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험감독 없던 중학교…그때 아하~ 깨달았죠
한겨레  
» 크리스찬아카데미 연극동아리 ‘혼’ 워크숍과 1977년 열린 크리스찬아카데미 대학생 모임에 참석한 손 대표(원 안)
홍보대행 인컴브로더의 ‘느림 경영’
2막-사람 중심 기업문화 꽃피우기까지

홍보대행사 인컴브로더의 ‘느림 경영’ 실험을 지난 주에 이어 소개한다. 이번에는 노동시간 줄이기를 비롯한 여러 실험들이 ‘왜?’ ‘어떻게?’ 가능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대부분의 기업, 기관이 업무 혁신을 꿈꾸되, 실제로는 되레 과욋일이 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직장의 이야기를 애초 3주간 다루려던 계획을 바꿔, 이번 주로 맺는다.

어떻게 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일까. 인컴브로더 등 세 회사가 지난해 1월 강원도 춘천시에서 연 팀장 워크숍의 주요 주제였다. 논의 끝에 두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만 제안을 내기로 했다. 홍보 대행사의 고객은 많은 곳에 제안을 할수록 늘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직원들의 일도 많아지게 된다.손용석 대표이사와 팀장들은 고객 수를 늘리는 대신 직원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더 큰 가치를 뒀다. 그 결과 인컴브로더 등 세 회사가 지난해 신규 고객 ‘개발’을 위해 낸 제안 수는 그러께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을 줄이자 제안서에 담긴 내용이 더욱 알차져 성공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졌다. 모험 같은 결정이었지만 회사 매출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

» 웃고있는 손 대표(왼쪽사진) 인컴브로더 등 세 회사 직원들은 쉐어링웬즈데이, 애드나이트, 펀데이 등 여러 모임과 행사를 통해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동료들과 나눈다. 사진은 ‘피아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오른쪽사진)

다음으로 다섯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하는 ‘다일 데이’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일주일에 하루씩 ‘다일 데이’를 쓸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지난해 10% 가량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인컴브로더는 이처럼 더디 가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광고·홍보 시장에 한파가 밀어닥쳤다. 1998년초 ‘인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해고는 하지 않는다. 둘째, 급여 삭감도 없다. 세째, 경비를 최대한 절감한다. 1997년 입사해 도모컨설팅에서 일하고 있는 최윤혁 부장은 “인력이나 급여를 줄이지 않겠다는 대표이사의 말은 무척 감동적이었다”며 “직원들은 더욱 똘똘 뭉쳐 열심히 일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손 대표는 “이익잉여금이 6억원 정도 있었는데 그 돈으로 버틸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시장상황이 바뀌었다. 다음해 외국계 기업이 대거 국내에 진출하면서 홍보대행 수요가 늘었다. 이때 ‘인컴’은 또 다른 기회를 누렸다. 사람을 자르지 않고 있던데다, 다른 회사에서 밀려나 있던 양질의 피아르 인력도 ‘인컴’이 흡수해, 늘어난 물량을 적기에 소화하게 된 것이다.

손 대표는 2002년 사재 2억원을 출연해 인컴피아르재단을 만들어 이우학교, 들꽃청소년세상,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노인복지회 등에 무료로 컨설팅을 했다. 들꽃청소년세상 김현수 목사는 “주위에 우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재단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들꽃청소년세상이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재단 일에 열심이다. 재단 운영을 맡고 있는 도모컨설팅 박일준 부사장은 “2~3개월 가량 밤늦게까지 혹은 휴일에 가욋일을 해야함에도 늘 필요한 사람보다 지원자가 2~3배 많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연말연시에 물건을 한 점씩 갖고와 경매 행사를 열어 모은 수익금을 복지단체에 보내기도 한다.

‘인컴’의 기업 문화는 외국계 기업으로부터도 인정받았다. 외국계 홍보대행사들이 국내에 몰려들기 시작한 2000년을 전후해 ‘인컴’은 자신들과 경영 철학이 가깝다고 느껴지는 브로더월드와이드와 제휴해 인컴브로더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브로더’의 존 브로더 회장은 인컴의 기업 문화에 감동받아 자신의 경쟁사인 플레시먼힐러드 존 그레엄 회장에게 한국 진출 때 이 회사를 파트너로 선택하도록 추천했다. 손 대표가 인컴브로더와 플레시먼힐러드 대표이사를 함께 맡게 된 이유다.

손 대표는 회사를 이렇게 이끌고 있는 자신의 가치관이 청소년기에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참 좋은 중학교를 다녔다”. 서울 건국대부속중학교의 전신인 건국중학교다. “외대 초대 학장인 안호삼 선생이 참교육의 뜻을 펼치고자 만든 학교로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어요.” 감독이 없이 시험을 치르고, 학교 안에 무인판매대를 운영하고, 학생들의 자율성을 보장했던 그 학교에서 손 대표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푸른 꿈을 안고 들어간 명문 경기고의 ‘엄격함’은 그에게 상처를 줬다. 공부도 싫어져 그는 “공부하기보다 생각하는 학생”으로 바뀌었고, 부모님이 다니던 경동교회 다니고 크리스찬아카데미 활동을 하며 강원룡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목사님은 참된 크리스찬이라면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고, 현실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며 베풀고 나누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함을 강조하셨어요.”

그는 경동교회 학생부 교사에 이어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 담당 간사로 일했던 한명숙 총리를 통해 여성 문제에도 눈을 떴다. 그런 이유로 인컴브로더 등에는 성차별이 없다. 임신 여성에게 1달에 하루 유급 휴가를 주는 등 여성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많은 회사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하세영 전략기획팀장은 “급식 당번으로 학교에 갈 때 한번도 눈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님은 회식 때 성과 관련된 농담조차 하지 않는다”며 “성희롱은 생각할 수도 없는게 회사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 공항타워 24층 인컴브로더 사무실 안내데스크에 걸린 액자에는 손 대표의 가치관이 담긴 글이 걸려 있다. ‘나를 위한 채움, 우리를 위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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