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이어 읽기 좋은 글

정수일 선생님의 이슬람문명과 이븐 바투타 여행기




 


따우님의 터키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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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우
으헥;;; 제 페이퍼 링크를;;; 부끄럽사옵니다;;;

이러실 줄 알았으면 끝까지 쓸 것을요 !.! - 2004-12-06 23:11
 
조선인
어머머, 현장 잡았다. 따우님 20일까지 안 온다고 했잖아요? ㅋㅋㅋ - 2004-12-07 17:57
 
따우
('' )( ..) 잠깐 마실 나온 거여써요 !.!

뽀글뽀글뽀글... - 2004-12-08 13:52
 
진/우맘
ㅋㅋㅋㅋㅋㅋ - 2004-12-1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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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자연 속에서 진화한 인간이 여행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는 본능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낯선 나라의 풍광을 접하면서 홀로 걷는 걸음. 이방인만의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걷는 고통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선택하고.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에 걷는 행위가 포함된 것은 분명하다.     
꽤 두꺼운 책의 양에 비해서 내용이 술술 익히는 장점이 있다. 번역도 매끄럽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기록이 문학적이고 아름답다. 비슷비슷한 지역을 묘사할 때도 그 고장만의 색채를 담아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터키인들의 오랜 전통인, 황홀한 손님맞이도 흥미롭다. 게다 저자가 위험에 빠졌을 때, 아슬아슬한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토사곽란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육체적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렇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터키의 문화를 접하는 재미와 소설같은 내용에 슬슬 가속도가 붙는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듯이, 보다 인권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시스템 속에서 자라난 저자가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동양사회 - 터키는 서양과 동양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리학적인 위치에서 동서양을 구분하기가 애매하지만 - 를 조금 평가절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이 사람도 터키의 지도층을 불신하기 때문에 일부분 수긍하긴 했지만 국지전으로 몸살을 앓고 오랜 관습이 성문법처럼 통하는 중앙아시아의 국가라면 사소한 불친절이나 황당한 몸수색, 군대에 의한 강제연행은 좀 이해해 줄 법도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저자도 인정하듯이 터키의 아름다운 고원과 터키인들의 따뜻한 손님맞이는 커다란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목표를 향한 중단 없는 걸음 속에서 저자를 더욱 나다운 나와 마주치게 하고 걸을 수 있게 한 힘은 터키의 자연과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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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리뷰는 못 퍼오고 페이퍼만 올려둡니다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산지의 그늘 습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 높이 17~30cm 정도이다. 뿌리줄기는 짧고 곧다. 잎은 무더기로 나와서 꽃방석같이 퍼지고 거꾸로 선 바소꼴이며 녹색으로 윤기가 있다. 꽃줄기는 4월에 잎 중앙에서 나오고 길이 10∼15cm이지만 꽃이 진 후에는 60cm 내외로 자라고 3∼10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처녀치마란 잎이 땅바닥에 사방으로 둥글게 퍼져 있는 모습이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작가는 대체 무슨 뜻으로 처녀치마라는 제목을 턱 하니 내걸었을까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저런 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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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3-0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처녀치마가 꽃. 풀이름이군요. 흐음. 이거 차력도장님이 올리신 건가요?
 
 전출처 : 진/우맘 > 딱, 걸렸어요

사실 2005년의 첫 책은 처녀치마인거나 마찬가지였는데...마지막 단편에서 딱, 걸려서 오도가도 않습니다. 당최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고....

'그것은 아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조선인
재밌기보다 우울했죠.

도움말을 좀 드릴까요? ㅋㅋㅋ - 2005-01-11 08:35
 
조선인
주인공은 '문'이죠. 그의 연극부 여선배가 상을 당한 거구요, 문도 선배도 학생운동 또는 문예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적이 있구요, 아마 그 사건을 전후로 둘이 깊은 관계를 가졌었나 봅니다. 하지만 문이 석방후 고향집에 내려가있는 동안 결국 헤어졌고, 선배는 고시에 붙었습니다.

문 역시 고시원에 들어가 아마도 낙방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겠죠(친구는 이미 결혼까지 했고, 고시원 총무의 혼잣말이나 고시원 동료의 술주정 등을 미루어 보아). 그러던 어느날 문이 고향집에 갔다 돌아온 저녁 선배의 자살 소식을 신문에서 보게 되었고,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아마도 그 친구 역시 선배를 짝사랑했던 사람일 거구요.

문은 장례식에 가는 대신 고시원 동료와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한 동료는 여자손님을 희롱 또는 강간하려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갑니다. 한편 자칭 영화감독이라는 사람과 술을 마시던 또 다른 여자손님은 문이 언젠가 하룻밤을 같이 보낸 그, 아마도 첫사랑인 그임을 알아봅니다.

고시원 총무가 와서 경찰서에서 합의금을 내고 동료를 데려간 뒤 문은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친구를 불러냈지만, 술에 취해 버스 밑에 기어가 잠이 듭니다. 친구가 왔을 땐 우연히 영화감독과 그 일행이 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구요. 감독 일행이 술을 마시고 나왔을 때, 마침 아까 고시원 동료에게 희롱당했다가 합의금을 받았던 여자가 그 돈을 갈가리 찢는 것을 함께 구경합니다. 그리고 문이 버스밑에서 기어나와 휘적거리며 가는 것을 보고 자칭 감독을 떼내고 여자가 쫓아와 부축을 해주는 장면으로 끝나죠.
책을 회사에 두고 와 설명이 영 부실하네요. 더 헷갈리려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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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절까진 재밌게 읽었다. 사실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몇몇 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시대적인 혹은 개인적인 상처에 관해 이야기한다, 라는 건 얼추 짐작하겠는데 아직도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귀가 딱딱 맞게 적절한 비유를 구사하는 권여선식 표현은 소설에 긴장감과 활력을 준다. 특히 [트라우마]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턱의 외상이라던지 손등의 화상은 철거투쟁의 과거와 무기력한 현실의 심리적인 상처와 분노를 상징적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후일담 문학이라고 표현하기엔 개인적인 심리상황을 극대화시키고 있어서 아무래도 무리수가 따를 것 같다. 

주고받는 간결한 대화가 매력적이었고 신선했던 작품은 [12월 31일]. 이미 지나가버린 한 때를 추억하는 형식인 이 소설은 현실적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 사랑했지만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그래서 적당히 변명하게 되고. 그렇지만 이젠 그런 옛 추억의 감정마저도 세월이 흘러 둔탁해져버렸다고 체념하는, 변화하는 또 다른 자의식.

간결하고 낯선 대화형식은 [두리번거리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상처는 여주인공의 짝짝이 가슴(혹은 절개된)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중반부터 이야기가 흐트러진다. 어떤 의도를 말하려 하는 것이지 알 수 없지만,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핵심을 빗겨나 겉도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적인 상황에 많이 기대었고 뜻밖에 마무리가 경쾌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읽어야 잘 읽힐 것 같은 단편이다.  에피소드라고 치부하기엔 좀 무겁고 아니라고 하기엔 좀 가볍고.  

기존의 여성작가들처럼 조금 식상했던 소설은 [처녀치마]와 [수업시대]. 여전히 주인공들의 대화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가족과 현재의 주인공을 연결시켜 풀어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보는 죽어서도 바보라면서요. [처녀치마]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절망감. 꼭 그래야만 하나. 빈 껍데기같은 남성의 세계 안에서 함께 있어야만 하나, 라는 독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반발, 불만 혹은 어이없음. [수업시대]에서 보여주는 사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폭발하도록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건 좋은데 굳이 사촌에 대한 기억을 넣었어야만 했을까, 라는 아쉬움. 작가가 자신의 자의식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면 독자의 머리속은 불투명해지고 답답해진다. 나머지 [나쁜 음자리표]와 [그것은 아니다]도 아직은 난독불가. 
 

연보라빛우주
읽어봐야겠어요. - 2005-01-18 16:30
 
로드무비
좋아요.^^ - 2005-01-19 00:04
 
복돌이
두 분의 말씀이..꼭.. 송재익, 신문선 콤비의 축국경기, 해설을 듣는 거 같습니다. - 2005-01-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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