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20세기 - 학고재신서 19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선생님께 이 책을 선물받고 무려 4일에 걸쳐서 읽었다. 역사..역사...역사!!! (으아악!!!) 이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서를 읽었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열린우리당에서 왕따당하고 있는 유시민씨가 예전에 썼던 "꺼꾸로 읽는 세계사"(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유시민씨를 거의 하늘처럼 존경했었는데, 작년부터 영...아니올씨다.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에 대한 지지도는 이렇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잘 좀 해라!! 잘 좀 해!!)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책들 몇 권, 근현대사에 대해서 약간 찝쩍거린 것 말고는 맘 잡고 정리하면서 읽었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쉽게 풀자면 인간들이 살아온 이야기이다. '인간의 삶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와같은 역사에 대한 풀이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나, 역사서만 보면 숨이 턱하니 막힌다. 왜냐구?  첫째. 사관(史觀)이란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 국정교과서를 보면 모두다 일률적이라 대충 참고서에서 중요하다고 찝어놓은 부분만 요약해서 집중 공부하고 연대만 달달 외우면 좋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으로 공부를 해왔다. 그런데, 이런 식의 공부라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삶을 크고 넓게 바라보며 인간의 질곡과 비약발전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는 근원적인 힘을 찾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도록 하는 역사공부의 원래 목적과는 영 상관이 없는 행위라 혜안이고 나발이고 가지기도 전에 역사는 참고서 가지고 암기하는 것이상 깊이있게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책들을 살펴보면 너무 두껍고 재미없게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쪽으로 책읽기가 단련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전공이 완전 반대이다 보니 두껍고 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하품하기 일쑤인데다 용어조차 잘 모르는 것들이 나오면 참고 보기 보다는 던져버리는 쪽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쪽과는 거의 빠이빠이~ 수준인 천착한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게 되어 버렸다.   덕분에 이책을 보면서도 '또다시 나에게 역사에 대한 컴플렉스를 심어주고 벽장에 처박히는 책이 될 것인가?'란 생각을 잠시하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걱정은 부질없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20세기라고 하면 인류역사상 가장 격변기를 자처하는 시대. 그 시대의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은 어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 복잡한 20세기 사건들과 사상들, 그리고 변화를 이주헌 선생은 ' 미술'이라는 장르를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로 내세워서 어렵고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역사를 시각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저 머리 속에 주입시키는 역사가 아니라 20세기라는 거대한 인간의 역사의 물결 속에서 생산된 여러가지 상황과 문화등을 미술을 통해 보여주면서 직접 그 시대에 살았던 작가들의 작품과 작품 속에 들어있는 시대정신과 독자를 만나도록 주선해 준 것이다. 즉, 근대와 현대를 잇는 20세기의 산물들을 도시, 성상품화, 혁명, 팝 문화, 매스 미디어, 전쟁, 여러가지 갈등(대공황등의 경제적 갈등, 인권에 대한 정치적 갈등, 인종 갈등, 제 3세계의 갈등), 사상, 여성운동, 일상의 모습의 변화, 영화, 테크노피아, 환경문제,총 12가지 장르로 구분해 보여주면서도 각 주제에 대해 단순히 20세기의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주제에 대해 고대, 중세의 역사들도 예로 들어 보여줌으로써 좀더 그문제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꼼꼼함까지 보여주어 책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주헌 선생도 미술을 통한 접근법을 구사하게 된 배경을 책 머리에다 이렇게 적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 조명이 기왕의 접근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시대의 정서적 흐름을 좇는 데 무척 유리하다는 사실을 우선 꼽을 수 잇겠다. 그러니까 활자 기록에 의존하는 방식 일반이 그렇듯 사실을 나열하고 그것이 끼친 영향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만을 보여주는것과 달리, 미술작품을 통한 접근은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당대인들의 보편적인 느낌과 정서, 그리고 그 반응을 생생히 드러낸다. 그만큼 뜨거운 현실 인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의 전개 과정은 다른 감정의 궤적과 만나면서 복합적인 맥락을 형성하게 되는데, 활자를 통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부분이 미술작품들 사이에서는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략)

한편 미술을 그 전체적인 소재로 한 만큼 이 책은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책으로서의 기능도 갖는다. 비록 전통적인 양식사의 관례를 따르지 않았지만, 20세기 미술의 주요한 관심이 책갈피 이곳저곳 묻어 있다. 특히 사람살이의 관심과 끈끈히 이어져 있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조명됐기 때문에 쉽게 편하게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접근해 드러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마리 토끼(역사와 미술)을 한꺼번에 일반인들이 잡는 것이 가능하겠냐마는 그의 노력 덕분에 재미있게 20세기 근현대사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현대미술의 제작배경과 그 철학을 알게 되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역사와 미술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도록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책으로 아주 마음에 든다.

공부라는 것은 성취동기가 있을 때 잘된다고 한다. 성취동기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자기의 능력을 한번 빛내 보겠다 .' 뭐 이런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공부하니깐 너무 재미있어요.'라는 자발적인 즐거움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다. 독학자가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공부라는 것이 항상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때에는 여태껏 공부하던 자신의 패턴을 버리기가 무척 힘들어서 지겨워도 꾸역꾸역 해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 공부하는 다른 방법을 알게 되면 그 때부터 다시 공부는 재미있어진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고. 이 말을 한 사람도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했던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도 잘 되지 않는 공부의 벽에 부딪혔을 때 슬기롭게 그 벽을 넘어갈 수 있는 스승을 바라며 꾸준히 꾸역꾸역 공부한 후 터득한 말일 터라 쉽게 따라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책,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와 같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쨋든 이 책덕분에 근현대사에 대해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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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1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레어 2005-04-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언제든 환영입니다. :)

2005-04-02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