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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리산을 여러 번 오른 적이 있다. 20년 전 그 해 여름에 무려 세 번을 오른 적도 있었고, 지리산 자락 아랫동네에서 민박하며 노닥거린 적도 있었고, 차를 타고 쒱하니 노고단에 정말로 가볍게 오른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삼도(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를 다 걸쳐 있는 넓다란 품처럼, 내 기억의 흔적에 어디까지를 지리산 자락 안의 흔적이라 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리적 공간에 한정되었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번지고 번져 몇 십 년 삶을 꿰뚫는 큰 주제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내겐 그게 지리산이었다. 세상과 완벽하게 멀어진 독립된 공간이자, 세상에서 묻혀 온 수많은 삶의 찌꺼기를 땀과 상쾌한 공기로 대체해 주고, 길바닥에 엎어져 흘린 눈물도 고스란히 스며 받아들이는 한 없는 품이었다. 늘 그렇게 지리산을 찾았기에 늘 진중하고 장엄한 지리산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지리산은 텐트도 칠 수 없고, 담배도 필 수 없는 악조건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여름 산허리에 지친 몸을 풀고 누워 커피 한 잔에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던 기억은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도 초롱초롱거리던 별빛처럼 생생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었지만, 산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변한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지금의 지리산, 아니 많이도 변한 지금의 나를 보게 되었다.
자발적 가난과 자발적 행복을 찾아나선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새로운 인생의 공간으로, 너무나 진중했던 나의 지리산이 이제 유쾌상쾌한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역사 속에서 장엄했던 지리산이 생활 속 행복한 지리산으로 다시 다가옴은 어쩌면 긴 세월을 장엄하다고 함축해 버린 편의적인 나의 단답식 대답이 아니었을까?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말라는 글귀를 읽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젊었던 날 대원사 위 할머니가 지키던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아침부터 컵라면 하나 시켜 끼니를 떼우는데, 라면 먹는 꼴을 가만보던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엥간하면 부모 속 쎅이지 말고 빨리 집에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