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품절


서경식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때의 관념적 질문이 아니라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실존의 문제였다. 그는 일본에 산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그는 '불편한' 이방인이다. '빼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일본에세이스트 클럽상까지 수상한 이 작가의 혀와 펜은 곧잘 일본이라는 국가, 국민의 벽을 난타하는 망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살아왔고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낯선 자이다. 또 국가, 국민에 대한 그의 비판이 '5,000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의 '성공신화'에 매달리는 한국인을 겨냥할 때 이 나라 역시 그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요컨데 그는 '재일조선인'이다.-7쪽

그는 '조선인'이라 차별받으면 또 '조선은 나쁜 게 아니라'며 위로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 정체성을 물어왔다. (중략)
그 고통스러운 물음의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프리모 레비를 비롯한 역사의 증언자들은 그런 처지가 그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준 존재들이다. 조선인이라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억압받았고, 그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끊질기게 물을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그 모호성과 작위성, 역사성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깨달은 그들은 그들의 고통이 인류가 20세기를 지나오면서 겪은 보편적인 고통임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역사, 인간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보편적인 물음으로 바꿔 물으며, 또 그것을 우리에게도 들려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물음의 과정에서 예술을 만났다. 그저 눈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 바깥이 있음을 느끼게 해준 예술은 그가 형들을 가둔 남한 군부독재의 감옥, 일본이라는 감옥, 국가라는 감옥, 국민이라는 감옥, 현실이라는 감옥을 버텨낼 수 있는 한 움큼의 공기였다.-8쪽

오늘 여기에 조선말을 쓰는 김상봉하고 조선어를 잘 몰라서 일본어를 쓰는 서경식이 만나 소통하고 있다는 겁니다. 단지 소통이 잘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소통해야 하면 어려워도 소통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순서는, '공통의 언어가 있고 그 바탕에서 소통하게 된다'가 아니라 '소통의 필요가 있고 그로부터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져간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조선말에 영향받은 일본말이 되고 일본말에 영향받은 조선말이 되어가는 거죠. 그런 피진화의 과정은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서경식)-76쪽

저는 학자는 '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함석헌 선생의 말입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씨알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함석헌 선생은 말해요. 이광수와 최남선을 두고 한 말인데, 함석헌 선생은 그네들이 끝까지 울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상봉)-101쪽

광주에 오니 '5.18 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를 자주 보게 됩니다. 사실 정신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5.18 정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잘못된 것이고 그런 물음에 '5.18 정신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규정을 답으로 내놓는 것 역시 옳은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어떤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은 결국 그런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타인에 대한 태도 등을 이어나가고 살려나가고 펼쳐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5.18 정신의 살림과 펼침을 생각할 때, 저는 광주항쟁이라는 역사뿐만 아니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이라는 현재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소외되고 고립된 외부와 연대를 실천하려는 상상력이야말로 정신의 실체화, 물신화를 피해 5.18을 올바로 기억하고 계승하는 길이 아닐까요? (서경식)-114쪽

국가가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작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흔히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에 매달리는 것을 두고 누군가 '그것은 향수일 뿐이다. 퇴행적인 노스탤지어다'라는 식으로 공격을 해요. 제가 미셸 클레이피라는 팔레스타인 난민 영화감독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노스탤지어야말로 우리의 무기다"라는 말을 장 주네가 했다고 해요. 국가가 우리 기억에 가한 폭력, 교육이나 문화를 모두 동원해 저지르는 폭력에 저항하는 우리 기억의 투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노스탤지어야 말로 마지막 무기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저는 역사에,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저더러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 온 듯한 느낌'이라고 했을 때도 수긍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기다. 국가에 저항하기 위한 무기다'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서경식)-232쪽

요약하자면 이렇군요. 시민적 주체성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핵심인데 일본에서는 (국민이 되기 위해) 예속되어야 할 초자아로서의 천황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유로운 주체, 자유롭기 때문에 성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주체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는 거로군요. 말씀을 듣다 보니, 일본에서 천황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시민들이 국가에 대해 자율적, 주체적으로 자기를 정립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상봉)-312쪽

도식화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되니까, 좀더 이야기를 보태보겠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천황제에 대한 저항이 있어왔습니다. 또 지금 일본 사람들에게 천황제에 관해 묻는다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냥 일상에서 문제가 안 되닌 별 문제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천황제를 문제 삼는 것을 지나치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1990년대 들어 공산당조차 계급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으로 강령을 바꾸었고, 이제까지 줄곧 공공연히 반대해왔던 천황제에 대한 공격을 포기했습니다. 천황제는 그렇게 눈에 띄지도 않고 열광적이지도 않은 조용한 전체주의가 된 거지요.
무엇보다 '우리가 살기 좋아졌다'는 실감을 다수가 공유하는 게 문제일겁니다. 뭐랄까, 공범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거지요. 그리고 타자와의 만남에 실패한 것도 큰 이유입니다. 20세기에는 주변 이웃들과 침략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통해서만 만났고, 1990년대에 '증언의 시대'가 시작됐지만 그 때도 피해자들, 증언자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20세기 역사는 그렇게 (타자와의) 만남에 있어서 총체적으로 실패해온 역사였습니다. (서경식)-312쪽

인간이 똑같은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이 남에 대한 격분에 머무를 때는 고통이 타인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에 대한 슬픔으로 전환될 때 그것이 비로소 우리를 참된 만남으로 인도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죠. (서경식)-354쪽

헤겔이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이건 사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오도된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경우에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다른 의미에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성적이 되어야 하고 '이상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저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지 못할 때는 유토피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김상봉)-4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