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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절망이라는 여자와의 섹스>, 화니북스 2004
p.149-150
문제는, 아니 문제라기보다 흥미로운 것은, 나도 예전에는 이런 와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거야. 내가 어릴 때 살던 시골에서는 이런 와인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몰랐지. 물론 일본 전체가 가난하고 외화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와인을 수입할 수 없었을 테지만, 필요하지도 않았던 거야. 마음 맞는 사람까리 마실 수 있다면, 딱히 이런 대단한 와인은 필요 없어. 방부제가 든 일본 술이나 맛없는 소주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거야. 그런 사회의 잔재는 아직 선술집 등에 남아 있지만, 그런 것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말 거야. 1970년대의 한 시점에서, 뭔가가 이 사회에서 사라진 거야. 그것은 국민 전체가 공유했던 슬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이 와인과 견줄 만큼 가치 있는 것을 이 사회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제시하려들지도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런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나 마실 기회가 있는 사람은 자연히 와인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런 와인을 마시는 그 시간이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도 아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의식의 흐름에 저항할 수는 없어. 이 와인을 마시는 순간과 견줄 만한 것이 이 사회에는 없으니까. 지금, 이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겠지. 대부분의 사람은, 즉 보통 사람은 평생 이런 와인은 마시지 못해. 보통 사람은 평생, 보통의 인생의 카테고리에는 도무지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버렸어. 그 때문에 앞으로 많은 비극이 생겨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