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광수 교수 ⓒ 엠파스 이미지 검색

마광수 교수를 동부이촌동의 자택에서 만나 약 1시간 반 동안 근황과 그 동안 마교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았다. 소위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40대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그 이후 한동안 극심한 우울증 등으로 시달린 마교수는 판화전을 준비하고, 산문집을 준비하면서, 학부강의를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등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혜신 박사는 당시 마광수 교수의 구속에 대해 ‘20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적 후진성과 야만성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했는데, 그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똘레랑스(관용)의 척도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기만 했다.


마교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이데올로기, 성(性)이데올로기 그 두 가지에 대해서만은 못참아주는 그런 보수세력이 너무 많다’고 말했는데, 개인보다 국가를 더 우위에 둔다고 점에서, 개인의 생각을 공권력을 통한 처벌의 대상으로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마광수 사건’과 ‘송두율 사건’, ‘조정래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은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마교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야한 정신’은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인 보편성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관념보다는 감성에, 명분보다는 실리에, 교조주의보다는 다원주의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집 『귀골』,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과 문학이론서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와 소설 『권태』,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 『불안』, 『자궁 속으로』, 문화비평서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사라를 위한 변명』과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받지 못하여』, 『열려라 참깨』, 『운명』 등의 작품이 있다. 


최근 모 라디오 방송국에 마광수 교수가 출연한 바 있다. 마 교수가 늘 하던 얘기대로 ‘왜 자지, 보지라는 표현을 못쓰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음경, 질이라고 바꿔서 표현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방송이 나간 후 방송에서 상스러운 표현을 했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담당 제작진은 경위서를 제출해야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안되고, 한자어로 하면 된다? 이것이 사대주의가 아일까? 그리고 여전한 성표현에 대한 터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 인터뷰를 월간 『인물과 사상』 2005년 2월호에 실린 마광수 교수의 인터뷰를 지면관계상 뺀 부분을 넣고, 재구성한 글입니다. 잡지에 기고한 글이라 좀 늦게 올라간 점 감안해주시구요. 이번 3월호에 는 조정래, 조영남의 인터뷰가 게재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구입해서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 지승호(이하 지) -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 마광수(이하 마) - 당뇨가 생겨가지고 굉장히 피곤해요. 그래서 술도 못먹고, 담배도 자꾸만 줄여야 되는데, 잘 안되네요. 하루 두갑 반 정도 피우거든요. 의사는 끊으라고 하는데. 늙어가지고, 머리도 빨리 빠지고, 허해지고 그러네요. 


▼ 지 - 1월 25일 이목일 선생님과 거제예술회관에서 판화전을 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즐거운 사라’사건으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던 1992년에도 그림만 그리면서 살았다”고 하셨는데요.

▲ 마 - 그때도 개인전을 한번 했죠. ‘사라’ 사건이 92년 말에 나고, 학교 강연 못하게 되니까 93년 1년 동안 그림만 그렸어요. 그래서 94년에 다도화랑에서 개인전을 했었죠. 그전에도 4인의 에로틱 아트전이라고 91년에 이목일씨 등이랑 했었구요. 이번 전시회는 이목일씨가 다 작업을 해줘서 가능한 거거든요. 판화작업은 복잡합니다. 또 서울은 대관료도 비싸고 그런데, 거기는 시청에서 돈을 줘서 할 수 있게 됐죠.


▼ 지 - “이번에도 미술로 재기를 시작합니다. 힘들 때마다 이상하게 미술에서 힘을 얻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문학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그런 건가요?

▲ 마 - 많이 그랬죠. 예를 들면 재작년에 끝난 문화일보 연재소설이 있었는데, 「별것도 아닌 인생이」이라고. 그 삽화를 제가 매일 직접 그렸죠. 그것도 중간에 하도 야하다고 경고를 하고 그래서 출판을 미루고 있어요.


▼ 지 -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 마 - 아니예요. 장정일 사건 최종심이 2000년에 났는데, 그것도 유죄로 났고, 저하고 같이 전시회하는 이목일씨가 재작년에 누드 퍼포먼스를 했다고 해서 (집행유예가 나오긴 했지만) 유죄판결이 났습니다. 시나브로 그래요. 제가 문화일보 연재를 할 때 간행물윤리위원회 같은데서 경고 조치를 하고, 심지어 검찰에서 신문사에 연락을 하고, 이래가지고 중간에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고 그랬죠.

  신문사에서 겁을 내고 그랬습니다. 써둔 장편소설이 3개나 되는데, 그게 다 연재할 때 경고 받고 중단되고 이런 것들이라 출판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낸 게 다 이론서들이죠.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시학』, 그리고 딱딱한 책으로 『인간』 그런 것들만 냈죠.


▼ 지 - 섹스에 대해 도덕을 앞세워 사회적으로 마녀사냥을 하는 것을 ‘모럴 테러리즘’이라고 지적하셨는데요. ‘성적 매카시즘’이라고도 하셨구요. 지금 한국 사회의 성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수님이 고초를 겪으실 때에 비해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십니까?

▲ 마 - 대중들은 변했어요. 우선 인터넷 때문에 ‘즐거운 사라’ 같은 게 누가 했는지 인터넷에 다 들어가 있더라구요. 볼 사람은 다 보는 거죠.(웃음) ‘별 것도 아닌 인생이’도 인터넷에 다 들어가 있구요. 그거 말고도 야설이라고 해서 집어넣는 글들 뽑아보니까 무지 야해요.

  그런 건 또 넘어가고, 표출되는 것만 본보기로 하는 거죠. 이목일씨 걸린 것만 해도 요새 누드 사진 같은 건 일상화되었는데, 퍼포먼스라고 해서 입건하고 이런 걸 보면 아직도 원칙이 없죠. 지금은 「청소년보호법」이라는 게 생겨가지고 더 적발하기가 쉽게 됐어요.


▼ 지 - 사실 따지고 보면 『즐거운 사라』나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외설스럽고, 위험한 책들도 많고, 인터넷에 보면 온갖 음란한 영상들이 범람하고 있는데요.

▲ 마 - 그럼요. 이제는 SM클럽조차 생기고.(웃음)


▼ 지 - 선생님 책에 도덕주의자들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마 - 글쎄 그게 이중성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유럽 같은 경우는 ‘사라’ 사건 같은 건 상상도 못하거든요. 그리고 미국도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인데도 동성애 같은 걸 합법화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어요. 미국도 포르노에 대해서 관대하고, 수정 헌법 1조가 ‘표현의 자유 절대 보장’이니까 회교 국가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제일 심한 거죠. ‘즐거운 사라’ 같이 구속까지 간 것은 역사상 처음이거든요.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니 『북회귀선』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다 불구속이었고, 무죄가 됐죠. 특히 제가 느낀 건 문단의 이중적 엄숙주의랄까, 봉건유교윤리, 수구윤리하고 미국의 퓨리타니즘 이런 게 결합되어 가지고 우선 문화인들 자체, 교수라든가 지식인들 자체가 성담론에 대해서 자유롭지가 못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도 재임용 탈락시키라고 후배교수들이 주장을 한 적이 있어서 제가 쇼크를 먹었었죠. 그래서 울화병으로 2년 휴직하고, 다시 나갔다가 또 사표 냈는데요. 학교에서 반려해서 나가고는 있는데, 분위기가 안좋죠. 그냥 제가 가만히 교수로만 있었으면 지금은 아주 왕고참이고, 중견인데요.(웃음)

  그동안에 이론서는 꽤 냈거든요. 「성애론」이라는 것도 냈고, 「자유에의 용기」, 「운명」 이런 걸 많이 냈는데, 그런데도 차가운 감자라고 할까요. 인정을 안해주는 것 같아요. 책을 꽤 많이 냈는데도.


▼ 지 - 그런 태도들 때문에 인간적인 배신감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조정래 선생도 『태백산맥』으로 고발당했을 때 ‘태백산맥은 분단문학의 결정판’이라고 칭찬을 하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 마 - 그렇죠. 제 경우는 동료교수들이 다 제 후배들이고, 제가 교수 시켜준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너무 쇼크를 먹었죠. 그러니까 제가 성심리문학을 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인데, 이론서로서 낸 것이 84년에 벌써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라는 걸 냈습니다. 그게 프로이트 식으로 문학분석을 하는 거거든요.

  최근의 『문학과 성』이라는 것도 섹스 중심의 정신분석비평이죠. 그런데 그런 걸 하는 사람이 학계에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이론서로는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하고 『문학과 성』 두 개 밖에 없어요. 문단이든 학계든 간에 심리주의 비평, 특히 성욕 중심의 심리주의 비평에 대해서는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거죠. 이건 외국하고 굉장히 차이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리얼리즘, 민족주의 이런 걸 해야 이른바 ‘문단권력’을 잡을 수 있죠. 


▼ 지 - 서강대 정치학과 강정인 교수가 “일찍이 마광수 교수를 옹호했어야 합니다. 그는 엄숙한 보수주의자들이 아닌 게으른 좌파에 의한 희생양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한 자유주의자를 돕지 않고 이제 와서 송두율 교수를 돕겠다는 것은 뒤늦은 이기주의일 뿐입니다”라고 했는데, 사이비 자유주의자로 매도했던 일부 좌파들에 대한 섭섭함은 없으십니까?

▲ 마 - 최근에 『마광수 살리기』라는 책이 나왔어요. 거기에 강준만 교수니, 김성수 등 여러 사람들 평이 들어가 있는데, 거기서도 많이 지적한 게 그겁니다. 강준만 교수가 ‘마광수가 진보주의자와 같은 배에 탔다’는 소제목을 붙였는데, 근데 진보주의자들이 욕했단 말이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이상한거지. 서양의 진보주의는 반드시 히피즘이라든가, 프리섹스라든가, 성해방운동 이런 거하고 같이 오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진보주의자들이 엄숙한 선비상, 이런 걸 내세우고 좌파 활동을 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많은 것 같구요. 특히 좌파 페미니스트들, 그런 분들도 일종의 성알레르기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할려고 그럽니다.

  굉장히 비겁하다고 할까요? 이중적이라고 할까요? 그런 경향이 아주 심하죠.


▼ 지 - 지금 페미니스트들도 얘기하셨는데요. 우리 사회가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지 않습니까?

▲ 마 - 서구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옛날만 해도 ‘포르노는 강간이다’ 이런식으로 내세우고 그랬죠.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도 그랬구요. 제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냈을 때부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그런데 서구에서는 여성용 포르노 그런 것도 나오고, 미국에서는 예전에 『플레이걸』이라는 잡지도 나오고, 그러면서 ‘단순히 성을 반대하는 것이 여성의 자유는 아니다. 여성이 남자를 강간할 수도 있고, 여성의 요구에 의해서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의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성을 전부 남성주도의 성으로만 봐가지고 ‘여자의 성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착취당할 뿐이다’라고 생각해서 여성들이 갖고 있는 ‘성의 행복권’ 이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심하죠.


▼ 지 - 학교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 마 - 사표를 냈는데, 반려를 해서 학교에 나가고는 있어요. 그런데 대학원 강의도 안주고 해서 학부강의만 하고 있어요. 제자도 못키우고 그러죠.(웃음) 지금 제 제자가 국문과 교수가 되어 있는데, 지금 완전히 소외되고 있죠.


▼ 지 - 지금 갖고 계신 원고를 발표하지 못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 마 - 하도 그때 후유증이 커가지고, 또 문화일보 연재할 때 보니까 똑같더라구요. 달라진 줄 알았는데, 계속 경고 들어오고, 중간에 고치자고 해서 플롯을 고치다 보니까 작품도 엉망이 되버리고, 장정일씨 사건이라든가 이런 걸 보면, 특히 저한테는 더 그래요. 『즐거운 사라』 같은 경우 잡지에 연재를 할 땐 경고도 없었거든요.

▲ 『즐거운 사라』 ⓒ 엠파스 이미지 검색

  그런데 이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나 『권태』, 『가자 장미여관으로』, 『광마일기』, 이런 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경고 조치를 다 받았거든요. 그러다가 『즐거운 사라』가 나와서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팔리다가 걸렸는데도 8만부가 나갔어요. 그러고 금지된 거죠. 본때 보이기라는 게 맞고, 권위주의의 결과죠.

  문화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그때 현승종 총리가 지시한 것이고, 이건개 서울지검장이 지휘를 해서 김진태 검사한테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나온 기사인데, 그런걸 보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상명하복 식으로 이루어진 수사죠. 전격구속 이런 게 그 이후로는 없는데, 장정일도 불구속기소였거든요.

  그때 구속적부심 청구도 했는데 기각되고, 보석청구했는데도 기각되고, 이게 국가적 사건이기 때문에 기각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유림에서는 ‘마광수는 체제전복적 인물’이라고 발표하고, 이문열씨 같은 경우 ‘잘 잡아갔다. 구역질이 난다’고 하기도 하고.


▼ 지 - 문단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차가운 감자’에 비유하셨는데요. 한국 문단이 좀 폐쇄적인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이문열씨는 ‘그가 어떤 공인된 절차를 거쳐 우리 소설 문단에 데뷔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마광수를 소설가로 부를 수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 마 - 시는 제가 공식으로 데뷔했지만, 소설은 신춘문예 당선 같은 거 없이 문학사상에 「권태」라는 장편소설을 연재했거든요. 그때 제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니까 『문학사상』에서 상업적 욕심에서 연재시킨 거죠.(웃음) 말하자면 당선하지 않고, 소설을 썼다는 건데, 말이 안되는 거죠. 요새는 인터넷 소설 같은 게 데뷔 절차를 거치고 하나요?

  아무나 쓰는 거죠. 귀여니도 그렇고, 일반소설도 그래요. 하일지씨 같은 경우도 신춘문예 거치지 않고, 『경마장 가는 길』 써서 데뷔했잖아요.


▼ 지 - 『해리포터』 같은 것도 그런 셈인데요.(웃음) 구속되셨을 때 제자들이 『마광수는 옳다』라는 책을 냈는데요.

▲ 마 - 아주 힘이 됐죠. 700여 페이지나 되는 책인데. 아주 고마운 일이죠.


▼ 지 - 책을 통해 ‘마광수 교수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표현까지 하면서 옹호했는데요. 필화로 인해 구속된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책까지 펴내가면서 옹호하는 경우는 없었는데요. 그렇게 제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마 - 지금도 그렇고 학생들은 다 좋아해요. 선생들이 문제지.(웃음) 제가 교수가 된 게 79년인데 홍익대학에서 시작해서 5년 있다가 84년에 연대로 갔는데요. 홍대에서부터 굉장히 인기가 좋았어요. 수강생이 미어터지고. 요새는 수강제한제도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제한제도 없을 때는 1,500명씩 들어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강당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굉장히 엄숙주의적이고, 아케데믹한 강의만 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맨날 학생들한테 얘기하는 게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이거거든요. 연세대 교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거든요. 그게 성경에 있는 건데, 진리라는 게 잘못하면 도그마가 되고, 마녀재판이 되고 그러잖아요. 그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지면 엄청난 폭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가 먼저 선행이 되어야 된다고 해서 자유에 관한 글을 많이 썼죠.

  『자유에의 용기』 이런 에세이집도 있고, 그런 자유정신 이런 걸 심어준 게 애들한테 인상이 깊었다고 지금까지 제자들이 많이 얘기해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억압되어 있던 시절이니까.


▼ 지 - 강의를 통해 제자들을 만나면서 힘을 많이 얻으시는 것 같은데요. ‘마교수라는 직함 자체가 하나의 별명이 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광수 교수의 문학강의’라는 표현도 있던데요.

▲ 마 - 『마광수 살리기』에 제 제자가 교수가 되어서 글을 썼는데, ‘도저한 자유주의자’ 이런 표현을 썼어요. 자유, 특히 표현의 자유 같은 걸 살리기 위해서 학생들 레포트라든가 시험을 볼 때도 아주 자유롭게 자기의 성적 망상 같은 걸 써내라고 그랬거든요. 묘하게 아주 옛날부터 그런 게 많은 환영을 받았어요.

  그땐 인터넷도 없고 그럴 땐데도 써낸 레포트라든가 답안지를 보면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이른바 야한 내용들이 많았고, 거기서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즐거운 사라』 같은 경우도 주인공이 여대생인데, 심리묘사 같은 건 제가 학생들한테 많이 주워들은 거예요. 학생들이 겉으로는 굉장히 점잖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자유를 꿈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지금도 그렇구요.


▼ 지 - 준비하시는 작품 내용은 어떤 겁니까?

▲ 마 - 산문집하고, 지금 소설 세 개 중에서 제일 안야한 거가 하나 있어요.(웃음) 『광마잡담』이라고. 그걸 낼려고 하구요. 또 시집 낸 지가 5년이나 돼서 시집을 하나 낼려고 그러죠. 우선 산문집부터 나오고.


▼ 지 - 선생님에 대한 여러 가지 공격들이 한국사회의 왕따현상하고 맞물리는 것 같거든요. 약해보이는 사람에 대한 공격이나 성문제에 대한 터부 이런 것이 겹쳐져서.

▲ 마 - 제가 깜짝 놀랐던 게 1989에 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에세이집인데, 국문과 노교수들이 교수회의 소집해서 저를 가운데 앉혀놓고 인민재판을 했다구요. 교수품위를 떨어뜨렸다고 해서 그 다음 한 학기 강의를 못했죠. 일종의 린치죠.

  학칙에도 없는 과결정의 제재였습니다. 그때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6개월 만에 다시 했지만, 그때도 쇼크를 먹었어요. 그건 야한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집인데, 오직 성에 관한 얘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때도 여성학계에서 반발이 심했죠. 이대 신문에다가 ‘혼전섹스는 오럴섹스가 좋다’ 이런 걸 썼는데, 좋은 뜻으로 쓴 거거든요.

  ‘임신을 방지해준다’ 이렇게 토를 붙였는데도 불구하고, 그거 갖고 물고 늘어지고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졌었죠. 많이 외롭죠. 지금도 인터넷 말고는 젊은 작가들도 성에 치중하는 작품을 쓰는 사람도 없어요. 장정일씨  빼고는. 그런데 장정일씨도 겁먹어서 못쓰고 있잖아요. 삼국지나 쓰고 있고.(웃음)


▼ 지 - 그게 문화적 손실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정치적 민주화에 비해 문화적 민주화가 뒤졌다’는 지적을 하셨는데요.

▲ 마 - 문화독재라고 맨날 얘기했죠.


▼ 지 - 정치적인 민주화의 절차는 상당히 밟아가고 있는데. 

▲ 마 - 그럼요. 지금은 대통령 욕해도 되고 그건 좋은데, 이상하게 문화에 대해서만은 표현의 자유가 범국민적으로 합의가 안되요. 자유에 대한 것도. 맨날 흔히 외치는 것이 ‘자유는 좋지만, 방종은 안된다. 향략은 안된다. 쾌락 안된다’ 이런 건데, 저는 맨날 주장하는 게 ‘향락이라는 건 즐거운 걸 누린다는 뜻이고, 쾌락이라는 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얘기하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쾌락주의라든가, 유미주의, 탐미주의,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경우가 우리나라는 거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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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정부주의를 좋아하는데, 그건 개인에게 미치는 권력을 최소화하자 이런 거거든요. 서구는 무정부주의라든가, 탐미주의라든가 이런 역사를 다 거치죠. 문화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이 확립될 때까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문화인 내지 학자들이 굉장히 엄숙주의야, 아직도 자유의 제한을 주장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죠. 심지어 표현의 자유조차도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주어지면 신문의 상업성이 더 발달한다든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상업성, 맨날 제가 욕먹는 성의 상품화 같은 것, 인간의 상품화, 몸의 상품화가 촉진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자본주의 논리에는 맞지 않는 거거든요. 제가 『인간』이라는 책에서 심지어 한 챕터 제목으로 ‘몸의 상품화는 인간해방을 돕는다’라고까지 썼는데, 학자가 지식을 상품화하는 것은 좋고, 몸을 상품화하는 것은 안된다고 하면서, 배용준이 얼굴을 상품화해서 한류 일으킨 건 또 칭찬하잖아요. 그게 앞뒤가 안맞는 얘기지, 지금 학자들이 옛날 좌파가 무너지니까 욕망이론, 몸이론 이라는 걸 떠드는데, 그건 제가 80년대부터 떠들던 거거든요.

  저는 그걸 ‘육체주의’라고 했죠. 육체주의가 정신주의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뒤늦게 프랑스에서 그러니까 그대로 수입해다가 베껴먹죠. 그러면서도 성문학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방관적이고. 거의 양비론입니다. 그때 ‘사라’ 사건 때도 이문열, 손봉호, 안경환 같은 사람은 독하게 욕을 했고, 그때 저에 관한 글이 100종류쯤 되는데, 그 중에서 70%는 양비론이었어요. 경찰도 나쁘고, 마광수도 나쁘다, 지금도 그 정도 수준인 것 같아요.


▼ 지 - 그런 것도 학계의 문화적 사대주의 같은 걸텐데요. 그때 재밌는 표현 중 하나가 ‘야구장에서 반칙을 한 선수를 경찰이 갑자기 들어와서 잡아간 격’이라는 것이었는데요. 문화계 안에서 해결되어야할 부분에 공권력이 개입한 셈입니다. 정혜신 박사는 마광수 교수의 구속에 대해 ‘20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적 후진성과 야만성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 이후 지금 어느 정도 변화는 있다고 보십니까? 아직도 1,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가진 작가인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기도 한데요.

▲ 마 - 그게 똑같은 거예요. 이번에 『마광수 살리기』에도 어떤 법학자가 글을 썼는데, ‘마광수 사건과 송두율 사건은 똑같다’고 글을 썼어요. 그러니까 두 가지라는 거죠. 하나는 좌파이데올리기, 하나는 성이데올로기 그 두 가지에 대해서만은 못참아주는 그런 보수세력이 너무 많다는 거죠.


▼ 지 - 그런 게 언제쯤 변화될 거라고 보십니까?

▲ 마 - 아주 힘들다고 봐요. 요즘 조선일보 같은데서 계속 날뛰는 것도 그렇고, 이모씨가 『인간의 길』이라고 박정희 찬양하는 장편소설까지 내고, 조선일보 연재해서 박정희 전기도 나오고, 지금 박근혜씨가 굉장히 인기를 끈다든가, 이런 걸 보면 세상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력 잡은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잡더라구요. 특히 학계 권력이라든가, 문단 권력을 보면 그래요. 최근에 돌아가신 김춘수 선생 같은 분들도 유신 때 국회의원 해먹고 그랬잖아요.

  그런데도 죽으면 되게 추모하고 그렇잖아요. 서정주도 그렇고. 사후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기득권만 유지하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대세가 바뀌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아요.


▼ 지 -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어느 방송국에서 ‘존경하는 인물’ 조사한 걸 보니까 박정희 前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김대중 前 대통령과의 차이가 거의 없었거든요. 서정주 시인 같은 경우도 부정적인 평가가 늘고 있지 않습니까?

▲ 마 - 그렇죠. 고은씨가 비판하고 그랬죠. 하여튼 권력지향적인 게 문제예요. 제가 학교에서도 있어보니까 교수들이 굉장히 권력을 지향해요. 예컨대 보직 같은 거, 처장이라든가, 학장이라든가, 또 그런 거 하면 연대나 서울대 교수는 장관도 잘돼요. 지금 교육부 장관이 다 교수출신이잖아요. 문단도 마찬가지야, 감투가 굉장히 많아요.

  문인협회 회장이라든가 팬클럽위원장이라든가 시인협회 회장이라든가, 그거 말고도 파벌이 있잖아요. ‘문학과 지성’파, ‘창작과 비평’파 그래가지고 계속 거기 들락거리고 같이 술을 마시고, 안면을 터야 원고 청탁도 오고, 상도 받는 거지, 저처럼 혼자서 가면 학교에서도 그렇고, 문단에서도 그렇고, 아주 동떨어지기 쉽죠. 그러니까 처세가 굉장히 중요시되는 사회예요. 그래서 처신만 잘하면 전두환 때도 해먹고, 지금도 해먹는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정치가나 학자 중에.


▼ 지 - 그런 것들에 대해 “21세기를 맞이한 지금에 있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가장 뼈아프게 절망하고 있는 것은 ‘문화적 촌티’다. 이것은 문화독재적 사고방식과 수구적 봉건윤리로부터 기인하는데, 이 ‘문화적 촌티’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하고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바로 ‘표현의 자유 억압’과 변화의 거부, 그리고 ‘성의식의 이중성’인 것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마 - 그러니까 결국 지식인의 책문데, 대중들은 굉장히 자유화되었다고 볼 수 있죠. 인터넷을 통해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개진을 하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변신을 한다는 거예요. 학생들도 보면 대학 때 다르고, 대학원 때 다르거든요. 교수되면 또 달라지고, 제가 「나이값」이라는 글에서 ‘제발 나이값 좀 하지 마라’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나이만 좀 들면 보수로 바뀌고, 권력지향적이 되어버리죠.

  그게 우리나라의 제일 큰 병폐예요. 서양의 경우에는 피카소나 헨리 밀러 같은 경우 칠팔십대에도 야한 그림 그리고, 야한 소설 썼거든요. 우리 작가들보면 50살만 지나도 역사소설, 민족소설 이런 대하소설만 쓴단 말이예요. 그래야만 인정을 받고. 젊었을 때는 연애소설을 쓰다가도 그렇게 변하죠. 이게 아주 심하거든요. 그게 일본하고 다른 점입니다. 일본은 제가 『즐거운 사라』 번역판을 냈을 때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많이 팔렸는데요. 전혀 문화 풍토가 달라요.

  거긴 굉장히 탐미주의를 인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죠.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무라까미 류 같은 경우 ‘즐거운 사라’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야하거든요. 상도 받고 그러잖아요. 거긴 예술가라든가 학자들이 굉장히 자유로운데다가 성문제에 대해서 점잖주의가 덜하죠.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조금만 먹으면 점잖아져야 한다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지금 신세대들도 못믿어요. 젊었을 때는 다 야했단 말이예요.

  70년대 히피 바람 불고, 초미니스커트, 장발, 통기타, 청년문화라고 그랬는데, 그때 안야했나요? 다 야했지.(웃음) 386세대도 그렇고. 그런데 나이 먹고 권력만 좀 쥐면 싹 달라지거든요. 교복 같은 것만 봐도 고등학생 교복 교복자율화시켰다가 못봐주겠거든, 그러니까 도로 교복으로 바꿨잖아요.


▼ 지 - 나이 들면 그런 쪽으로 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수님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통을 많이 당하기도 하고, 소위 ‘대하소설’을 쓰다가 잡혀가면 인정받고, 저항하는 작가라고 인정받지만, 장정일씨나 교수님 같은 경우 고초를 겪어도 옹호해줘야 될 진보진영조차도 엄숙주의에 빠져서 같이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요.

▲ 마 - 그게 강준만씨 등이 개탄하는 거죠. 진보주의조차도 엄숙주의를 가장하고, 봉건유교윤리와 미국의 퓨리타니즘의 결합이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요. 그래서 미국박사가 많은지도 모르겠는데요. 세계에서 교회가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잖아요. 또 기독교윤리실천협의회니 음란물대책협의회니 이런 민간단체들이 많잖아요.

  순결보호운동, 순결서약식하고 이런 게 한쪽으로 막 있으니까 당할 재주가 없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굉장한 힘을 갖고 있거든요. 거기에 반대하는 단체는 없단 말이예요.


▼ 지 - 저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당신들이야말로 도덕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냐’는.

▲ 마 - 제가 맨날 도덕적 테러주의자들이라고 하죠. 그때 서울대 교수하던 손봉호씨가 간행물 윤리위원이었는데, 그때 신문에 심지어 이렇게 썼어요. ‘마광수 때문에 AIDS가 늘어난다’고. ‘마광수 신드롬을 척결하자’고 썼는데, 지금 총장까지 하고 있잖아요. 그런 거보면서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도덕만 팔아먹으면 정권의 추이와 관계없이 사회의 어른이 되고, 출세도 하는 이런 게 아주 공식처럼 되어 있죠.


▼ 지 - 대단히 근거 없는 비난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아무래도 약자인 입장이라.

▲ 마 - 명예훼손 깜이지. AIDS하고 제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웃음)


▼ 지 - 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과 미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요.

▲ 마 - 똑같죠. 그 전에도 에로틱아트전이라고 했거든요. 이목일, 이외수씨 등이랑 했고, 개인전할 때도 야한 그림 많이 그렸습니다. 야한 건 이번에는 뺐지만. 미술이 좀 더 자유로워요. 우선 미술대학에서 누드 데생 같은 것이 필수고, 누드 그림 같은 건 다 봐주잖아요.

  그러다가 누드 퍼포먼스는 잡아갔지만, 들쭉날쭉이지, 그래도 미술 하는 사람들이 훨씬 자유로워요. 퍼포먼스라든가 설치미술 이런데서 인간의 몸을 많이 이용하죠. 그런데 문학은 이상하게 옛날 조선조 식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문자로 된 것은 다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이율곡이 쓴 『격몽요결』이라든가 이런 식으로, 이광수의 문필행위라든가 이런 것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이잖아요. 훈민정음이라는 뜻도 그거잖아요. 그런 엘리트 의식이 굉장히 많죠. 선량의식 같은 것.


▼ 지 - 그럼 문학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미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같은 건가요?

▲ 마 - 그렇죠. 미술을 통해서는 현란한 색채 같은 걸 많이 쓰고, 삽화에서도 많이 썼죠. 일간스포츠 같은데, 4년 칼럼 연재할 때도 삽화를 제가 직접 다 그렸는데, 그런 일이 많았어요. 성기 같은걸 그려 넣으면 신문사에서 그것만 오려서 내보내곤 했죠.(웃음)


▼ 지 - 정혜신 박사가 ‘피해의식, 시대와의 불륜-시대와의 불화’라는 코드로 정형근 의원과 마광수 교수님을 비교한 글이 있는데요.

▲ 마 - 못봤는데요. 정형근과 저를 비교하는 글이 『신동아』에 나왔었어요. ‘정형근과 마광수의 불안’ 그래가지고.


▼ 지 - 아마 그 글이 맞을 것 같은데요. 물론 다르지만, 정형근도 자신은 시대에 충실했다고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 피해의식이라는 게 색깔은 다르지만, 피해의식이라는 면에서는 비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 마 - 맞아요. 그런 내용이었어요.


▼ 지 -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면 피해의식이 내면화 된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도 그런 고통을 많이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셨지 않습니까?

▲ 마 - 지금도 피해의식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책도 마음대로 못내고, 특히 학교에서 그런 일 당하고서는 아주 심했어요. 그래서 입원까지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구요.


▼ 지 - 그런 고통이 창작활동에 어떤 제약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 마 - 엄청난 제약이죠. 제가 『사라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표현했어요. ‘글을 쓰는데, 자꾸 누가 팔을 건드린다’고.


▼ 지 - “‘사라’ 사건 이후 제일 안타까운 것은 글 쓸 의욕이 사그러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의욕이 사그라들었다기보다 피해의식과 겁이 많아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곁에서 마구마구 격려를 해준다고 해도 잘 써질까 말까 한 게 글인데, 글을 쓸 때마다 마치 펜을 든 팔을 툭툭 차이는 상태가 수년을 이어졌으니 말이다”라고 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 마 - 그래서 간행물윤리위원회 같은 단체가 없어져야 해요. 엄연한 검열이거든요. 거기서 일 년에 수백 권의 책을 판금시켜요. 고발하고. 지금 뭐 북한서적, 북한의 월북한 작가들 것은 해금됐다고 그래서 굉장히 표현의 자유가 좋아진 걸로 아는데,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금서로 정한 게 많죠.

  예컨대 사드 같은 작가, 서양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잖아요. 사디즘, 제가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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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논문도 많이 쓰고 그랬는데, 그 사람 꺼 『소돔 120일』이라는 게 있어요. 그것도 나오자마자 판금되더라구요. 90년대 후반에. 또 『변태』라는 책이 있어요. 가서원에서 나온 건데, 나오자마자 판금됐죠. 옛날에 주로 빨갱이 서적을 판금시켰는데, 이제는 잡을 건수가 없으니까 전부 에로티시즘이야, 걔들도 월급 받으니까 건수를 올려야 되잖아요. 그런 게 엄연히 문화부 산하의 정부기관으로 있으니까 아직도 변한 게 없는 거죠.


▼ 지 - 검열기관도 문제가 있겠지만, 실제로 항의하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될텐데요. ‘사라’ 사건 때도 재판부 스스로 ‘이게 몇 년이 지나면 굉장히 우스운 사건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고 했고, 『태백산맥』 같은 경우도 10년째 재판을 끌고 있는 것이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재판부의 곤혹스러움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 마 - 적은 소수가 굉장히 무섭더라구요. 제가 느낀 건데, 백명 중에 99명이 좋아한다고 해도 한명만 싫어한다고 하면 한명의 목소리가 과장되서 보도가 되요. 언제나. 예를 들면 학교에서도 총장한테 투서가 많이 들어갔다구요. ‘마광수 내쫓으라’고. 그런데 저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투서를 안한다구요. ‘마광수 좋아한다’고 투서할 일이 없잖아요.(웃음)

  그런데 증오하는 독자들은 투서를 하거든요. 그럼 저는 총장한테 불려가거든요. 학교에서는 큰일이 난 줄 아는 거구요. 그러니까 보수적인 소수가 아주 무서운 거죠. 그 사람들이 마치 여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구니까요.


▼ 지 - 어쩔 수 없이 이쪽에서 그걸 지키기 위한 노력들도 많이 해야 될 것 같은데요.

▲ 마 -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어요. 그런 연대라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운동이 전혀 없어요. 제가 잡혀 갔을 때도 그렇고, 물론 그때 200명이 서명을 해서 시위도 해주긴 했지만, 그게 단서를 달고 있었다구요.


▼ 지 - 마광수 소설이 나쁘지만…….(웃음)

▲ 마 - 그러니까 해주나 마나죠. 이문열도 거기 서명은 했거든요. 그래놓고 딴 소리하고. 장정일 사건 때도 그렇고. 문단에서는 전혀 반발이 없었죠. 저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이라도 책도 내주고 그랬는데, 그런 게 제가 봐도 아주 신기한 거예요. 요새 신세대 작가들 ‘김영하’니 ‘은희경’이니 ‘한강’이니 상도 많이 타고 그러는데, 다 제자들이예요. ‘성석제’도 그렇고, 제가 다 가르친 친구들인데,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특히 성적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 지 - 아까 페미니스트들의 성적 보수성을 얘기하셨는데요. 클린턴의 ‘지퍼게이트’ 때 미국의 여성운동진영이 고민 끝에 클린턴을 옹호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한국이라면 상황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 마 - 글쎄 말이예요. 한국 페미니즘도 좀 달라져야 되는데요. 요샌 모르겠어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권태』 같은 게 나왔을 때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긴 비평 같은 게 많이 나왔어요. 심지어 『마광수의 야한 여자론 비판』, 『그래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다』 같이 책으로 두껍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게 다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 서서 썼거든요.

  아주 우리나라 남자들을 보면 집에서 마누라를 패더라도 밖에서는 애처가인 척 하는 위장된 페미니스트 남성이 굉장히 많은 것 같구요. 페미니스트들도 대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말하자면 교수들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그런지 아카데미즘이라든가 권력으로 포장하려고 드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성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면, 특히 자유로운 성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면 손해다, 이런 생각이 넓게 퍼져있기 때문에 그런 담론이 잘 안나오죠.


▼ 지 - 그동안의 피해의식 탓인지 성에 대한 주체의식을 여성들 스스로 많이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수동적이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 깬 것 같은 분들도 성에 대해서는 성을 자기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같이 즐기는 게 아니라 남자한테 주는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 마 - 그렇죠. 그래서 『즐거운 사라』가 걸린 거거든요. 『즐거운 사라』를 통해 제가 그걸 깨부순 거거든요. 어느 젊은 평론가는 우리나라 현대소설 사상 여자가 성을 주도한 소설은 『즐거운 사라』가 최초라고 평을 해줬어요. 근데 그 말이 맞는 게, 그전까지의 여주인공들을 보면 『별들의 고향』의 ‘경아’라든가, 『감자』의 ‘복녀’라든가 적극적으로 할려다가 나중에는 자살하거나 파멸하거나 이런 걸로 끝나죠. 마치 ‘보봐리 부인’처럼 자살하는 식으로.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성의 능동성에 대해서는 표현이 없었어요. 저도 비판한 게 있는데, 예를 들어서 박완서 선생의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이런 게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건데, 거기에 나오는 성묘사를 보면 여자는 성감이 전혀 없는 걸로 나와요. 남자가 하자니까 할 수 없이 하고, 남자가 좋아하니까 자기도 억지로 비명소리 질러주고, ‘해줬다’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길게 비평을 했었죠. 여자들도 특히 여학생들 레포트 받아보면 굉장히 성감이 발달해있거든요. 에로틱 판타지도 많이 즐기고.


▼ 지 - 오히려 거기에 비하면 남자들이 더 하등동물인 것 같은데요. 상상력도 부족하고, 성감대도 집중되어 있고.(웃음)

▲ 마 - 그렇죠. 맞는 말씀이예요. 판타지의 내용이 여학생들이 훨씬 다채로워요. 남자들은 동물적이고 단순하지.


▼ 지 -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죠? 윤동주 시인을 저항시인이 아니라 휴머니스트이자 자신에게 솔직한 시인이었다고 평가하셨는데요.

▲ 마 - 그게 윤동주 뿐 아니라 우리나라 해방 전 작가들에 대한 가장 잘못된 이해죠. 그래서 제가 「이상화론」 쓸 때도 “‘나의 침실로’ 같은 것도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침실로 가서 섹스하자는 것이다”고 했어요.

  내용 보면 그렇거든요. 침실이 뭐예요? 방인데. 근데도 그걸 해방공간이니 이렇게 해석한다구요. 이상도 마찬가지예요. 이상의 「오감도」도 ‘정자들의 질주’라고 해석했는데요. 그것도 전부 식민지 시대의 불안을 표현했다, 이런 식으로 간단 말이예요. 윤동주가 저항한 게 없거든요.

  이한열 같은 거예요. 재수 없어서 죽은 거야, 불심검문에 걸려서. 그런데 그 사람 시에 저항이란 걸 한 구석도 찾아볼 수가 없지, 있다면 전부 자신에 대한 저항이죠. 「십자가」라든가 「간」이라든가 「또 다른 고향」이라든가 읽어보면 전부 내부의 자아분열 이런 걸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제가 심리적으로 해석을 했죠.


▼ 지 - 어떻게 보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거고, 교수님의 그런 비평에 대해서 ‘신성모독’처럼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마 - 지금도 학생들보면 고등학교에서 배워온 게 너무 터무니없어요. 제가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냈는데, 거기서 전 카타르시스란 오로지 욕망의 대리배설이라고 주장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그걸 도덕적 정화라고 가르친다는 거죠.

  그래서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거지, ‘왜 도덕적 정화인가, 작품들이 내용은 안그런데’ 하고. 그런 식으로 짜맞추기 식 비평을 하다 보니, 심지어 김수영도 저항시인이 되고, 참여시인이 되고 이런 식으로 되는 겁니다. 아직도 그런 저항 콤플렉스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친일한 작가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예컨대 노천명이라든가, 서정주, 김동리 다 친일했거든요. 그런데도 그런데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 지 - 요즘 친일파 진상규명…….

▲ 마 - 사전까지 만들고 있죠. 저도 거기 돈도 냈어요.


▼ 지 - 그런 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마 - 아주 좋은 거죠. 여태까지 대물림을 했거든, 친일파가 해방 후 친미파가 되고 박정희 찬양자가 되고, 전두환 찬양자가 되고 이런 식으로 대물림을 하면서 출세했다구요. 독립운동한 사람들 자손들은 다 굶어죽고, 이런 게 우리 역사의 제일 큰 오류죠. 이승만이 잘못한 거지. 해방 후에 정리를 했어야 되는데, 오히려 반민특위를 방해했으니까. 지금도 그래요. 전두 환때 해먹던 사람들이 계속 해먹는걸 보면 울화가 나요. 문단이 그런 게 아주 심하죠. 김동리, 서정주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친권력적이었거든요.


▼ 지 - 그렇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또 후배들을 키워주고, 어떻게 보면 ‘조폭집단’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웃음)

▲ 마 - 그렇죠. 부하를 만드는 거죠. 서정주 살아 있을 때 제자들에 의해서 흉상이 만들어지고 그랬잖아요. 우리나라는 늙어서 부하가 없으면 굉장히 외롭지, 그런데 부하를 만들려면 문단의 유파를 만들어야 되고.


▼ 지 - 그러다보니 비평도 ‘주례사 비평’이 되는 것 같은데요.

▲ 마 - 그렇죠. 얼굴 아는데, 욕할 수가 없거든. 맨날 같이 술 먹는데 어떻게 욕을 해요.(웃음) 그래서 ‘주례사 비평’이란 얘기가 나왔겠죠. 이문열이 나를 욕한 것도 ‘그 원인이 내가 이문열을 욕했기 때문’이라고 강준만 교수가 쓴 적이 있는데요. 그런지도 몰라요. 제가 이문열을 욕하는 평론을 썼거든요.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죠. 이문열은 아주 군림을 하고 있죠.


▼ 지 - 어떤 내용의 비판이었습니까?

▲ 마 - ‘교양주의자’라는 거죠. 『현대문학』에 발표한 건데 제목이 「교양주의의 극복」이었어요. 소설의 본질을 저는 정직한 배설이라고 보는데, 이 사람은 계속 지식을 상품화해서 독자들한테 교양시키는 그런 걸 주로 한다는 내용이었죠.


▼ 지 - 그것 때문에 굉장한 성공을 거뒀고, 정치적인 입장의 글들을 발표하면서 많은 독자를 잃기도 했지 않습니까?

▲ 마 - 그렇죠. 반품운동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도 여전해요. 『삼국지』 같은 건 엄청나게 팔았죠. 1,000만부가 팔렸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 지 - 삼국지』에 대한 열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마 -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더 쳐주고, 『수호전』도 많이 보는데, 『수호전』은 산적 얘기잖아요. 따지고 보면 민중의 얘기일 수 있죠. 그런데 『삼국지』는 권력자들의 얘기거든요. 그 입장에서 서술한 거고. 삼국지에 이렇게 열광하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권력지향적으로 돼서 그런 것 같아요.


▼ 지 -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마 교수님의 책 한권 읽어보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 마 - 특히 제목만 보고 그러는 경우가 많았죠. 예컨대 ‘야하다’는 말이나 ‘장미여관’ 이러니까 읽지도 않고 그랬었죠. 지금은 야하다는 말이 별 것도 아닌데, 그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발칙한 말로 받아들여졌어요.


▼ 지 - 그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 마 - 제발 읽어달라는 거죠. 제가 설득하는 책도 많이 썼거든요. 『운명』이니 『성애론』, 『자유에의 용기』, 최근에 낸 『문학과 성』 이런 것이 다 설득하는 책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또 안팔려요.(웃음) 


▼ 지 -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얘기의 핵심이 ‘야한 정신’ 같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야한 정신이라는 게 어떤 것입니까?

▲ 마 - 전체보다는 개인, 봉건윤리가 아니라 자유주의 윤리, 그리고 특히 야하다를 들野자를 써서 자연의 본성에 솔직한 사람 이런 뜻으로 쓰죠.


▼ 지 - 요즘 보면 TV 심야토크쇼 같은 걸 보면 연예인들이 솔직하게 말하는 방송들이 많지 않습니까?

▲ 마 - 그건 많이 달라졌어요.


▼ 지 - 거기에 대해 ‘저질방송’이라는 비판도 꽤 많이 제기되는데요.

▲ 마 - 방송 심의도 굉장히 까다로워요. 저도 ‘사라’ 사건 이전에 방송출연정지를 먹은 적이 있고, 그 사건 이후엔 방송출연금진데, 정지 먹은 이유가 대담프로에서 야한 얘기를 했다는 거거든요. 그게 방송위원회에서 개인을 출연정지시킨 최초의 사건이예요. 그러니까 소위 품위 있는 방송을 해야 된다, 이런 게 굉장히 많죠.

  가수한테까지 공인으로서의 품위를 요구하고, 여배우들도 스캔들이 나면 매장되고 말이지, 이런 것들이 미국하고도 다르죠. 마돈나 같은 경우는 스캔들을 만들어서 유명해진 여잔데, 우리나라에서는 탤런트도 시집 잘 가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인정을 받으니까 자유분방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 탤런트가 되기가 어렵죠.


▼ 지 - 친하신 작가분이나 좋아하시는 분들은 있으십니까?

▲ 마 - 없어요. 문단 교제가 없으니까 기껏해야 하일지, 장정일씨 정도죠. 하일지씨는 그때 재판할 때 증인이 되어줬고, 장정일씨는 절 옹호하는 글을 써줬었죠. 「마광수 구속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해서.


▼ 지 - 요즘 특별히 관심가지신 일은 있으십니까?

▲ 마 - 요즘 좀 맥이 빠져 있어요. 관심은 계속 여전한데, 우선 제 몸이 늙으니까 기운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예요. 제 소망은 더 용기를 내서 미발표 작품도 발표하고, 한편으로는 산문으로 계몽을 해야 될 것 같아요.(웃음) 제가 맨날 얘기하는 게 우리나라는 아직 계몽주의 시대도 안됐다는 말이거든요.

  계몽주의 시대 때 한 게 종교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든가 비합리성에 대한 저항 이런 거 아니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합리적인 생각조차도 뿌리를 못박고 있거든요. 전근대적이라는 얘기지. 겉으로는 최신 프랑스 철학을 수입하면서도. 산문으로서 일종의 계몽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 전에도 많이 했죠. 『사라를 위한 변명』 같은 것도 그렇고, '운명'도 그런거고.


▼ 지 - 계몽이 분명히 필요한 것 같은데, 요즘 대중들은 스포츠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지식인들의 계몽행위 비슷한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 마 - 인터넷이 걱정이예요. 인터넷 때문에 책을 안보고, 혼자 고독하게 사색을 한다든가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어요. 완전히 바보를 만들어버리더라구요. 인터넷 중독이 생기고, 게임 중독이 생기고, 제가 '인간'이라는 책에서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유’ 이런 얘기도 했는데, 너무 쓰레기 같은 정보가 남발되다보니까 갈피를 못잡는 것 같아요.


▼ 지 - 마흔 살에 연애를 하고 싶어서 이혼하셨는데, 지금은 너무 외로워서 후회한다고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한국사회에서 점점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도 이혼에 대해 터뷰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 마 - 이혼율 높아지는 것은 제가 많이 얘기했던 거죠. 제가 당당한 독신남, 당당한 독신녀라는 용어를 글에다 많이 썼죠. 당당한 미혼모, 당당한 미혼부 이런 얘기도 많이 썼는데, 점차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추세라고 볼 수 있죠.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이혼율이 50% 정도 되다보니까 젊은이들이 거의 계약동거를 하거든요.

  그리고 이혼할 때 드는 위자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결혼을 굉장히 무서워요. 저도 이제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거지, 결혼하고 싶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근데 여자 만나본지도 하도 오래 되서.(웃음)


▼ 지 - 어느 인터뷰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이상형 같은 건 있으신가요?

▲ 마 - 저야 여전히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제가 너무 늙어버렸어요. 제 또래인 안성기씨나 조용필씨를 보면 아직도 머리가 새카맣고, 숱도 많고 그런데 저는 갑자기 머리가 빠지고, 허얘지고 그래서 할아버지 소리도 듣고, 그러니까 외모에 대해서 요새 열등감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도 기회가 되면 하고 싶지, 그렇지만 옛날처럼 적극적으로 대쉬하거나 하는 힘은 떨어졌어요. 제가 마흔살까지만 해도 연애지상주의자였는데, 그래서 이혼했구요. 제가 글에다가도 많이 쓰고, 강의에서도 많이 얘기하는 게 결혼하고서 3년은 애를 안 낳아야 된다는 거죠.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혼 후유증이 덜한 거지, 근데 요즘 애들 보면 전부 속도위반이야, 그래가지고 덜컥 애부터 낳고, 2∼3년 만에 또 이혼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교육이 꼭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피임교육 주장 많이 하고, 중학생 때부터 피임교육 시켜야 된다고 얘기하고, 특히 오랄섹스 강조하고, 그런 건데 그게 안지켜지더라구요.

  대학생들도 전부 덤덤하게 만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슛 골인이야, 여관으로 가서. 그러다보니까 혼전임신이 굉장히 많고, 고등학생들도 그렇고, 이게 교육이 안되서 그런 거지. 겉으로는 콘돔 쓰자고 하면서도 아직도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피임약을 약방에 가서 사는 분위기가 안되어 있죠. 대학에도 콘돔 판매기 같은 걸 만들어주고 그래야 되거든요.


▼ 지 - ‘만약에 잡혀갈 줄 알았으면 안썼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으신데요.

▲ 마 - 굉장히 신분상 불이익이라든가 경제적 불이익이라든가 심적인 고통 이런 게 너무 오래갔으니까 그런 얘길 한 번 해본 거죠. 설마 그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야한 책들이 없었느냐 하면 외국번역서들은 나오고 있었거든요. 희생양이고, 시범 케이스가 된 거죠.


▼ 지 - 그것도 어떻게 보면 문화적 사대주의 같은데, 외국 소설 같은 경우는 별로 문제 삼지 않잖습니까?

▲ 마 - 제가 지겹게 들은 얘기가 그거야, 서울대 교수 하나도 『즐거운 사라』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교해서 논문까지 썼더라구요. 그 소설도 야하거든요. 남주인공이 여자 200명을 편력하거든. 그런데 그것은 실존적 고뇌가 있는 섹스라 이거야, 사라는 실존적 고뇌가 없고, 오로지 쾌락을 위한 섹스기 때문에 문학이 아니라는 거예요.

  더한 건 DH 로렌스의 『차텔레부인의 사랑』, 이런 건 버젓이 번역이 되어 있고, 세계문학전집에도 끼어있는데, 그거하고 비교하는 얘기도 꽤 많이 나왔죠. 그건 명작이고, 사라는 엉터리라고 하는데, 야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웃음)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 오히려 제가 보기에는 못마땅한 작품이거든요. 남근숭배거든, 여자가 남자의 페니스 힘에 반해서 오로지 그 힘에 굴복하는 반페미니즘적 소설인데도 그걸 다 칭찬한다구요.

  굉장히 사대주의가 심하죠. ‘사라’ 사건 날 때도 「엠마뉴엘 부인」 같은 걸 수입해서 개봉하고 그랬거든요. 짤랐지만. 한마디로 두서가 없지, 외제는 굉장히 많이 봐주죠. 특히 요새 일본소설 『하나무라 망께쯔』니, 『무라까미 류』니 이런 것 다 버젓이 번역돼서 팔리거든요.


▼ 지 - 올해 특별한 계획은 없으십니까?

▲ 마 - 책 밖에 없어요. 학교에서는 학부학생들이나 잘 가르치는 재미나 볼려고 그러구요. 그래서 제가 권력을 잡는다든가 이런 건 상상할 수 없는 처지가 됐기 때문에, 문단에서도 그렇고, 더 이상 참여하고 싶지도 않고, 혼자하는 거죠. 작품을 많이 쓰고 싶어요.


▼ 지 -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마 - 그거야 맨날 얘기하는 합리적 지성의 부재 같은 것, 수구적 봉건윤리의 극복, 성알레르기의 극복, 자유주의의 인정, 개인주의의 인정 이런 것들이죠. 우리는 개인보다 전체를 중요시해요. 자유보다 질서를 중요시하고, 이런 게 아주 고질적으로 통제 위주의 교육 같은 것을 재생산하고 있는 거죠.


▼ 지 -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나와서 응원하는 걸 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마 - 일종의 민족주의죠.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한 거죠. 우리 문학도 그래요. 아직도 민족문학계열이 굉장히 힘을 쓰고 있잖아요. 단체도 있고. 그런데 저는 민족주의에 반대하거든요. ‘문화도 혼혈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글도 많이 썼고, 심지어는 ‘한국사람들이 전부 국제결혼을 해야 우리나라가 잘된다’는 글도 썼죠.(웃음)

  예컨대 염색문화 같은 것은 80년대에 제가 소설에서도 많이 쓰고, 에세이에서도 썼었는데요. 요새 그런 건 현실화되고 있거든요. 그게 혼혈문화거든요. 그게 진짜 세계화인데, 우리나라는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굉장히 봉건적 민족주의예요.


▼ 지 - 사람들이 책도 안 읽고,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요. 소설도 잘 안팔리는 것 같구요. 팔리는 책만 팔리는 것 같은데요.

▲ 마 - 『다빈치코드』, 『해리포터』만 팔리고, 한국소설은 전멸했죠.


▼ 지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은데요.

▲ 마 - 영화가 1,000만을 끈다는데 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옛날엔 밀리언셀러도 많고 그랬는데, 요새는 10만부 팔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3만부만 넘어도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그게 인터넷하고 영화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작가들이 영화적 재미를 못주니까, 계속 엄숙주의로 가니까 그런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죠. 제가 국문학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게 문단에서 통속 소설에 대한 반감이 있어요.

  50년대를 보면 그때 제일 많이 팔린 작가가 정비석입니다. 『자유부인』 같은 거, 그런데 정비석에 대한 평가가 전혀 안 이루어지고 있어요. 완전 무시야. 그리고 안팔린 작가, 김동리 이런 사람은 안팔렸거든, 쓴 것도 몇 개 없어요. 『무녀도』니 『사반의 십자가』니 이런 거 몇 개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영웅 모시듯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직도 많이 팔리는 거에 대한 경멸 같은 게 있어요. 한쪽으로는. 지는 팔고 싶으면서.


▼ 지 - 그런 분들이 문학 외의 다른 쪽으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은데요.(웃음) 글을 재밌게 써서 많이 팔고, 인정을 받으려고 해야 될텐데…….

▲ 마 - 평론가한테 인정받으려도 들죠. 요샌 뭐 학자만 살게 된 세상인 것 같아요. 학자들이 안팔리는 책 가지고, 분석해서 논문 쓰고 월급 받아먹고.


▼ 지 - 오히려 대중한테 인기를 끌면 ‘너무 쉽게 썼나봐. 대중한테 영합하는 거야’라고 비판을 하니까.

▲ 마 - 예전에 백만 권 팔린 『동의보감』 같은 거 전혀 인정 안해주잖아요.


▼ 지 - 인간시장』도 그렇잖아요.

▲ 마 - 그렇죠. 인간시장도 전혀 인정 안해주지.


▼ 지 - 그런 풍토 때문에 『해리포터』 같은 상상력을 가진 소설이 안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 마 - 그렇죠. 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이니 상받는 거 보면 하나도 안팔려요. 평론가들만 좋아하는 거지. 그런 괴리가 빨리 없어져야 해요. 제가 맨날 주장하는 게 그거죠. 문학이 가벼워져야한다, 무거운 문학도 중요하지만, 가벼운 문학도 중요하다, 사라 같은 경우는 그걸 실험한 건데, 그 가벼움을 경박하다고 보더라구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의도된 경박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걸 이해 못하더라구요.


▼ 지 - 자기들의 편견이나 엄숙주의 때문에 그런 걸텐데요.

▲ 마 - 섹스를 그리더라도 아까 말한 대로 존재론적 탐색이라든가 계급갈등적 탐색, 하인이나 주인이 한다든가 그러면 봐주고, 포장을 너무 중요시하죠. 성 자체만을 그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 지 - 그게 오히려 여성을 도구로 생각하는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일 수 있는데요. 남자는 고뇌하고, 여자는 그 도구로 보는.

▲ 마 - 우리나라 소설이 다 그런 얘기잖아요. 여자가 희생하는 얘기, 『별들의 고향』이니 『영자의 전성시대』 이런 거.


▼ 지 - 그런데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이 거부반응이 적은 것 같은데요.

▲ 마 - 전부 여자가 성에 희생당하는 얘기만 썼지, 여자의 능동성에 대해서 쓴 건 없죠.


▼ 지 - 작품 중에 제일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 마 - 판금 됐으니까 『즐거운 사라』구요. 그 다음으로는 저도 아주 열심히 썼는데, '불안'이라고 냈어요. 17,000 권 정도 밖에 안팔렸어, 그게 굉장히 애착이 가죠. 제가 맨날 얘기했던 페티시즘, 손톱이라든가 장신구, 구두, 여자 패션모델을 정밀묘사한 거죠. 그러니까 스토리가 없지, 그래서 별로 안팔렸는데, 굉장히 애착이 갑니다.

  시집은 역시 『가자 장미여관으로』, 최근에 낸 건 『사랑의 슬픔』이라는 건데, 그건 또 애착이 가는 게 시집에다 전부 칼러로 시 한편마다 그림을 집어넣었어요. 그래서 선물하기 좋죠. 그런데도 별로 안팔리더라구요. 책 내면 허무해요. 안팔려서.(웃음)


▼ 지 - 교수님 작품 때문에 한국사회에 페티시즘이라는 말이 알려진 것 같은데요.

▲ 마 - 페티시즘이라는 말도 몰랐어요. 제가 막 떠들어대니까 알았지.


▼ 지 - 그런데 그런 것을 흔히 변태라고 매도하지 않습니까?

▲ 마 - 변태지, 프로이트는 변태라고 했죠.


▼ 지 - 교수님께서 늘 주장하시는 게 ‘변태라는 말보다는 특이한 성적 취향이라고 해야 한다’는 건데요.

▲ 마 - 그렇죠. 제가 맨날 하는 얘기죠. 동성애도 그렇고.


▼ 지 -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그런 것에 대한 터부가 많지 않습니까?

▲ 마 - 굉장히 많죠. 예컨대 하일지씨 같은 경우 『경마장』 시리즈 보면 굉장히 야해요. 그런데 그게 왜 안걸렸냐 하고,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면 거기서는 삽입성교만 다루거든요. 노말한 거죠. 정상섹스지, 정상체위에다가. 그런데 저는 변태란 말이예요. 사디즘, 마조키즘, 특히 페티시즘 이런 거니까. ‘사라’ 판결문을 봐도 그렇고, 공소장을 봐도 그렇고, ‘변태라 안된다’는 거예요. 장정일도 마찬가지였죠.

  거짓말은 사디즘이었죠. 변태에 대한 생각들은 요지부동인 것 같아요. 비록 동성애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긴 하지만, 굉장히 소외되어 있죠. 트랜스젠더라든가 복장도착자,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죠. 그 사람들 만나보면 하소연이 많아요. ‘굉장히 살기가 힘들다. 직업 구하기도 힘들다’고 하죠.


▼ 지 - 검열을 옹호하는 사람 중에서는 이런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작가들이 머리를 쥐어짜다보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 마 - 말도 안되는 얘기죠. 검열 때문에 상상력이 위축이 되지, 그런 주장이 있나요? 해괴한 주장인데요. 도대체 앞뒤가 안맞는데, 어떻게 검열 때문에 상상력이 펴져요. 검열 때문에 소위 은근한 걸로 돌아가죠. 은근하게 묘사하고, 빙 둘러 묘사하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요.


▼ 지 - 그걸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웃음)

▲ 마 - 맞아요. 그런 걸 예술이라고 해요. 소위 완곡어법, 그걸 얘기하나본데, 저는 그걸 제일 싫어하죠. 문자만해도 그래요. 예를 들어 ‘핥았다’, ‘빨았다’ 이런 걸 많이 쓰는데, 그런 건 안되고, ‘흡입했다’. ‘마찰했다’ 이런 식으로 한자어로들 쓰지, 그러면 또 봐주고.


▼ 지 - 표현을 그렇게 쓴다는 걸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 마 - ‘불안’ 같은 게 그거예요. 그것도 굉장히 야한 건데, 전부 그렇게 어렵게 표현했어요. 그러니까 안걸리더라구.(웃음)


▼ 지 -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없으십니까?

▲ 마 - 한국 사람인데, 정치에 관심이 많죠. 제일 제가 분노하는 게 그거예요.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 잡은 놈들은 계속 누린다는 거예요. 청산이 안돼. 김대중 정부 들어설 때 굉장히 기대를 했거든요. 그런데도 각료를 보거나,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해먹은 사람들이 계속 해먹구요.

  학계도 마찬가지죠. 유신 지지하던 사람들이 다 총장되고, 여기서는 제가 시에서 쓴 거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변절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윤동주도 요절했기 때문이지, 나이 먹었으면 그 사람도 문단 감투 쓰려고 난리쳤을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 지 - 요절하면 험한 꼴 덜 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웃음)

▲ 마 - 나이 먹고 소위 원로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국걱정을 하는 걸 보고 아주 웃겼다구요. 전부 어용이었는데, 어용학자들, 어용문필가 이런 사람들이 얼렁뚱땅 원로 대접을 받고, 친일파가 승진한 거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청산이라는 게 없어요. 정치가들도 그런 것 같아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이니까. 


▼ 지 - 그나마 요즘 4대개혁입법이라고 해도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긴 한데요. 굉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지 않습니까?

▲ 마 - 「사립학교법」은 대표적인 악법으로 소문난 건데, 그렇게 군중집회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사립학교법」 폐지하자는 데모는 아주 소수야. 보수세력이 뭉치면 놀랍구나 하는 걸 느꼈죠.


▼ 지 - 그 사람들은 확실한 이권이 개입이 되어 있으니까요. 교수님 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갖고 있는 물적토대와 정신적 토대가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공격을 하는 거고, 그렇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타깝네’ 이정도로 나오니까.(웃음)

▲ 마 - 뭉쳐지지가 않아요. ‘교수재임용 제도’만 해도 그래요. 교수 통제할려고 유신 때 만든 건데, 박정희 망했으면 그 제도가 없어져야 할 것 아닙니까? 계속 있어서 얼마나 많이 희생이 됐습니까? 저도 희생이 될 뻔 했구요.


▼ 지 - 한번 법이 만들어지면 없애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 마 - 교수 재임용 제도 나올 때 그렇게 욕을 했거든요. 정권유지의 수단이라고. 그럼 정권 바뀌면 없어져야할 거 아냐, 그런데 안없어져요. 그래서 지금 해직교수가 엄청 많죠.


▼ 지 - 요즘 겸임교수니 객원교수니 하는 편법을 쓰는 것 같은데요.

▲ 마 - 그것도 교육부가 만들어준 거죠. 겸임교수라는 게 월급 반도 안주고. 객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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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그렇고, 특히 겸임교수제도가 악법이지, 똑같이 노동하면서 월급을 1/3 정도 주나요? 말이 겸임이지 딴 직업이 없거든요. 강사료를 방학 때도 준다, 이정도 생각하면 되요. 그런데 교수 TO에 집어넣어주니까 학교실적으로는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부 겸임교수를 쓰려고 하지.


▼ 지 - 노무현 정권이 집권하면서 표면적으로 굉장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 마 - 제가 절망하는 부분이죠. 386세대들도 권력을 잡으니까 권위주의 쪽으로 자꾸만 빠지는 듯한 인상도 들구요. 그래서 권력지상주의라고 할까, 그런 건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명분이 어떻든 간에.


▼ 지 - 작년에 문화 쪽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이순신 열풍’이었는데요.

▲ 마 - 제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철거하자고 많이 글 썼는데요. 동상도 서울대 교수가 만든 건데, 완전히 깡패처럼 만들었잖아요. 어깨 올라가고, 눈을 부릅뜨고, 이순신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런 식으로 아주 말하자면 武 숭상이지, 힘. 물론 이순신은 영웅이지만, 그런 영웅숭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

  제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천재와 영웅」이라는 글인데, ‘우리나라는 천재는 박대하고, 영웅은 숭배한다’, 영웅은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굉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권모술수도 써야하거든요. 천재들은 대개 괴팍하고 고독해요. 그런데 천재들이 언제나 시대를 이끌어가거든요. 장 쟈크 룻소 같은 사람도 당대에는 금서가 되고 잡혀가고 그랬거든요.

  『에밀』 때문에. 그런데 그게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천재를 중시하는, 괴짜를 인정하고, 개성을 인정하는 이런 풍토는 없고, 어떤 수단으로든 영웅만 되면 그 사람은 대단하다고 평가하잖아요. 박정희가 대표적인 예죠. 영웅숭배 굉장히 심합니다.


▼ 지 - 천재 같은 경우는 옆에서 볼 때 괴팍해서 불편한 부분도 있고, 영웅이라는 건 부하를 거느릴 수 있으니까.

▲ 마 - 영웅은 굉장한 처세와 권모술수라든가 부리는 기술 이런 게 필요하죠.


▼ 지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 마 - 제발 표현의 자유가 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도 좀 재평가를 받고, 『즐거운 사라』도 좀 판금이 풀리고. 봐야 뭐라고 얘기할거 아닙니까? 보지도 못하고들 그러니까 굉장히 답답해요. 학생들도 보고 싶다고 하는데, 판금된 거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심지어 제가 세권을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잡혀가니까 없애버렸더라구요. 굉장히 겁을 먹는 거지,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는 아무리 선의에 의해서 그걸 제한하더라도 안돼요.

  밀이 자유론에서 얘기한 게 그거거든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선을 위해서 권력이 행사되야 한다는 명분을 갖더라도 그건 안된다, 철저히 개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아나키즘도 그렇고, 개인주의적 풍토, 자유주의적 풍토 이런 게 봉건윤리의 극복과 더불어서 체화되는 그런 것이 우선 지식사회부터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의 출처: http://www.mediamob.co.kr/t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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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석한 학회에서 재미있는 강의를 들었다.  이름하야 "삶의 의학"..

이 개념은 여태껏 우리사회를 주름잡는 '생물의학'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요즘 말하고 있는 "웰빙"이라는 것이 바로 "삶의 의학"인 것이다.  그러나, 광고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유기농'이라던지 '요가'와 같은 것을 선전하며 건강을 빌미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의학이 아니라  현재 한국인의 건강과 노화에 대해서 아는 시간이었고, 병이 나서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기 위해서 병원에 온다는 인식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인들은 평균수명이 1960년대 남,녀 평균 53세였던 것이 2002년대에 이르러서는 남,녀 평균 77세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평균 수명은 40-50년이 또 지나게 되면 평균 100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장수'라고 하는 개념을 '조기사망 방지'라는 개념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즉, 장수가 뜻하는 것처럼 보통사람보다 오래사는 삶이 아니라 이젠 평균적으로 모두가 오래살게 되었기 대문에 다른 이들보다 먼저 죽는 것을 방지하자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인들의 건강관은 예전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건강관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식품으로 못 고칠 병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초콩, 포도요법이 건강에 좋다. 황사에는 삼겹살을 먹어주어야 한다.와 같은 민간요법 중심의 생각들)과 '카더라'라는 속성에 편승하여 야채효소, 녹즙,생식 등 '건강식품'에 의존한 건강법을 선호한다는 것, 모든 질병에 대해서는 참아내지 못하고 빨리빨리를 추구한다는 점(감기에는 주사, 소화가 안되면 바로 소화제나 변비약을 찾거나 잠을 못자면 수면제를 먹는 등의 약으로 빨리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거기다 편리함에 맞추어 모든 것을 기계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활동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내적, 외적 증상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 경,중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지혜는 사라지고 작은 상처에도 스스로의 저항력으로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으로 의료를 찾게 되는 건강염려증만 난무하게 되어 의료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여태껏 우리가 경험한 의료가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가 중심이었기 때문이고,  먹고 살기 바쁜 세상 속에서 내 몸을 혹사하더라도 계속 노력을 기울여서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 우리의 건강관 또한 우리사회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많아지는 약의 가짓수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사회의 퇴물 취급을 받거나 아니면 '조기 돌연사'라는 모습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계라도 계속적으로 혹사를 시키면 마모되듯이 그렇게 내 몸도 또한 낡아간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떠올리고 앞으로는 더욱 길어질 수명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젠 이와 같은 건강관은 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는 건강보조식품에 무려 10조원, 보약류 또한 10조원, 의약품 5조원, 주류 12조원, 음료 3조원, 화장품 6조원, 성형수술 1조원의 돈을 부담하고 있다. 젊었을 때 자신을 혹사하고 이와 같은 돈을 평생 남좋은 일에 대어주면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앞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내가 나이 들었을 때,  2-3개의 커리어를 획득하고 많은 여가시간을 이용해서 사회및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가지기를 꿈꾼다면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것인가? 자신의 20대의 건강을 기준으로 해서 그때의 몸매와 체중과 근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하루 30-60분간 매일 꾸준히 걷고, 물 많이 마시고, 많이 웃되, 떨어지는 대사량을 고려해서 식사는 보통 식사의 2/3만 먹고,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먹는 것,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놓는 것.술,담배 등 건강에 해를 끼치는 행동습관을 교정하는 것 등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고 간단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웰빙이 별건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의지로서 자신을 가꾸어가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을 성숙시켜나가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 넘의 웰빙이란 말이 요즘에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어머니 자연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있음을 의미하는 것 일 것이다. 어머니 자연과 공생하며 살던 시절의 삶의 형태를 소중히 여기고 편리함 속에 잊어버렸던 건강한 삶에 대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실천하는 것...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치료력, 삶의 의학이 아닐까?

무서운 주사와 무시무시한 기계들로 각인되는 현대의학을 우리의 건강을 보살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예전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은 이와 같은 작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비젼을 갖게 되어서 나에게 무척 좋은 시간이었기에 두서없는 글을 늦은 밤,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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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2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빙....하하 전 웃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웃으면서 님의 깊은 내면에 탄복하여 추천을 안할 수가 없군요

클레어 2005-03-2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잡소리에서 좋은 말을 얻어가신다면 그건 파란여우님의 내면이 깊은 것이겠지요. 추천 감사합니다.
 

 

The capacity to get free is nothing: the capacity to be free, that is the task. - Andre Gide

자유를 쟁취하는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존재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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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을 보고 든 생각.. 

자유..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자신의 룰로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생명을 가진 것의 본능'으로 그것에 저항하려고 한다. 이 '생명을 가진 것의 본능,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생존본능'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타파하고 자신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주변을 바꾸는 힘이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고 오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결국 이루고 만다.

그저께 신문 기사에서 '레몬 혁명'에 대한 글을 읽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총선과정에서의 선거부정에 대해 야당과 국민들이 분노하여 반정부시위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선거부정을 주도한 아카예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벌인 키르기즈 시위대는 상징적인 의미로 '노란색 깃발'을 들고 다녔는데, 결국 이 노란색 깃발은 아카예프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내고 국민들은 환호속에서 이 '노란색 깃발'을 흔들 수 있었다.그러나, 그 혁명이후의 혼란과 방화, 약탈은 사회 전체를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이렇듯 실체가 보이는 억압에 대한 저항은 같은 열망을 지닌 이들이 힘을 합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그들의 억압을 부수어낸다. 그러나, 자유가 성취 되고난 후 시위장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생활 속에서 그들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자유롭게 존재하는 능력'.....'보이지 않는 억압을 느낄 수 있게 자신을 항상 깨어있게 만들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능력이며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그 모든 행동이 도(道)와 통한다.'란 의미로 받아들였을 때, 불교나 유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니르바나'나 '군자'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자유와 자유롭게 존재하는 능력의 차이를 찾아냈으면 그런 능력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지..' 라는 게으른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해답없는 길에 뛰어들어 살아내면서 그 방법을 조금씩 알아내는 것이 특별한 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이며 '자유'라는 씨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뿌려준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으로 대답하는 길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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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2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
뜨거운 말입니다........

클레어 2005-03-26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합니다. 마치 불과 같은 자유...모두가 열망하지만 낼름 주어진다고 해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이 또한 know how가 필요한 거구나..란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어떤 4월                                                     (작년 4월에 습작)

 

어스름 붉은 달이

부라린 눈알마냥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컹컹컹

개 한마리 울부짖고 있었다.

 

목 꺽인 자목련 꽃잎들,

가지 끝에서 이 메마른 지구를 향해

낙하 또 낙하.

 

사람들은 텔레비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거기엔 이국의 소녀가

떨어져 나간 다리를 보며 악을 쓰고 있었고,

아버지는, 흰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아버지는

가슴에 붉은 꽃,

낭자한 선혈을 뒤집어 쓴 채

건조한 사막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라만다에게 넋을 빼앗긴 광인들의 불의 빗줄기.

침묵하는 알라,,,오, 알라여

죽은 어미의 젖을 빨던 아이들은

군화발 소리,총소리에 귀가 멀고

아라비아의 천일간의 이야기,

사막의 노래는 더이상 들을 수 없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4월의 봄 밤은 깊어가는데

이젠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자리에

목련은 또다시 떨어지고,

저 멀리 상여소리에 맞춰

개는 컹컹컹

또 짖어대고.

 

#살라만다: 불의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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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2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이셨군요.....^^
오, 알라여~~^^
저에게 강림해 주시길....^^*

클레어 2005-03-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아닙니다. 그냥 끄적거리는 정도죠..흐흐~ 여기와서도 알라를 부르시다니..교주님의 기도소리가 전 알라딘에서 울려퍼지는군요... 하하~
 

 

단면만 비춘 '학교폭력', 또 다른 진실은?
[배경내의 인권이야기] 은폐되고 가려진 '학교폭력' 대책의 위선과 폭력
by 대자보 [ 2005-3-23 ]
지난주 청소년들 20여명이 모여있는 곳으로 인권교육을 하러 갔다. 지금이 2050년이라고 가정하고 올해 문을 여는 '청소년 인권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면 하는 모형을 몸짓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2050년쯤에는 우리 사회에서 꼭 사라졌으면 하는 청소년 인권문제를 꼽아보라는 주문이었다. 서너 명씩 모둠을 이룬 청소년들은 체벌이나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교문지도의 풍경, 교사의 언어폭력 등의 인권침해 장면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러던 중 한 모둠의 발표 차례가 되었다. 한 청소년이 한 손으로 상대방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때리려고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주위에 선 두 청소년은 그 장면을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지켜보던 아이들이 외친다. "학교폭력이다", "일진회다". 그런데 실제 그 모둠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교사에 의한 두발 단속이었다. 왜 지켜보던 우리가 그런 착각을 하게 되었을까 되물어 보았더니, 청소년들의 답이 명쾌하다. "학교폭력이나 선생님들이 하는 두발단속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 다시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 문제만 '학교폭력'이라고 부를까요?"

단면만 비춘 '학교폭력', 또 다른 진실은?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단연 '학교폭력'이다. 일진회가 조폭 뺨친다, 학교폭력 갈 데까지 갔다, 일진회는 폭력을 놀이로 여긴다 등 선정적인 보도가 연일 꼬리를 물고 있다. 그야말로 학교는 갈 곳이 못되는 흉폭한 공간이, '요즘 아이들'은 도매급으로 몹쓸 인간이 되어버렸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떠들썩한 진단과 과잉 대책들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어느새 흙빛이 된다. 정작 '학교폭력'의 본질과 원인을 들여다보려는 진중한 노력은 어디 있나.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안들을 내놓는 저 폭력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학교폭력'이라는 개념부터 재정의되지 않는다면 폭력을 근절하기는커녕, 청소년들로부터 사회의 '위선'에 대한 조롱을 피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지금 온 사회를 용광로처럼 들끓게 하는 '학교폭력'은 다만 학생들 사이의 폭력을 가리킬 뿐이다. 반면 학교당국과 그 대리 집행자인 교사에 의해 매일같이 행사되는 이 보편적 폭력은 한번도 전사회적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두발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리고, 학교를 바꿔보려 발버둥치던 학생들이 학생부실로 끌려가 자퇴 아니면 반성문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은 생활지도와 교육이라는 외피를 쓰고 오랫동안 용인되어 왔던 것이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과 함께 학교에 의한 폭력을 생생하게 보여줬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이 영화가 보여준 학교의 현실은 유신 말기에만 국한된 것일까. [출처] www.nkino.com

게다가 연일 요란법석 쏟아져나오는 강경대책들의 밑바탕에는 청소년들의 삶과 미래에 대한 진정한 연민이 아니라 실추된 통제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벌겋게 달아오른 양미간을 실룩거리는 교육당국과 치안당국의 얄팍한 자존심만 들어차 있다. 앞다투어 선정적인 기사를 써대는 언론은 타락의 온상으로 떠오른 일일 락카페에 모인 청소년들의 얼굴을 여과없이 게재하는가 하면,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버젓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책들을 주문한다. 청소년들이 이러한 위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현상에서 현상으로

이런 상황에서 정작 잊혀지고 있는 것은 학교폭력의 진정한 원인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당국과 언론이 꼽는 것은 물질만능주의, 향락주의, 유해문화, 가해자의 가정환경, 가해자의 정서 장애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현상들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은 아니다. 폭력 가담 청소년 개인의 잘못은 추궁해도 무엇이, 어떤 사회구조가 그/녀를 그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외면한다.

학생들 사이에 늘어나는 폭력은 정확하게 우리 사회와 학교의 정당성이 위기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폭력은 안된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와 학교의 위선에 대한 조롱이자 배운 대로 실천하는 '모범적' 태도이기도 하다. '힘센 놈에게 당했으면 부질없이 대항하려 하지 말고 나보다 더 약한 놈에게 풀어라!'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정당성의 위기를 불러왔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관계 질서를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학교폭력' 대책의 폭력성

더욱이 학교경찰제도나 교내 폐쇄회로 카메라 설치, 영상물 심의 강화 등 '학교폭력' 대책이라고 거론되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안들이야말로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는 학생들을 모두 예비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학내 권위주의적 군사문화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감시와 검열은 통제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음지로 폭력을 '이동'시킬 뿐, 외부의 권력자에 의존하여 얻은 '일시적 평화'는 살얼음판처럼 언제 깨어질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들 방안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더 위험한 이유는 청소년들 자신의 권한을 약화시킴으로써 폭력에 더욱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다.

'불면 봐주겠다'는 식의 엄포, '노는 아이들 그룹=일진회=조폭'이라는 등식, 교사의 학생 고발 유도, 가해자 색출·구속·처벌 강화 등의 대책 역시 또 다른 인권침해를 낳게 될 것이다. 유엔어린이·청소년권리조약(아동권리협약)은 비행과 범죄의 엄격한 구분을 요구하고 있으며, 청소년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는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할 것과 비사법적인 절차로 범죄(혐의)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이 청소년 사법에서 '비범죄화'를 주요 원칙으로 제시한 까닭은 무엇일가. 청소년에게 '구금'은 자유와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빼앗을 뿐 아니라, 미래의 희망까지 꺾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사로부터 고발당하고 학교로부터 추방당한 청소년, 범죄자라는 '초기 낙인'을 부여받은 청소년을 더 깊은 절망과 증오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뿐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소년범 수용소를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 <십자가를 진 아이들>의 한 장면. 영화는 사회 붕괴의 최대 희생자들인 어린 '범죄자'들의 슬픔과 분노를 다룬다. [출처] http://www.oneworld.cz/oneworld/2000

가해자를 찾아내는 학내 조사과정이나 사법절차에서도 또 하나의 불평등이 잉태된다. 가난과 학대, 무관심과 절망으로부터 주변부적 삶을 강제당하는 청소년은 그만큼 폭력과 범죄의 유혹에 취약하다. 문제가 드러났을 경우에도 부잣집 아이들이 재력이나 잘난 변호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동안, 가난하고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피해자의 부모를 설득할 재력도 공정한 수사나 재판을 가능케 하는 변호인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법이다. 그런데도 '처벌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폭력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청소년의 권한 강화가 해결의 열쇠

물론 학생 폭력 문제는 있다. 그리고 심각하다. 단 한 명의 청소년에 의해 단 한 번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는 진지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또 청소년이라고 해서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타자화하고 무력화시키는 방안으로는, 감시와 처벌에 기댄 방식으로는 피해의 예방도 가해자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왜 청소년들 사이에 위계문화가 싹트고 폭력 이외의 문제해결 방식을 알지 못하는지, 여럿이 힘을 합하면 폭력을 막고 중지시킬 수 있는데도 왜 개별화된 방관자로서 남아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을 외면하고서는 부질없는 헛발질만 반복될 뿐이다.

대책은 청소년의 권한을 강화하고 인권문화를 꽃피우는 데서 찾아야 한다. 학교에 CCTV를 설치하는 그 예산으로 청소년의 자치활동과 또래중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경찰을 교육시키고 학교에 상주시키는 그 에너지를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에 쏟아야 한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치유와 교육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배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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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5-03-2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찾던 주제인데, 감사히 퍼갑니다..

클레어 2005-03-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자료로 쓰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저도 퍼온 보람이란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