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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 이 사람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에 읽은 '사색기행'과 '우주로부터의 귀환' 두 권 뿐이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두권의 책('사색기행'의 경우는 대부분 예전 자신이 잡지에 실었던 글 중 여행관련글을 모은 것이었고 '우주로부터의 귀환'의 경우에는 지구를 떠나봤던 우주비행사들의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를 모은 글인데 전자의 경우에는 다카시의 사회, 문화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 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었고, 후자의 경우에서는 우주비행과 관련된 과학적인 지식과 우주여행 전, 후 인간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빛내는 타카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을 한 사람이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 인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적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인간이면서도 그 지식이 꼭 필요한 현장감을 중시하는... '그래, 그는 기자였어.'라는 한가지 깨달음이 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색기행'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행(4장에 나오는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는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핵군축 회의' 초대장을 받아 '반전영화'상영을 목표로 떠난 여행이었으므로)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재여행이었고 취재여행의 성과물로 나온 각각의 글들은 잡지의 칼럼에 연재되었던 것인만큼 내용들은 다양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할만한 것이었다.
잠시 살펴보자면, 무인도에서 문명의 혜택없이 6일을 보낸 경험이라던지 몽골로 '개기 일식'체험을 떠난 것이라던지 하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인 만큼 그의 경험은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는 면이 있다. '만약 내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이라는 가설에 대해 직접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고 자신을 실험하기 위해 무인도로 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어리버리한 체험기마져도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개기일식'도 그렇다. 책 속에서는 '태양이 사라진다면 태양에게서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극단적인 상상력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개기일식'을 쫓아다니는 개기일식 마니아들을 인터뷰하고 자신도 흐린 날 몽골에서 일어났던 '개기일식'의 짧은 순간의 느낌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개기일식이 그런 의미였어?'라는 생각만으로도 태양계 속의 3번째 행성에 불과한 지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두 체험은 그의 지식이나 글솜씨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소재가 좋아서 독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가르강튀아풍'의 폭음폭식 여행과 기독교 예술 여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 즉 먹고 마시고, 좋은 거 구경하는 여행의 모습을 갖추고 있기에 다가가기가 더욱 쉽다. 요즘 웰빙 붐을 타고 점차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좋은 와인이 어떤 것이며 와인의 종류를 결정하는 땅에 대한 이야기, 와인의 라벨을 보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여행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보와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치즈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그 제작공정, 맛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두었을 때 나쁘지 않은 상식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기독교 음악과 '미션'이라는 영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기독교 예술 여행이라는 컨셉도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들으니 더 좋더라. 왜 그런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지 가서 직접 그들의 삶을 살펴보니 이해가 되더라.'라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이야기를 해주어서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의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나마 나에게 '진짜 여행기 같다'라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4장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라는 부분이었다. 다른 장들과는 달리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다 젊은 시절 다카시의 여행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여행전 어떤 식으로 준비를 했고, 핵군축 회의에 초청되는 기회를 잡고 반핵영화를 유럽에다 틀면서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젊은 다카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서문에서 이야기 했던 '육체를 이동시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라는 말이 4장에 이르러서야 나에게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5장, 6장의 팔레스타인 보고와 뉴욕 연구는 팔레스타인과 뉴욕을 각각 여행을 하며 쓴 글로 단순 여행기가 아니다. 각각 팔레스타인과 뉴욕이라는 객관적 장소에 대해 일반인의 시각과는 차별화된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움이 보이는 글로써 각각의 공간이 현 시대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분석해 내고 있다. 다카시 정도라면 이정도 수위의 글은 써줘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이제야 그의 글을 읽는 맛이 났다. 중동에 대해 이스라엘을 통해 듣는 것 이외에는 일본인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그는 현지에 가서야 자각을 하게 되고 이스라엘인과 아랍인들을 직접 만나며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재구성한다. 뉴욕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심장,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을 여행하며 그가 살펴본 것은 마몬(부와 황금의 신)의 신전인 뉴욕의 빛과 그림자였다. 비즈니스, 돈의 중심지이면서도 심한 빈부의 격차로 인한 슬럼, 마약과 폭력, 범행, 그리고 에이즈환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의 치부를 유감없이 내보이고 있는 도시로 다카시는 뉴욕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집어내려면 집어낼 수 있는 수준의 글들이다. 좀 오래된 글들은 친절하게도 각주에다가 변화된 양상까지 기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명성만 믿고 책을 기획해서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기를 읽는 목적이야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이처럼 여행의 목적이 중구난방식으로 된 책은 처음보는 것 같다. 여행의 길라잡이도 아니고, 여행을 통한 깊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여행지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이렇게 달라서야 혼란스럽지 아니한가 말이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거고 다치바나 다카시란 흥미로운 인간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런 여행기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환경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인간 다치바나 다카시의 모습을 보기를 바랬고, 나또한 그의 여행경로를 좇았을 때 그와 같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란 대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와 함께한 사색기행은 영 어중간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냥 배낭 훌쩍 둘러매고 떠나보는 편이 그의 말대로 제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