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숨은 주인공 ‘87년 6월의 얼굴’을 찾습니다
[한겨레 알림] 6월 항쟁 2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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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6월의 함성, 한겨레가 되살립니다
20년 전 6월, 우리 국민은 한 목소리로 군사독재에 맞섰습니다. 서울 명동에서, 부산 대청동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이 하나 되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자랑스런 소산입니다.

6월 항쟁 20돌을 맞아 <한겨레>는 스무 해전 그 날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는 복원 작업에 나섭니다. 개인의 기억을 사회의 기록으로 승화시키고, 역사의 빈칸을 메워 시대의 자산으로 남기는 일은 6월 항쟁으로 태어난 <한겨레>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1) 사진 속 주인공을 찾습니다
6월 항쟁은, 노기자의 빛바랜 필름 속에도, <한겨레>가 정부기관 문서보관소에서 어렵게 찾아낸 사진 속에도 또렷이 살아 있습니다. 전투경찰에 가녀린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여대생들, 경적시위에 나선 버스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들, 분수대에서 빠져나오는 시위대와 전경의 긴장된 표정 등… 이 정지된 시간 속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20년 전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주인공들을 찾아내 지난 세월과 오늘의 얘기를 지면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화 02-7100-291~4 / 이메일 hckang@hani.co.kr

 

‘87년 6월’사진 속 주인공을 찾습니다

 

(2) 개인 소장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 주십시오
6월의 현장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모읍니다. 사진기와 비디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힘들고 어렵게 찍은 사진이나 필름, 비디오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는 분은 <한겨레>로 보내 주십시오. 모아진 자료는 먼저 <한겨레>와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공개하고, 사단법인 6월항쟁 계승사업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넘겨 공식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3) hani.co.kr에 ‘친구야 보고 싶다’ 코너를 개설합니다
그 때 함께 했던 친구와 ‘동지’들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때, 그 현장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싶은 사람들과의 사연을 hani 사이트에 올려주십시오. 뒷골목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 선·후배를 찾는 글도 좋고, 이런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안타까운 사연도 좋습니다. 6월항쟁 20돌을 맞아 <한겨레>와 함께 그때의 기억들을 글로 남깁시다.


▶ ‘친구야 보고 싶다’ 코너 문을 두드리세요

 

 

(4) 6월 항쟁 기록집 발간에 힘을 보탭시다
한겨레신문사는 6월 항쟁 계승사업회의 <다큐, 6월 항쟁> 발간사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 시민항쟁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의미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는 소중한 작업입니다. <다큐, 6월 항쟁>은 6월말께 자료집 4권과 사진집 1권으로 발간될 예정입니다. 제작에 적지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많은시민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전화 (02)3709-7597, (02)3709-7691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5-101-060811 (사)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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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뜀박질 눈물…가슴속 또렷한 그댈 불러봅니다

 

 
▲ 1987년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범인이 3명 더있다”며 은폐조작 사실을 폭로한 데 이어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중태에 빠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6월 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6월22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거짓 없는 나라에 살고 싶어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한 어린이가 엄마 품에 안긴 채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지금은 20대 숙녀가 됐을 터.

 

 
» 6월 항쟁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1987년 6월26일 전국 34개 도시에서 동시에 ‘국민평화대행진’이라 이름붙인 시위가 벌어졌다. 당일 서울 청계2가 광교사거리에서 글씨도 선명한 34번 버스 앞에서 승용차 속 시민들이 창밖으로 태극기를 흔들자 거리의 사람들이 박수로 호응하며 모여들고 있다.
 
▲ 6월 항쟁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1987년 6월26일 전국 34개 도시에서 동시에 ‘국민평화대행진’이라 이름붙인 시위가 벌어졌다. 당일 서울 청계2가 광교사거리에서 글씨도 선명한 34번 버스 앞에서 승용차 속 시민들이 창밖으로 태극기를 흔들자 거리의 사람들이 박수로 호응하며 모여들고 있다.

 

 
▲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범인 은폐조작 폭로 뒤 대학가의 ‘독재타도’ 시위는 한층 가열됐다. 그로부터 8일 뒤인 5월26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 들머리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교정으로 진입한 경찰을 향해 ‘용감하게’ 돌을 던지고 있다.

 

 
▲ 6월 항쟁 당시 전국 거리 어디에서나 최루탄 냄새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구국법회’가 열려 경찰과 시위대의 공방이 벌어진 6월20일 시민들이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 서울 조계사 앞길을 지나고 있다. 당시에는 흔히 보던 풍경이었다.

 

 
▲ 박종철군 고문치사 범인은폐 조작에 이어,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중태에 빠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군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6월 18일 서울 종로5가에서 대학생들이 차도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중태에 빠졌던 이한열군이 7월5일 끝내 숨지자 이틀 뒤인 7일 이군이 입원했던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시위에 나선 교련복 차림의 대학생들이 최루가스가 자욱한 가운데 펼침막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 6월 18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태극기를 든 어머니 옆에서 한 소녀가 땅바닥에 앉아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숙연한 주위 분위기와 달리 머리에 꽂은 리본은 앙증맞게만 보인다.

 

 
▲ 6월13일 서울 명동성당의 수녀들이 나흘째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는 학생 시위대를 격려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5월23일 행진에 나섰던 승려들이 전투경찰이 저지하자 물러서지 않은채 도로에 앉아 합장을 하고 있다.

 


▲ 6월의 어느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시위대가 한 신부가 앞을 지나자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 6월14일 명동성당 한 쪽에서 모금활동을 벌이는 여성에게 한 시민이 성금을 내자 주위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 6월 항쟁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6월10일 서울 명동입구에서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이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리자 황급히 피하고 있다.

 


▲ 6월의 어느날 부산 ‘자갈치 시장’ 상인들이 최루탄 가스를 발사하는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다.

 


▲ 6월12일 시민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시위대에게 줄 컵라면과 음료수를 나르고 있다.

 


▲ 6월 18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에 빠진 전투경찰이 시위대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고 있다. 그 시절 인간의 얼굴을 한 시위대의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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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명동성당 농성은 6월 항쟁 초기 시위대의 구심점이자 민주화 성지 역할을 했다.6월 12일께 시위대를 보호하던 서울 명동성당 신부들이 성당앞에 모여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은 시위대가 나눠준 유인물을 꼼꼼히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연행되가는 학생들을 경찰로부터 구출해주는 등 학생들의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6월26일 시청앞에서 유인물을 읽고 있는 시민들.

 


▲ 6월 항쟁 당시 학생들은 거리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즉석 거리연설을 하곤 했다. 6월18일 신세계 백화점 인근에서 한 학생이 홀로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6월18일 ‘최루탄 추방의 날’을 맞아 87년 당시 최루탄을 독점적으로 생산한 기업을 규탄하는 선전판을 들고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왼쪽아래 김승연 현 한화그룹 회장의 이름도 보인다.

 


▲ 6월 항쟁기간 경찰은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했다. 6월10일 버스 안으로 날아든 최루가스를 피해 승객들이 급히 차에서 내리고 있다. 갓난 아기를 안은 어머니와 거의 실신한 듯한 여성이 보인다.

 


▲ 6월 항쟁의 주역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6월26일 서울 시청 인근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민추협 여성국장 이경심씨의 모습.

 


▲ 6월 항쟁이 성공한 배경에는 종교계의 동참도 빼놓을 수 없다. 6월20일 ‘구국법회’를 마친 승려들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4·13 호헌조치’ 발표이후 각 대학 교수들의 비판 성명이 이어졌다. 6월19일 고려대 교수들이 ‘민의는 확인됐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본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 6월26일 국민승리를 확신한 듯한 밝은 표정의 시위대가 ‘국민평화대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맨 줄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채롭다.

 


▲ 6월12일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서울 명동성당 시위대에 합세하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거리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제공 : 정부기관 문서보관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 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 고대신문사, 윤석봉 전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고명진 뉴시스통신 사진영상국장, <1988년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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