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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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늘 메마르다. 관여하지 않고 냉정하게 관조하는 글이, 되려 번득거리는 칼날처럼 매섭다. 그러나 그의 글은 늘 피곤하고 찌든 사람을 향하고, 고통스럽고 슬픔에 찬 사람의 희망과 사랑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그의 글은 푸석거리는 메마름이 아니라 인간이 줄 수 있는 희망과 사랑이라는 약간의 물기만으로도 메워질 수 있는 메마름이다.

 

처음 흑산을 손에 잡았을 때 나는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뜨겁고도 고통스러워 글 하나하나가 가슴에 치받는 느낌이었다. 사학죄인 정약종의 추문과 참수, 정약현과 두물머리 풍경, 사위 황사영과 천주, 마부 마노리의 사행길 그리고 청나라 천주당, 사공 문풍세와 수탉, 창대와 귀향 온 정약전. 이 모두를 짧은 글에 다 품어 내기가 얼마나 괴롭고도 고통스러웠을까? 그러하기에 글은 방울 셋 달린 대비의 파발마처럼 급히도 내달린다. 내달린 글은 추스릴 틈이 없이 감시와 포위망을 좁혀오는 포도청 군사들의 위협처럼 심장 속으로 쏟아져든다.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만들면 만들수록 생각은 번져버리고 고통은 밀려 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썰물처럼 빠진 후에도 괴로움의 이랑들이 패였을 것이다. 아마도 하얀바다를 건너 현실과 육지의 시간과 단절된 정약전만이 그가 느낀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 정약전은 흑산에서 죽기 전 자산어보를 남겼고, 절두산을 지날 때마다 힘겨워 한 그는 흑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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