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가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아저씨, 전농동!!"

비오는 날 남의 집에 가는 것이 웬지 불편했지만 거세게 퍼붓던 빗줄기가 사그러들자, 선배집에서 약속한 모임에 가려고 나는 길거리에서 택시를 붙잡느라 진을 빼고 있었다. 냉정하게도 전농동 사거리가 물에 잠겨서 그쪽으로는 못간다는 말을 남기고 택시는 도로에 넘치는 물을 튕기며 내게서 멀어졌다. 내가 있던 안암동과 전농동은 뛰어서라도 가겠구만...감히 엄두가 나지 않은 건 쏟아진 비가 매섭긴 매서웠던 모양이었다.

반바지에 샌들, 우산 하나 걸치고 약속을 포기한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왔지만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져있었다. 언덕 중턱에 있던 자취집이었지만, 이미 집으로 들어가던 복도는 물로 넘쳐났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신발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집 할머니는 40년 넘게 여기서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물 퍼내는 내 옆에서 궁시렁거렸다. 나는 그해 여름을 기억한다. 기상청은 이를 두고 '게릴라성 폭우', '국지성 호우'라는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를 쏟아냈다.

그 이후 여름에 국지성 호우는 더욱 빈번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부쩍 짧아진 봄과 가을.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이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랑거리라던 옛 교과서의 문구가 생소할 지경이다. 봄이면 화사한 봄꽃을 뒤덮어 버리는 누런 황사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요즘처럼 따뜻해진 겨울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고온'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처럼 많은 기후변화의 징후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고, 먹이를 찾아 녹아버린 살얼음 빙판을 조심스레 어슬렁거리는 북극곰의 슬픈 사연도 이미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삶과 직결되지 않은 일이다보니 대부분은 소위 '달나라 얘기'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지구온난화. 이 책의 주제이다.
마크 라이너스라는 젊은 환경운동가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제목처럼 지구온난화로 벌어지는 현재의 변화로 미래가 아닌 이미 현재에 변화된 지구의 모습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쓴 일종의 환경 여행기이며 실천적인 수기이다. 제목에 '미래'란 표현은 아마도 이성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아주 약간(?)의 상상력만으로도 풀수있는 남겨준 숙제같다.

지구온난화로 빙하는 녹아내리고 해수면의 상승한다는 것이야 누구나 알 것이다. 바닷물 몇 센티미터 올라갔다고 우리 일상에 무슨 큰 영향이 있겠냐마는 남태평양에 평균고도 3m 밖에 되지않는 한 섬나라는 만조때만 되는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 탓에 이미 국가영토를 포기한 나라가 있다. '투발루'. 빙하의 녹는 속도가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니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말그대로 국가적인 재앙인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사람들은 지구온난화에 가장 작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인데도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몰아친 모래바람이 중국을 건너, 한국으로 날려오는 것처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전지구적이며 상호연관성을 띄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어느 누구도 내 탓이라 인정하기 쉽지 않으며,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이멍구에서 날려보낸 모래바람을 뒤집어 쓴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쏟아올린 이산화탄소 탓에 네이멍구가 그렇게 사막화 되었다고 인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알래스카의 주민도 마찬가지다. 알래스카는 녹아내리고 있지만 한편에선 끝없이 원유를 퍼올리고 있다. 주민들은 저 원유가 내 삶터인 알래스카를 녹아내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원유업자들은 원유가 훨씬 더 매장되어 있는 '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을 열어젖히라 외친다. 이런 예는 직접적이고도 1차적인 인과관계이지만, 마치 생태계의 한 계층만 무너져도 생태계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것과 비슷한 사실은 훨씬 더 복잡한 관계 속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발루의 국민들은 우리들의 피해가 당신들의 재앙의 전주곡일 것이라 아무리 얘기해 본들 가속화된 전지구적인 산업화를 당장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몇 십년내에 닥칠 현실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경고를 보내는 환경론자들과 과학자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과 이상징후를 눈으로 직접 보고 써내려간 현장감있는 보고서임과 동시에 지구온난화를 제어해야 할 인류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 이념을 말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보다도 어쩌면 더 필요한(!) 인류의 보편적 연대의 필요를 당신은 이 책에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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