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저참에 담양 당숙모 돌아가셨을 적에 당숙이 눈물바람을 헙디다. 당숙모가 당숙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다짐을 받었다 합디다. 절대로 비싼 수의 마련하지 말라고. 혼인할 때 입었던 한복 잘 다려서 챙겨놓았응게 그거 입혀 보내달라고 했답디다. 딸애 시집도 못 보내고 먼저 가는 것도 미안헌데 자기 위해 돈 쓰지 말라고. 당숙이 나한티 기대 그 말을 하면서 어찌나 울어쌓는지 내 옷이 흠뻑 젖었어라오. 여태 고생만 시켰다고. 인자 좀 살 만헌디 죽어번졌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죽었는디도 좋은 옷 한벌 못해주게 다짐받고 갔다고. 나는 안 그럴라요. 나는 좋은 옷 입고 갈라요. 한번 볼라요?-162쪽

당신은 나보다 먼저 가시요이. 그러는 것이 좋겄어. 이 시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 합디다마는 우리는 온 순서대로 갑시다이. 나보다 세살 많으니 삼년 먼저 가시요이.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든가.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는 못살겠시믄 큰 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도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아서 당신이 헐 줄 아는 게 뭐 있소이? 안 봐도 뻔하요이. 말수도 없는 늙은이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하겄나.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16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