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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마루 밑 - 눈물이 찔끔 가슴이 두근 005
심상우 지음, 한병호 그림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권윤덕의 <만희네 집>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게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공간이 된 이후로 잃어버린 것들, 마당, 다락, 옥상, 광, 마루... 우리 아이들은 '마루'를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TV 화면이나 민속촌에서 만날 수 있는 '마루'는 실감으로 와 닿질 않고, 아파트엔 거실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간다면 마루는 어쩌면 다큐멘터리나 세미나 등에서나 만날 단어가 되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열린 공간도 아니면서 닫힌 공간도 아닌 우리만의 독특한 공간', '우리 민족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곳'과 같은 공허한 설명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때아니게 '마루' 타령을 늘어놓은 건 <경복궁 마루 밑>을 읽고 마루라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택에서도 마루를 찾기 힘들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부분 집엔 마루가 있었다. 대청마루든 쪽마루든 마루라는 공간은 우리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응접실이 되기도 했으며, 자잘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기도 했다. 마루 밑 미닫이문을 열었을 때 확 퍼져 나오던 먼지냄새며, 마루 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 줄기에 윤곽만 드러내던 마루 밑 공간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먼지들 틈으로 혹시 누군가 숨겨둔 보물꾸러미가 나타나진 않을까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기도 하고, 때론 마루 밑에 숨어사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했으니, 지금 돌아보면 마루는 우리 상상의 보고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경복궁 마루 밑>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궁금했다. 대체 경복궁 마루 밑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혹시 천년의 비기가 숨겨져 있어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제목이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은 최근 들어 처음이었다. 당연히 그 날 저녁 내 손엔 이 책이 들려 있었다.
내용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마음에 벽을 쌓아가던 은별이가 경복궁에 사는 소인족들을 알게 된 뒤로 벽을 허물고 자신감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외톨이로 살아가던 아이가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아 자신감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다룬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궁궐인 경복궁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몇 번의 화재로 제 모습을 잃어버렸고, 일제에 의해 오랫동안 근정전 앞을 가로막힌 채 숨막혀 지내던 궁궐, 주권을 되찾은 후에서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 모습을 찾아가는 궁궐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하지만 기대보다 이야기의 힘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 이야기와 은별이 이야기가 겉돌고 있을 때도 많았고, 경복궁 이야기를 할 땐 너무 교과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지 않은 경복궁 이야기가 아이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리란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마루'라는 공간을 아이들의 관심권 속에 끌어들인 점, 경복궁을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형상화한 점, 소인족을 통해 인간과 다른 종족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 점 등은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경복궁을 떠나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소인족들의 이야기가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별이와 소인족이 펼치는 새로운 모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