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일본을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한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의 올해 개봉이 취소됐다.

이 영화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는 11일 올해 예정이었던 이 영화의 개봉 시기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세번째 작품인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는 2차대전 막바지 14세 소년 세이타와 4살 여동생 세츠코가 부모를 잃고 결국 숨져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의 개봉 취소는 최근 독도문제와 관련된 국민들의 반일 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들은 비교적 양국 관계와 무관하게 순항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개봉 자체가 기한 없이 연기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지난 28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으며 올해 안 개봉을 준비했지만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본인을 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일부 네티즌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의 임정옥 과장은 "올해 안 개봉을 추진했지만 최근 국민정서에 이 영화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일단 개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bkkim@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

뉴스 검색을 하다가 가장 짜증스러운 뉴스는 일본이 돈으로 UN안보리 이사국에 들어가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바로 이 기사였습니다.

저주스러운 군국주의의 과거를 아직도 끌어안고서 독도에 대해 망발을 일삼는 일본인들은 저주스럽고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전쟁이라는 광기의 역사 속에서 비참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 '반딧불의 묘'를  전쟁의 피해자로서 일본을 인식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거부한다는 것은 솔직히 좀 오버가 아닐까요? 원폭이 떨어졌던 히로시마는 단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서 일본의 패배를 얻어냈던 결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삶을 꾸리며 살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전쟁 중 그들의 고통을 작품으로 만든 것이 '우리도 피해자들이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요? 그정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조악한 의식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일본과 한국.  서로의 잘못된 과거사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관계이며 앞으로 후세들에게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만 이와 같은 대응은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눈, 작품 속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눈도 스스로 치워버리는 처사란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 2005-04-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근데 솔직히 난 이거 싫었는데.
바로 저런 이유 때문에... 일본 피해자론, 그게 너무 심해서. ^^;;

클레어 2005-04-1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언니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아마 무기한 개봉취소가 되었겠지요. 근데, 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반딧불의 묘에 나오는 오누이의 죄는 일본에 태어난 것밖에 없는 거 같은데요. 우리나라의 꼴통우익들의 작태처럼 일본의 군국주의 우익들도 전쟁에 반대하는 좌익들을 숙청하고 반대의견은 전무한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그 시대를 살았던 일본인 모두를 죄인이라고 한다면 일본과 한국의 뿌리깊은 원한은 언제 청산되는 것입니까?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 나지 않도록 일본의 젊은이들도 한국의 젊은이들도 전쟁의 심각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잘 알고 함께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우익꼴통들이 그와 같은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일본의 건전한 비판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보구요, 그런 것은 '우리는 피해국이니까 너희들은 무조건 잘못한 거야.'라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는 절대 함께 연대를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 못할 거란 것입니다.

딸기 2005-04-1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그래, 니 말이 맞어 ^^

바람구두 2005-04-1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지안님께 박수를....

딸기 2005-04-1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구두님...
 

딴 짓을 좀 하다가 심심하길래 알라딘 도서 제목을 검색해 봤다.

(쓸때없는 짓이지만 검색 놀이 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ㅋㅋ)

먼저, '희망'이란 단어를 검색하고, '절망'이란 단어를 다음에 검색해봤다.

키워드 : "희망"(으)로 검색한 결과 총 548 건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

키워드 : "절망"(으)로 검색한 결과 총 115 건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이 페이퍼들도 '희망'이란 단어와 '절망'이란 단어로 검색해봤다.

키워드 : "희망"(으)로 검색한 결과 총 4485 건의 마이페이퍼가 검색되었습니다.

키워드 : "절망"(으)로 검색한 결과 총 1928 건의 마이페이퍼가 검색되었습니다.

 

절망보다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결론이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모두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세상은 '희망'을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거 같다.  아마도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책을 내고, 페이퍼를 더 많이 쓰는 모양이다.

흐~ 난 세상이라는 검색창에다 '희망'을 더 많이 올려놓는 사람인가? '절망'을 더 많이 올려놓는 사람인가? 갑자기 궁금해지네..

(이것이 나에 대한 세상의 평가이겠지. 내가 보여주는 만큼 밖에는 다른 어떤 이도 날 알 수 없으므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 2005-04-1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우리 오래전에 나비 이야기(변신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 한 적 있었는데. :)

클레어 2005-04-1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이야기보다 변신 이야기가 더 많은 듯..애궁~ 부끄러붜랑..흐흐
 
 전출처 : 하루살이 >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쿠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3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 들녘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는 <굶주리는 세계>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북한은 지금도 기아에 허덕이고,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경제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쿠바는 비슷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부의 집중화로 풀이한 이 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다른 해답을 찾고자 하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먼저 쿠바라고 하면 우린(우리인지 나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정보도 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꺼라고 생각된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체제가 다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국가라는 점,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장기독재 상황(카스트로 집권은 40년을 넘기고 있다)이라는 것, 그리고 영화나 그 밖의 모습을 통해서 바라본 아바나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난민들 등등. (최근엔 체 게바라와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영향으로 긍정적 이미지도 많이 갖을 수 있게되기도 했지만...)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대부분 미국을 통해서였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다시 쿠바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는 거의 모든 경제 복지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보아온 난민이라는 현상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권의 지원이 줄어들고(줄어들었다기 보다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말미암아 급격한 경제적 혼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상황에서도 의료부문과 교육부문에 대한 복지정책엔 큰 변함이 없을 정도로 사회주의적 평등이념은 굳건했다. 현재 미국의 국민총생산량의 14분의 1임에도 불구하고 평균나이나 유아사망률, 대학의 수나 교수비율, 박사의 수 등 에선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형편이라는 사실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다. 쿠바라는 나라가 북한과는 달리 이렇게 굳건히 어려움을 견뎌내고 점차 진정한 복지국가의 틀을 갖추어 나가게 된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도시생태농업을 들고 있다. 비료지원도 끊기고, 석유와 같은 에너지의 수입도 힘들고, 심지어 지금의 북한보다 더욱 가혹하게도 약품과 같은 의료지원도 이뤄지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그들은 배고픔을 탈출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빈터에 무조건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비료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유기농이라는 방법으로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국가도 도시농업에 대한 플랜을 세워서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다. 도시농업은 시민의 자발적 농민단체와 정부의 지원, 대학의 연구단체가 하나가 되어 점차 그 생산력을 높여가고, 그것은 석유의 부족으로 인한 유통이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그 지역에서 난 생산품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생태적 건강성을 갖게되는 이유가 된다. 또 석유부족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교통수단이 바뀌게 되고, 에너지 또한 태양열과 같은 지속가능한 수단으로 모습을 바꾼다. 의료정책 또한 허브와 같은 자연의학과 침 뜸과 같은 전통의학 동양의학 등을 접목해서 건강을 회복한다. 또한 유기농 야채 중심의 식단으로의 변경은 자연스레 현대병이라 일컫는 비만과 당뇨, 암의 발생률을 떨어뜨려 의료비가 30~40% 줄어드는 부가적인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즉 도시의 빈터에 과실수와 채소를 심는다는 행위 하나가 국가 전체의 모습을 건강하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정부의 헌신과 시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지만 가능하다. 아바나 시민이 모두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 변화에 모두 수긍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 사회주의의 실패요인중 하나인 노력과 결실의 불평등함이 가져다주는 나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임승차에 대한 문제점이 사회제반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야채나 과실을 훔치거나, 일하지 않으면서도 복지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등) 하지만 이들은 풍부한 사회자본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해나간다. 또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보장하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도 부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고취시키기도 했다. (이기주의에 기초한 시장과 권위주의에 기초한 하향식 관료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제 3의 대안으로 서구학자들이 제안한 사회학적 개념이 사회자본이다. 제임스 콜먼이 제창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의 유형을 말한다) 시민사이의 네트워크가 충실해서 시민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무임승차자가 되게끔하는 동기가 희박해져 사람들의 태도도 협력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신뢰는 개인적 도덕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시스템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도 경제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쿠바를 바라볼때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진정 유토피아라는 것이 물질적 소유의 확대인지 행복의 확장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한다고 본다.

쿠바의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보여지는 것은 교육과 의료의 완전무료와 그것을 바탕으로한 자발적 시민단체에의 참여,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분권적 자율적 지방정부, 그리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이 아직 물질적 풍요를 우리만큼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직 배고픔으로 죽거나 범죄를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병 하나 걸렸다고 집안이 망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장애인 가족을 두었다고 소외되거나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자살이나 살인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이 못사는 나라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분명 쿠바가 유토피아는 아닐지 몰라도 그들이 향해가고 있는 지점은 유토피아임을 이책은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망의 노래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 상태의 시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영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꺽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

네루다를 사랑한다.  그의 시를 보고 있으면 머리로 생각해야하는 이성적인 시가 아니란 생각을  항상 하게된다. 내 자신이 세상을 느끼듯, 오감을 통해 느끼게 되는 묘한 감정의 움직임. 이는 오히려 생각의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본능의 움직임과 같다. 위험한 것을 보거나 끌리는 것을 보게 되면 가슴이 먼저 두근거려 그 실체를 알려주는 것처럼.  그의 시에는 그런 것이 있다.  감정의 움직임이야말로 영혼의 움직임이라고 했던가? 그의 시를 보면 나의 감정은 한없이 움직인다.


품에 안았던 여인과의 이별, 가질수록 더욱 아가리를 벌리는 끝없는 욕망..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그여인을 향한 마음은 오히려 본능과도 같고, 떨어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떼어낸 듯, 그녀와의 이별은 화인(火印)처럼 화끈거린다. 스스로 선택한 이별의 운명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너스레를 떨어대는 그의 모습에서 잡아주기를 바란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떠도는 영혼은 또다른 피안의 장소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기에 절망의 노래의 끝자락에는 또다른 시작의 반짝거림이 있다. 절망의 첨예한 끝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또다른 희망의 노래를 위한 전주곡. 그 전주곡이 크게 출렁거리며 쾌락과 통한으로 범벅되어 크게 소리를 질러 바닥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쓰기만 하면 뱉어낼텐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 나또한 함께 바닥을 헤집게 만드는, 그래서 같이 그 반짝이는 단편-누군가는 그것을 진리라고, 또는 예술혼이라고 했다지?-을 찾게 만드는, 지루하지만 참고 들을 가치가 있는 전주곡이다.

 

늦은 밤 잠은 안자고 네루다를 괴롭히며 묘한 희열을 느끼다.  난 역시 네루다를 사랑하는 거 맞다. 흐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에너지가 무척이나 부족한 터라...(음..피가 모잘란가?? -_-a) 휴일인데도 방바닥에 붙어서 이리저리 뒤집기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갑자기 슬램덩크를 보고 싶더라구요. 애 들어서면 뭔가가 땡긴다고 하는데, 외계인이 애를 가질 가능성은 전무하고 슬램덩크가 갑자기 땡긴 이유가 뭘까요? -_- 

 

어쨋든, 슬램덩크를 만화방에서 24권 완전판을 턱 하니 빌려놓고 읽고 있는 중입니다. 아아~ 역시 강백호! 슬램덩크에 나오는 주인공 중에서 안 멋진 주인공이 있겠습니까마는 저에게는 역시 강백호가 최고입니다.  

녀석의 지기 싫어하는 열정과 스스로를 "나는 천재다." 부르짖으며 꼴통 문제아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스켓맨으로 성장하는 강백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도 함께 화르르~ 불꽃에 휩싸이는 느낌입니다. 

가끔 에너지가 떨어질 때, 어린애들이 열심히 노는 것을 보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미쳐서 신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을 받게 됩니다. 그런 열정과 에너지는 모두 자신의 속에 숨어있는 것인데, 이것저것 걱정만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열정을 끄집어내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게 되나봐요. 그런 때에는 이처럼 신나게, 자신을 분출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 잊어버렸던 기억을 끄집어내주거든요. 

 

모두 슬램덩크를 보셨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농구라는 경기가 팀플레이로 이루어지다보니 혼자서 튄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 사람이 무너지면 그 경기 모두가 무너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각 개인이 소중한 것이죠.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두들 자신의 능력보다 좀 버거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그런 와중에 자신을 더 키울수도 있고 좌절을 겪을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슬램덩크의 안선생님처럼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돼. 단념하면 바로 그 때 시합은 끝나는거야."라고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내가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에 놓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말을 듣고 다시 일어서느냐, 아니면 그냥 주저앉아 있느냐? 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는 다른 이를 믿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예전 해적판으로 짬짬히 읽었던 것과는 다른 감동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오락게임에서 파워포션을 꿀꺽꿀꺽 마시듯 오늘은 열심히 슬램덩크로 나태해지고 약해졌던 정신에너지를 채워서 내일을 또 준비해야겠습니다.  

 

흐흐~ 그러고 보니 내일이 아니고 벌써 오늘이 되어버렸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빌어요. 지금까지 수요일 새벽, 강백호의 무대포 힘을 받아서 신이 난 지안이었습니다. 헤벌쭉~ ^__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4-0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램덩크 저는 못봤습니다. 그러나 강백호는 알고 있죠. 잘생기고 멋진....^^

클레어 2005-04-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생기고 멋진 녀석은 아니고 인상 사납고 성질 못된 놈인데, 알고보면 순수한 녀석입니다. 그거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다행이죠.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