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방가지똥 - 1992년 제1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읽기책 단행본 11
임파 글, 박경진 그림 / 비룡소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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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황룡사 방가지똥>을 보곤 대출을 받았다. 책 목차에 계림이나 첨성대, 안압지 등이 나오길래 아이에게 우리가 가본 유적지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나오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하고 싶었다. 아이가 다른 책을 먼저 읽겠다고 하길래 잠시 시간을 내 책을 펼쳤다. 경주에 살고 있는 이보다 경주를 더 잘 알고 있는 지은이라는 소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돌종을 찾는 동자승 이야기라니...

호기심과 기대는 책 몇 장을 넘기자 이내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이 작가가 경주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부터 의심스러웠다. 경주에 와본 적이 있대도 건성으로 한번 유적지를 훑어버리고 말았겠지. 그러니 있지도 않은 천마총 관리사무소가 나오고,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되는 포석정에 동자승이며 유치원생이 걸어가고, 계림숲에선 볼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토함산 자락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하지...

엉터리 경주 지리야 그렇다손치고, 내용은 또 왜 그리 엉성한지. 도깨비는 왜 나왔으며, 쌍둥이 유치원생과 그 가족은 왜 나왔는지, 돌종을 찾으러 다닌 건 동자승인데 뜬금없이 주지스님이 돌종을 찾은 건 뭔 이유에선인지...

아무리 읽어도 이 작품이 비룡소에서 주관하는 황금도깨비상 제 1회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작가야 그렇다손치고 심사위원들은 도대체 뭘 봤는지. 아무리 그 당시 동화계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면 당선작을 내지 말았어야지...

읽는 내내 궁시렁거리다 아이에게 읽지 말라고 하고 도서관에 반납을 하고 말았다. 우리 옛이야기나 전설, 신화를 재창작하는데는 두 손을 들어 환영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엉터리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덴 반대다. 경주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이 봤다면 계림숲, 안압지, 첨성대, 천마총, 분황사탑, 포석정, 남산, 토함산 등은 동네 앞마당처럼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으로 알 게 아닌가. 더구나 반월성이랑 계림숲이 예전엔 호랑이가 나오는 깊디깊은 숲이었다고?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13대 미추왕이었다고?

누군가 이 책을 보고 싶어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쫓아가서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동자승이 돌종을 찾아다닌다'는 글귀 외에 건질 게 하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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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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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일제 식민지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일제의 망령들은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후세들에게도 일본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들을 안겨준다. 그들의 물건을 사용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피해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가해자였던 일본인들에게 그 시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시대를 이끌어갔던 사람들보다는 시대에 휩쓸려 지나왔던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식민지 사람들과 그들이 받은 수모와 고난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끔 궁금했다.

짧은 독서탓에 그때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문학작품을 읽지는 못했다. 일본 작가의 이야기는 읽지 못했지만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던 독일 작가가 쓴 소설을 읽었다. '나치'라는 시대적 급류에 휩쓸려 그 당시를 지나온 독일인들은 '나치'와 그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베른하르트 술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우린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독일인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궁극적으로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열 다섯 살 소년 미하엘이 서른 여섯 살 여인 한나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는 1부, 이제는 법대생이 된 소년이 나치 전범을 다루는 재판정에서 헤어진 옛 여인을 만나게 되는 2부, 교도소 출소를 앞두고 이제는 할머니가 된 옛 여인과 중년의 신사가 된 소년이 만나는 3부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스무살이 넘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건 한나가 끝까지 숨기고 싶어했던 '문맹'과 그녀가 젊은 시절 몸담았던 '나치'의 전적, 바로 그것이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문맹'이라는 개인적 한계가 한 여인에게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차분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시 시대적 '문맹'이었던 독일인들이 범했던 사회적, 역사적 한계들을 고찰하고 있다. 문맹을 숨기기 위해 '나치'를 선택했던 한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소년에게 그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 나치 전범으로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한나가 개인적 한계로 택했던 시대에 대한 책임을 교도소 생활로 갚고 있었다면, 미하엘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보내는 일로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을 갚는다. 그의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큼 사랑했던 여인이 나치였음을 알았을 때 미하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시대적 급류에 휩쓸려 '나치'로 살아갔지만 그 급류에서 헤어나와 실상을 파악한 독일인들의 심정이 미하엘과 같지 않았을까. 독일인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나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 미하엘은 그녀를 외면하고 그녀 앞에 나서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책을 읽은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낼 뿐. 책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녀에게 보냄으로써 미하엘은 어쩔 수없이 나치가 되었던 여인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보듬어 안는다.

한나와 미하엘의 이야기를 통해 비록 그들이 선택했지만 역시 시대의 피해자가 되고 만 독일인들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 신분으로서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지만, 시대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독일인들 역시 그 시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렇게나마 그때의 그들을 보듬어 안을 수밖에 없음을.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에 안타까워했다. 그들 사이에 끼어든 역사로 인해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표현할 수도 없었던 많은 시간들이 가슴아팠고, 한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미하엘이 홀로 남게 된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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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아이들 - 아동 문학 이론의 새로운 지평 현대의 문학 이론 31
마리나 니콜라예바 지음,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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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아이들>이라는 아동문학 이론서가 번역되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무척 궁금했다. '용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일단 흥미를 끌었고,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아동문학 이론서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읽기가 그다지 수월하진 않다는 주위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다른 사람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이들 책을 읽는 걸 좋아해 조금 진지하게 아동문학을 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 니콜라예바는 스웨덴의 문학이론가이다. 그것도 기호학을 공부한 사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아동문학의 특성상 간과되기 쉬운 문학성에 중점을 두고 싶어서였다. 이를 위해 기호학 이론을 빌려와 아동문학 작품을 분석하는데, 일단 이 이론과 용어들이 문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생소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문학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깊이있게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역시 생소하게 다가올 터이고.

또 하나 문제점은 책에서 분석하는 작품들 중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용어나 이론이 생소하더라도 작품을 읽었다면 이해가 쉬웠을텐데 작품마저 읽은 게 제대로 없다보니 책을 읽어나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미하엘 엔데, 에디스 네즈빗, 수 타운젠드 등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작가들 작품은 한 편도 번역된 게 없었으니...

전문가들이 보는 책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책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된 데엔 제목이 큰 역할을 했다. '용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은 전문적인 문학이론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단 흥미진진한 문학이론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들게 만든다. 문학이론이니 쉽진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읽어내지 못할 만큼은 아니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말이다. 번역자가 새로운 문학이론을 소개하는 데 너무 중점을 둬 일으킨 실수 아닌 실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외국 작품 제목을 직역한 경우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들 중 번역서 제목과 직역 제목이 달라 혼돈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이런 경우 번역서 제목을 달아 주는 게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서를 직접 보지 못하는 한 번역서를 읽어야 되는데 번역서와 소개된 작품 제목이 달라 같은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오인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힘들게 한 권의 책을 읽긴 했는데,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나마 대학시절 주워들은 이론들이 있어 남들보다 수월하게 봤지만, 그렇지 않은 주위사람들은 다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책이 없지 않지만, 이 정도면 심하지 않을까.
바램이 있다면 이 책이 재판될 때 부디 제목을 바꿔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들 책을 읽다보니 아동문학 이론에 관심이 생겨 조금 전문적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는 엄마들이 혹하지 않을 제목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은 소개된 책 이름으로 수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판본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원서 이름을 직역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대신 아동문학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큰 산을 넘는다는 기분으로 꼭 도전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다. 아동문학이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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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황금알을 낳을거야
한나 요한젠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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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요한젠이 글을 쓰고 케티 벤트가 그림을 그린 <난 황금알을 낳을 거야>는 소망을 품고 꿈을 이루어가는 꼬마 닭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그렇고, 영화 <치킨 런>도 그렇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로 왜 닭을 택했을까. 작가들의 생각이야 모르겠지만, '알'을 깬다는 의미, 날지 못하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점, 횟대위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닭의 모습 등이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한 농장에 닭장이 있었다. 모두 3,333 마리의 닭이 수용돼 있는 그곳은 너무 좁아 닭들이 서 있기도 힘들다. 워낙 많은 닭이 있어 알을 낳아도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그곳에 꼬마 닭이 있었다. 빨리 자라서 다른 닭들처럼 알을 낳기를 바라는 꼬마 닭. 하지만 꼬마 닭에겐 다른 닭들과는 다른 소망이 하나 있었다. 황금알을 낳겠다는 것. 꼬마 닭의 소망은 당연히 다른 닭들의 비웃음을 산다. 황금알이라는 것 자체가 실현성이 없는데다가 황금알을 낳을 때까지 꼬마 닭이 배우겠다는 노래, 헤엄, 날기가 가당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마 닭은 주위 닭들의 비웃음엔 아랑곳없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꼬꼬댁 꼬꼬'에 불과할지라도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연못에 발을 담그는 것에 그칠지라도 헤엄치는 걸 배우고, 두엄 더미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것과 다를바 없어도 날기를 배운다. 그 소망들을 이루어나가면서 꼬마 닭은 좁은 닭장을 벗어나 푸른 밀밭과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과 두엄 더미 위까지 점점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꼬마 닭의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던 다른 닭들은 덩달아 넓은 닭장을 지니게 되었고.

좁은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줄 알았던 꼬마 닭. 덕분에 넓은 닭장 속에서 지내게 된 다른 닭들은 이제 꼬마 닭이 정말 '황금알'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알을 낳을 수 있게 된 꼬마 닭이 알을 낳을 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꼬마 닭이 낳은 것은 황금알이 아닌 매끈매끈 한 갈색알이었다.

꼬마 닭은 황금알을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꼬마 닭의 소망은 좁은 닭장 속을 나오면서 이루어진 것 아니었을까. 다른 닭들이 좁은 닭장 속에 안주하고 있을 때 꼬마 닭은 소망을 품고 세상 속으로 걸어나왔다. 그래서 다른 닭들에게 좁은 닭장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를 소개해 주었다. 푸른 밀밭,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 두엄 더미에 이르는 넓은 닭장은 꼬마 닭의 시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꼬마 닭의 시도 속엔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닭들이 돌아다니는 걸 못보는 농장 주인도 있었고, 연못 속에 빠질 수도 있었고, 책 속엔 나오지 않지만 닭을 노리는 야생 동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 때문에 세상을 향해 나가지 못한다면, 세상을 향해 나갔을 때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꿈을 이루기까지의 희망과 도전과 용기 모두 말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소망에 대해 말해주는 좋은 책인데도 그리 널리 소개되지 않아 아쉽게 느껴지는 책이다. 책 마지막 그림이 여운을 준다. 꼬마 닭의 소망은 황금알 낳는 것으로 끝났을까?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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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해 아빠와 함께 - 그림책과 어린이 4
쓰치다 요시하루 지음, 오석균 옮김 / 계림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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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땐 아이와 아빠가 엄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장을 봐서 걸어가는 아빠를 그린 표지 그림이나, '엄마를 위해 아빠와 함께'라는 제목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아니고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간 사이 아빠와 함께 집에 남은 아이 이야기였다.

둘째를 낳을 때 큰애 때문에 맘 고생한 엄마들이 꽤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유난히 낯을 가리는 큰애가 아무데도 가 있지 않으려고 해서 엄청 애먹었었다. 간신히 달래 병원에 있을 동안만 동생집에 맡겼는데,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절 떼놓았다고 대성통곡을 했을 정도였으니.

이 책의 주인공은 우리 큰애와는 달리 의젓하게 집안을 지킨다. 집안일에 서툰 아빠를 도와 장을 보기도 하고, 양념이나 그릇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잠이 든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는가 하면 아빠와 함께 동생이 누울 요람을 만들기도 한다.

일주일 후 아빠와 함께 엄마를 만나러 간 아이는 두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세 식구가 살던 생활에서 다섯 식구가 살게 된 생활은 분명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빠와 보내면서 나름대로 성장한 아이는 그 다른 생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곧 동생을 만나게 될 아이가 읽으면 좋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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