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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4
로알드 달 지음, 김연수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큰애와 자주 싸운 적이 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 무렵은 이상하게 제 주장을 펴면서 엄마를 벗어나려는 큰애를 못 견뎌 했다. 그래서 좋게 해결할 일도 큰소리 내가며 해결했고, 타이르면 그만인 일도 험한 소리해가며 윽박질렀다. 상처받은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파오다가도, 막상 아이와 부딪히면 감정부터 앞서던 시기였다.
로알드 달을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어느 지면에서 어른들은 싫어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드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로알드 달이라고 했던가. 언뜻 소개된 작품 내용만 보아도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 글을 읽고 제일 눈에 띄는 책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를 주문했다. 조지가 잔소리꾼 할머니를 위해 만든 마법의 약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보다 아직 힘이 약해 엄마에게 짓눌리는 큰애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잔소리꾼 할머니를 대하는 조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풀어보라고...
책이 도착하고, 큰애에게 넌지시 건네주었다. 제목에 관심이 가서일까, 받은 자리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큰애는 자리도 뜨지 않고 책을 읽어냈다. 큰애가 로알드 달의 팬이 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잔소리를 늘어놓고 늘 툴툴거리는 할머니를 처치하는 조지의 모습이라니. 아이가 읽고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내 읽으면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잔소리 늘어놓고 불평불만 투성이인 할머니가 꼭 나인 것 같아서. 우리 아이 역시 잔소리만 늘어놓는 엄마에게 마법의 약을 먹이고 싶진 않았을까 싶어서.
사실 로알드 달의 동화는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화와는 많이 다르다. 교훈적이지도 않고, 예의가 깍듯하지도 않다. 동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심술보에 이기적인 인물들이다. 가끔 아이들과 통하는 어른이 등장한다지만, 그들 또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등장할 뿐이다. 더군다나 어른들에게 반격하는 아이들이라니... 동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어른들에게 로알드 달의 동화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게 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뻔뻔(?)한 로알드 달의 동화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반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억눌렸던 마음을 풀기도 하고, 어른들이 내세우는 기준에서 해방된 듯한 캐릭터들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른의 품에서 벗어나 제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삐삐 롱스타킹’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 뒤로 <마틸다>며 <제임스 슈퍼 복숭아> 등을 보고 난 큰애가 물었다. “엄마, 이 아저씨 책 왜 사줬어?” 엄마가 밉고 싫을 때 동화 보면서 엄마 흉도 보고, 스트레스도 풀라고 사줬댔더니, 씩 웃는다. 안 봐도 훤하다. 엄마를 대입시키면서 얼마나 흉을 보았을지. 그래, 교훈적이지 않으면 어때. 이렇게 책을 보면서 마음에 맺힌 거 풀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