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절까진 재밌게 읽었다. 사실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몇몇 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시대적인 혹은 개인적인 상처에 관해 이야기한다, 라는 건 얼추 짐작하겠는데 아직도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귀가 딱딱 맞게 적절한 비유를 구사하는 권여선식 표현은 소설에 긴장감과 활력을 준다. 특히 [트라우마]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턱의 외상이라던지 손등의 화상은 철거투쟁의 과거와 무기력한 현실의 심리적인 상처와 분노를 상징적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후일담 문학이라고 표현하기엔 개인적인 심리상황을 극대화시키고 있어서 아무래도 무리수가 따를 것 같다. 

주고받는 간결한 대화가 매력적이었고 신선했던 작품은 [12월 31일]. 이미 지나가버린 한 때를 추억하는 형식인 이 소설은 현실적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 사랑했지만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그래서 적당히 변명하게 되고. 그렇지만 이젠 그런 옛 추억의 감정마저도 세월이 흘러 둔탁해져버렸다고 체념하는, 변화하는 또 다른 자의식.

간결하고 낯선 대화형식은 [두리번거리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상처는 여주인공의 짝짝이 가슴(혹은 절개된)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중반부터 이야기가 흐트러진다. 어떤 의도를 말하려 하는 것이지 알 수 없지만,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핵심을 빗겨나 겉도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적인 상황에 많이 기대었고 뜻밖에 마무리가 경쾌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읽어야 잘 읽힐 것 같은 단편이다.  에피소드라고 치부하기엔 좀 무겁고 아니라고 하기엔 좀 가볍고.  

기존의 여성작가들처럼 조금 식상했던 소설은 [처녀치마]와 [수업시대]. 여전히 주인공들의 대화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가족과 현재의 주인공을 연결시켜 풀어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보는 죽어서도 바보라면서요. [처녀치마]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절망감. 꼭 그래야만 하나. 빈 껍데기같은 남성의 세계 안에서 함께 있어야만 하나, 라는 독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반발, 불만 혹은 어이없음. [수업시대]에서 보여주는 사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폭발하도록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건 좋은데 굳이 사촌에 대한 기억을 넣었어야만 했을까, 라는 아쉬움. 작가가 자신의 자의식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면 독자의 머리속은 불투명해지고 답답해진다. 나머지 [나쁜 음자리표]와 [그것은 아니다]도 아직은 난독불가. 
 

연보라빛우주
읽어봐야겠어요. - 2005-01-18 16:30
 
로드무비
좋아요.^^ - 2005-01-19 00:04
 
복돌이
두 분의 말씀이..꼭.. 송재익, 신문선 콤비의 축국경기, 해설을 듣는 거 같습니다. - 2005-01-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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