하면서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두 명의 글쓴이의 약력을 보고 있으면 두 분 편지의 주제가 주로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름지기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책의 제목과 차례를 읽어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보아야 하는데 이 책의 제목과 차례에서는 전혀 "페미니즘"이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드를 내린 무방비의 상태에서 크게 한 방 맞았다고나 해야할까… 책의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특히 기존에 여성학 강의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단어나 주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으며 두 분의 거침없이 솔직한 말에는 조금은 "질리게" 되었다. 원래 한 번 책을 잡으면 도중에 잠시 접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 책은 절반 정도 읽은 후에 잠시 커피 한 잔 하면서 쉬는 것이 필요할 정도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나 잠시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거침 없는 말에 대해 "여자 답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정의하는 것 같아서 반성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편지인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 연구의 차이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학위나 교직 자격이 없어도 강단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라는 비관세 진입장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본 대학은 지금가지 국산품 우위를 지켜왔다(p.56)고 하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미국 박사 학위증은 성차별을 상쇄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 '증서'였음(p.74)을 고백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던 것도 이런 사대주의적 토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내 후배 중에 조한혜정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하자센터"의 캠프에 자신이 봉사활동 하는 포이동 판자촌 동생들을 데리고 참가한 친구가 있는데 그 후배 말로는 하자센터 역시 일종의 문화 엘리트들을 위한 장소며 그들을 키우기 위한 장소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조한혜정 교수도 미국 사대주의, 특히 엘리트주의에 기대서 페미니즘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재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는 조한혜정 교수가 요즘도 386세대를 보면 너무 규범적이거나 상대주의적 사고 훈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괴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가는 일(p.111)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국 386세대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조한혜정 교수나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올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한국의 386세대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는데 이런 결과가 바로 386세대의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편지인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이건 나름 유익했지만 이 부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로 많이 거북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우에노 치즈코(p.143)와 조한혜정 교수의 글(p.131)은 이것이 과연 남자가 여자를 비교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만약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둘을 비교하는 발언을 하면 기분이 나쁘고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데 비해 이렇게 남자를 여성이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머지 절반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개호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개호 보험"이란 지금까지 정당한 평가나 댓가를 받지 못하고 주로 며느리가 해왔던 노인 봉양을 국가에서 보험을 통해 이런 여성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좀 더 질 좋은 봉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가 남아있으며 자식을 일종의 노후 대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의미있는 제도로서 한국에서도 토론할 가치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은 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기존에 여성학 강의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했던 남자들로서는 이런 담론이 있다는 것이 대해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거북하겠지만 이런 책을 통해 좀 더 양성 평등에 다가갈 수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만 진행되었던 여성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어떤 연대가 가능한지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니 차마 만점은 주지 못하지만 이것은 내 취향으로 존중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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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 - 1916~1943
윤치호 지음, 김상태 엮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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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치호…어찌되었건 일제시대 조선의 최고 원로로서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본인의 경우 윤치호에 대해서 딱 한 마디로 "친일파의 대부"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다른 독서모임에서는 최소한 윤치호는 기존의 친일파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친일파면 친일파지 무슨 고려할 것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달리 친일파의 숙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스스로 윤치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 <윤치호 일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징검다리였다.

 원래 윤치호 일기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계속되어서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특히 영어로 대부분이 쓰여져 원문을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윤치호 일기 중에서 일제시대의 것만을 대상으로 각 주제에 맞게 발췌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 일기를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배열할 경우 흐름을 잡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3.1운동 전후], [만주사변 전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전후], [일제하 조선 기독교와 윤치호], [윤치호가 본 일제하 조선의 자화상] 이렇게 5개의 주제로 윤치호 일기를 발췌하여 구성한 점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단순히 시간 순서로 번역하는 것이 쉬웠을텐데 이렇게 일일이 주제별로 발췌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일단 윤치호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서 최소한 윤치호가 장장 60년 동안 매일같이 영어로 일기를 쓴 점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일상생활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상황은 물론, 국제정세와 국내 정국의 동향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윤치호 일기는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적잖이 나타나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집필 당시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행위를 과장 또는 은폐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드러나는 윤치호의 생각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윤치호의 영향을 받아서 매일 매일 일기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일기라 함은 원래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역할도 하지만 윤치호 일기를 보니 역사적 사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윤치호 만큼 역사에 영향을 미칠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준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윤치호 대하여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주관적'으로는 분명히 애국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객관적'으로는 나라와 민족을 저버린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평하고 있다. 아마도 김상태 교수는 윤치호에 대해 이른바 쉴드를 쳐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같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나는 김상태 교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윤치호 일기를 끝까지 읽어본 결과 윤치호는 3.1 운동에 반대하고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했을 때 찬성 의견을 방송을 통해 발표하고 각종 친일 단체에 참여했으며 특히 기독교 YMCA의 친일을 주도하는 등 분명 친일파 대부로서의 행동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주관적'으로는 애국자라는 등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윤치호를 감싸주는가? 설혹 윤치호가 '주관적'으로 애국자라고 하더라도 김상태 교수가 윤치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이상 어떻게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이른바 지식인이 어떻게 친일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독립협회 회장등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진영의 존경받는 원로로 추앙받던 윤치호가 변절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하나 둘 깨달으면서 존경받는 원로가 사라진 우리나라의 역사의 비참함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읽다보면 윤치호가 조선 민족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함으로써 읽기에 불편한 곳도 곳곳에 있지만 한국 일제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으로써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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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연구 -하 - 독립신문.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사상과 운동, 신판
신용하 지음 / 일조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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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협회]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신용하 교수의 <독립협회연구>의 하권에서는 상권에 이어서 주로 만민공동회에 대한 연구, 독립협회와 황국중앙총상회의 상권수호운동,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이라는 3가지의 큰 주제를 설정하고 있다. 특히 독립협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만민공동회에 대한 연구 내용이 눈길을 끌었는데 마치 만민공동회를 보고 있으면 현대의 촛불집회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만민공동회와 촛불집회를, 친일/친러 수구파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신용하 교수의 연구를 읽을 수 있었다.

 신용하 교수는 만민공동회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특히 만민공동회와 헌의6조는 민중이 만든 국정개혁의 결의안이었다는 점과 민중이 주도가 되어 내정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해결 방안을 의논한 전혀 새로운 민중대회의 방식이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만민공동회를 통해 주장된 헌의6조와 이에 대한 고종 황제의 답변인 조칙5조와 함께 새로운 개혁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짧은 기일에 자주부강한 나라를 이룩할 전망이 보였으나 정권에서 밀려난 수구파에게 불안감과 위기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독립협회 간부들을 모함하여 다시 한 번 수구파 내각이 수립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 하였는데 이렇게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대한 연구를 보다 보면 데쟈뷰 현상을 느끼지 않는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反2MB연합과 촛불집회와 뭔가 비슷한 점이 보여지지 않는가?

 이어서 상권수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19세기 말 개항에 따라 외국 상인들의 한국 상권 침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개항장 10리 이내에서만 자유로운 상행위를 영위하도록 허락했으나 조약을 개정하면서 개항장 100리 이내에서도 자유로운 상행위가 가능하도록 하고 점차 개항장이 늘어나면서 결국 전국이 외국 상인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한국 상인들은 1898년 여름 황국중앙총상회라는 상인단체를 조직하고 독립협회와 연대하여 상권수호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898년 말에 독립협회와 함께 황국중앙총상회가 해산당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되었으나 외국 상인들의 상권침탈에 대항하여 서울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상인단체를 조직하여 상권수호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신용하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참고로 글쓴이는 이 장에서는 수많은 표와 자료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글쓴이의 노력은 높게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사회학적 해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신용하 교수는 총 10가지로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을 분석하는데 요컨데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은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구사회체제를 번혁하여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려는 사회체제의 변동/변혁의 사상이었으며 독립협회가 19세기 말 한국에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려는 새로운 사회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립했고 그 실천운동을 전개했음은 한국사회사상사와 민족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으로 독립협회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어려운 면이 있으니 이 책을 읽기에 앞서서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란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특히 요새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만민공동회와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더욱 더 뜻깊은 독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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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연구 -상 - 독립신문.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사상과 운동, 신판
신용하 지음 / 일조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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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나라에서 1890년~1910년까지의 역사는 거의 잊혀진 역사로 취급받고 있다. 조금 더 크게 본다면 조선 말 철종부터 해방 직후까지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치욕스런 역사라는 명분 아래 되도록 감추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대하고 훌륭한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욕스런 역사를 통해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구 열강 사이에서 어떤 처신을 해야되며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이른바 4대 열강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아야하는 현재에도 시사할 점이 많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조선 말 철종부터 해방 직후의 역사를 숨김에 따라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렸을 뿐만 아니라 친일파의 역사 또한 숨겨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조선 말 철종부터 해방 직후의 역사, 특히 1890~1910년까지의 역사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1890~1910년까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것이 이른바 [독립협회]이다. 그러나 [독립협회]에 대해서는 그저 서재필이 세운 단체이며,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는 수준의 서술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행 고등학교 국사책이며 학술적인 면에서도 [독립협회]에 대한 연구는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의 이 책이 나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신용하 교수의 이 책은 [독립협회]에 대한 연구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아직까지도 점유하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이 1976년인데 30년이 넘어서 까지 이 책의 아성을 넘볼만한 연구 성과는 전무해보인다. 다만 아무래도 박사 논문으로 쓰여진 책이라서 일반인이 읽기에는 분량면에서 저어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6년에 신판을 내면서 현대어에 맞게 수정했으며 글자도 크게 바꾸었기 때문에 읽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상권에서는 주로 "독립신문""독립협회의 창립과 사상"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먼저 독립신문에 대해 간단히 서술해보면 1896년 4월 7일 한국역사상 최초의 민간신문으로 창간된 "독립신문"은 서재필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국내 개화파와 서재필의 합작이었으며 제작 측면에서는 서재필과 주시경의 합작이었고 결국 "독립신문"은 한국사회의 발전과 한국인의 의식 및 사상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커다란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신용하 교수의 결론이다. 이것을 보면 그전까지 과소평가되고 있었던 [독립신문]이 얼마나 민중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으며 특히 현재와 비교해서 언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언론이라 함은 양날의 검으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짐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어서 "독립협회"에 대해서는 189년 7월 2일에 독립문/독립공원/독립관 건립을 위해 창립되었을 때에는 고급관료클럽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1897년 8월 이후부터는 민중이 현저히 진출하여 결국 독립협회는 민중의 사회단체로 전화되었으며 열강의 세력 균형이 이루어진 1897년부터 1903년까지의 6년간이었으며 이 짧은 기간에 다시 한 번 민중의 힘을 기초로 자강을 실현함으로서 자주독립을 지키려 한 것이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으로 이로써 한국침략을 노리던 제정러시아와 일본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독립협회의 자주민권자강운동은 19세기 말 한국의 시민/민중에 의한 근대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개혁운동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글쓴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숨겨진 역사인 [독립협회]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박사 논문이라서 조금 난해한 점은 있지만 현존하는 [독립협회] 연구 성과물로서는 이 책이 독보적이며 신판을 내면서 현대어로 바꾸고 활자를 키웠기 때문에 지레 겁 먹지 말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다만 신판을 내면서도 오타가 2~3군데 보인 점은 옥의 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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