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소년 비룡소의 그림동화 28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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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그림책이라는 추천을 받았지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선뜻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까마귀 소년이라는 제목도 그랬지만, 마치 까마귀가 우는 듯한 소년이 그려진 표지를 보는 순간 거부감마저 생겼기 때문이다. 까마귀에 대한 선입관 때문이었으리라. 그 울음소리에 담긴 불길한 느낌으로 우리에겐 흉조로 여겨지는 새, 까마귀. 하지만 일본에선 우리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까마귀를 바라본다던가. 우리가 까치를 길조로 여기듯, 일본에선 까마귀를 길조로 여긴다고.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조금은 책을 대하기가 편해졌다.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아이들도 무서워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던 소년. 왜소한 몸집탓에 친구들로부터 땅꼬마로 불리던 소년은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한 채 늘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소년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체험들을 쌓아간다. 심심풀이 삼아 주위의 사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들을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쌓아간 것. 소년의 숨은 실력은 6학년 학예회 시간에 발휘된다.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는 소년. 알에서 갓 깨어난 까마귀, 엄마 아빠 까마귀, 이른 아침과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즐겁고 행복할 때 까마귀들이 내는 소리. 소년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의 마음은 소년이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산길을 따라 소년이 살고 있는 외딴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처음 입학했을 때 선생님은 소년에게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 소년이 6학년이 될 때까지 그를 주목한 선생님도 없었다.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전근오실 때까진. 요즘 말로 얘기하면 열린 선생님쯤 될까.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이소베 선생님은 처음으로 소년의 개성과 장점을 인정해 준다. 학교 뒷산에서 머루가 자라고 돼지감자가 자라는 곳을 훤히 꿰뚫고 있는 아이, 꽃이란 꽃은 죄다 아는 아이,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그린 그림과 제대로 알아보긴 힘들지만 개성이 담긴 글씨...

학예회 무대에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는 소년을 올림으로써 선생님은 그동안 단절되어 왔던 소년과 친구들의 간격을 메워준다. 소년이 어떻게 까마귀 소리를 배웠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와 집을 오가던 여섯 해에 대해서... 6년 동안 한결같았던 소년의 성실성을 생각하면서 친구들은 그제서야 그들이 소년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어른들은 소년이 얼마나 장한 아이인지 깨닫게 된다. 땅꼬마 대신 까마귀 소년이란 별명을 얻으면서 소년은 친구들 사이에 비로소 들어설 수 있었다.

교사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 그림책이었다. 이소베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소년은 여전히 땅꼬마로 친구들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별 인정도 받지 못한채 학교를 졸업하고 말았겠지. 하지만 아이의 개성을 살피고 장점을 존중하는 이소베 선생님을 만나면서 소년은 비로소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내보이고 인정을 받게 된다.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참교육이란 이래야 되지 않을까...

교육제도나 학교 당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교사 한 사람에 의해 다 바뀌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교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육에도 이젠 교사들에 대한 재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교사라는 지위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예전의 군사부일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사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의 태도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도 빨리 바뀌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선생님들이 교단에 설 수 있게 된다면 지금처럼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는 안듣게 되지 않을까. 그림책이지만 학부모나 교사가 보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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