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앗아간 땅 사할린을 가다] 사할린 하늘 울린 ‘백발의 통곡’ “아버지~”

강제동원 행불자 후손들 60년만에 현지 위령제
영정 속 20대 청년 안고 “조금만 일찍 왔어도”
‘혹시 살아계실지도…’ 사진 돌리며 수소문도

»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사할린 희생사망동포 위령탑 앞에서 지난 15일 일본에 의해 강제동원된 뒤 행방불명된 이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렸다. 제삿상 앞에 선 정태랑(67·오른쪽에서 두번째)씨는 “1940년 강제동원된 부친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부친의 사진을 목에 걸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돌을 맞는 사할린 동포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일제에 의해 청춘의 나이에 강제동원된 1세대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가슴에 묻은 채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환갑을 맞은 고국’을 바라보며 이국 땅에서의 쓸쓸한 죽음을 예감할 뿐이다. 지금도 4만여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사할린에서 만난 동포들은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빳빳한 상복을 입은 채 침묵을 지키던 노인들 사이에선 가는 흐느낌만 새어나왔다.

“우리, 아버지를 세 번만 불러봅시다.” 태랑(67)씨의 제안에 백발이 된 자식들은 “아버지!”를 목놓아 외쳤다. 하지만 세 번을 다 채우진 못했다. 노인들은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땅만 바라봤다. 흑백 영정 속 20대 청년으로 남은 ‘아버지’의 얼굴은 멀쑥했다.

지난 15일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사할린 희생사망동포 위령탑 에서 특별한 위령제가 열렸다. 1938∼1945년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행방불명된 이들을 위해 고국의 자식들이 직접 제사상을 차린 것이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서 2006년부터 벌이고 있는 ‘해외 추도 순례’ 사업이 사할린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는 부모가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것이 증명된 이들의 신청을 받아 18명을 선발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이들의 증언, 사할린에서 온 편지 한 통이 ‘사할린에 있었다’는 증거가 됐다.

“굴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하다가 현기증이 났습니다. …환약 십원어치 사서 먹었으니 그리 아십시오. …일전 편지에 현시에 태중이어서 창월이 임산이라 하였으나 나는 자세히 몰라서 궁금하오니 차후 편지하실 적에 분명히 적어 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부친이 1942년 강제동원된 이재순(64)씨는 80살 모친이 간직해 온 편지 한 통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편지 속 ‘태아’였던 이씨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아버지 언제 오나 머리를 긁어보라’고 할 때 난 항상 앞머리를 긁었다고 한다”면서 “곧 오실 거라 믿었는데 얼굴 한 번 못 보고 60년이 지났다”며 눈물을 쏟았다.

“골목길 들어올 때부터 생글생글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랑 꼭 닮았다고 한다”며 웃던 김수웅(63)씨도 제삿상에 술을 놓을 땐 “아버지, 너무 원통합니다. 아버지 …”하며 가슴을 쳤다.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던 현지 동포 이명희(55)씨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생각하니 다 형제처럼 느껴진다. 사할린에 사는 1세대 부모들은 ‘언제 조국에서 배를 보낼지 모른다’며 항상 대문을 열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부친이 올해로 90살이 된다는 정태랑씨는 부친의 젊었을 때 사진 70여장을 인쇄해 왔다. 그는 “혹시라도 소식을 들은 분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위령제에 참석한 현지 주민들에게 사진을 나눠줬다. 사진은 금새 동이 났지만, 귀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부친의 소식을 전해온 이는 없었다. 동정남(64)씨는 1988년부터 러시아와 일본을 8차례나 오간 끝에 부친이 숨진 장소를 알아냈다. 그는 “제사 날짜라도 알고 싶어 혼자 찾아다녔는데 국가 기관엔 어디 한 군데 물어볼 데도 없었다”며 “나처럼 돌아다니지 않는 한 사망 사실도 모른 채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안해준(70)씨는 “1세대 동포들의 소식을 알만한 이들은 최근 10년 새 거의 다 돌아가셨다”면서 “이제 와서 진상을 규명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현지 주민들은 “10년만 일찍 왔어도, 10년만 일찍 왔어도 …”라고 되뇌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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