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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리뷰를 쓰다보면 가끔 작가의 거리와 내 자신의 거리를 놓치고 헤맬 때가 있다.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책들도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방법론을 제시받거나 제시하면 그 뿐인 책들은 별로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 좋고 바라보기는 좋으나 항상 같이 지내기는 뭔가 어색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라는 책을 며칠 전에 구입하고 통독을 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재미있겠군..' 하고 나름 생각은 했었다. 소개팅 나가기 전에 '재미있는 녀석이래...'라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은 얼마나 편안함을 주는가? 어색한 만남의 시간을 즐겁게 때울 수도 있고 잘만 하면 괜찮은 녀석 하나 건져서 시베리아 벌판과도 같이 시려운 옆구리에 녀석을 장착하여 앞으로 다가올 빙하기 이전이지만 항상 혹독하게 느껴지는 추위도 막을 수도 있고....라는 막연한 상상또한 그 만남 이전의 시간마져도 감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10편의 단편소설의 묶음...을 하나하나 읽으며 그의 의도대로 그의 말장난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가 부비트랩처럼 심어놓은 웃음거리에 알면서도 홀랑 빠져서 낄낄거리기도 했다. ' 녀석..오..괜찮은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개팅으로 치자면 '우유'가 아니라 '쥬스'를 시켜야 할 타임! 호감을 느낀만큼 녀석의 속내를 훑는 더듬이는 더욱 뻗어나와 책 속 여기저기를 헤맨다.
'넌 어떤 녀석이냐?'
박민규는 말한다.
난 냉장고와 대화하는 사람. 냉장고 속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선별하여 집어넣는 사람. 나는 자신의 즐거움을 아는 너구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나는 내 삶의 산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지구를 떠나 지구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 나는 세상의 삼류들이 꿈을 향해 망명하는 도중에 잠시 머무는, 오리배의 중간 기착지인 유원지를 관리하는 사람, 나는 변비와 사투를 하면서 아무도 신경 써 주지는 않지만, 그 변비가 후기 산업사회로 가면서 만들어진 병임을 분석하는 사람, 어린 시절엔 과학잡지에서 봤던 15m 대왕오징어를 알기 위해 선생님께 물어볼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아이였고, 끈임없이 원폭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대왕오징어와 같은 재앙이 언제든 일어날 거라 믿는 사람, 어느날 불시에 당한 헤드락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다른 이에게 내 힘을 시험해 보며(좀 비열하지? 그래도 돈으로 그들에게 보상을 했다구..) 끝내 맞장을 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헤드락을 걸어보는 사람, 관짝만한 고시원에 옹송거리며 누워 그곳을 벗어날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던 사람...
작가의 수다에 빠져들면 들수록 그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편 한편이 그의 지인에게 선물로 주는 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수다에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웃음으로, 얼렁뚱땅 이야기 하기로 자신의 삶을 포장하고 있으나 그의 웃음 너머에선 '날 좀 봐주겠니?' 를 서툴게 표현하고 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예전 유재하의 음악(오늘밤이었던가?? )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이 다시 샘솟았다. '왜 유재하는 그렇게나 쓸쓸하고 슬픈 가사에다 경쾌한 곡을 붙여 노래 불렀던가?' 라는. 감정의 균형. 나는 그것을 감정의 균형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이 말은 '울면 지는거다.' 라는 말 때문에 우리들의 내부에 언제부터인지 자리잡게 된 기능이 아닌가 한다. 신세한탄을 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안간힘. 그리고, 이렇게 과장된 웃음으로 '난 괜찮아.'를 말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눈물'을 본 것은 나의 착각일까?
다시금 하나하나 차분히 읽어가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난 이미 그에게 빠져든 것이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시 차분한 그의 말을 찾을 수 있었다.
잠시 인용하자면,
그것이 카스테라였다. 얘기를 전하자면, 가가린은 카스테라를 타고 비로소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며, 지미 핸드릭스는 카스테라에 불을 붙여 그 소리로 한 장의 앨범을 만들었고, 이백(李白)은 물에 떠 있는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주우려다 삶을 마감했고, 제인 구달은 침팬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카스테라 카누를 만들었으며, 마더 테레사는 스스로 거대한 카스테라의 산(山)이 되었다 하며, 이를테면 체 게바라는 누구보다도 카스테라의 등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
나는 결국, 모두의 도움으로 살아온 인간이다. 그 모두에게, 감사한다.
카스테라.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어하던 것을 드디어 찾아냈다. 그리고, 그가 '눈물'을 뒤로 감춘채 웃음으로 이야기 하는 진짜 이유도 찾아냈다.
현재의 삶 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물질, 물질, 물질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느끼게 되는 헛헛함..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카스테라빵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많은 위인들은 다른 이들이 이루어 놓은 많은 노력과 눈물이 결실이 된 것들을 흡수하고 마치 예수처럼 스스로 많은 이들의 양식이 되어 살아갈 희망을 주었던 이들이다. 그는 그 또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준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통해(그의 식처럼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그에게 식을까봐 꽁꽁 싸서 넘겨준 카스테라를 먹으며)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카스테라'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준 것이다.
울면서 음식을 먹으면 목이 메인다지?
그는 자신이 만든 따뜻한 '카스테라'를 함께 나누고 싶어했고, 그가 넘겨주는 '카스테라'를 먹으며 다른 이들이 목 메이지 않도록, 함께 웃으며 먹을 수 있도록 너스레를 떨어대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가 더욱 좋아졌다.
'카스테라'를 덮으며 나도 그에게 인사를 했다.
"당신의 따스한 '카스테라'... 잘 먹었어요. 난 당신에게 무엇으로 돌려주어야 할까요?"
흐~ 이만하면 작가와 독자의 사이가 제대로 무너진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