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루살이 >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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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ㅣ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3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 들녘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는 <굶주리는 세계>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북한은 지금도 기아에 허덕이고,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경제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쿠바는 비슷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부의 집중화로 풀이한 이 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다른 해답을 찾고자 하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먼저 쿠바라고 하면 우린(우리인지 나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정보도 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꺼라고 생각된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체제가 다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국가라는 점,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장기독재 상황(카스트로 집권은 40년을 넘기고 있다)이라는 것, 그리고 영화나 그 밖의 모습을 통해서 바라본 아바나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난민들 등등. (최근엔 체 게바라와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영향으로 긍정적 이미지도 많이 갖을 수 있게되기도 했지만...)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대부분 미국을 통해서였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다시 쿠바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는 거의 모든 경제 복지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보아온 난민이라는 현상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권의 지원이 줄어들고(줄어들었다기 보다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말미암아 급격한 경제적 혼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상황에서도 의료부문과 교육부문에 대한 복지정책엔 큰 변함이 없을 정도로 사회주의적 평등이념은 굳건했다. 현재 미국의 국민총생산량의 14분의 1임에도 불구하고 평균나이나 유아사망률, 대학의 수나 교수비율, 박사의 수 등 에선 미국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형편이라는 사실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다. 쿠바라는 나라가 북한과는 달리 이렇게 굳건히 어려움을 견뎌내고 점차 진정한 복지국가의 틀을 갖추어 나가게 된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도시생태농업을 들고 있다. 비료지원도 끊기고, 석유와 같은 에너지의 수입도 힘들고, 심지어 지금의 북한보다 더욱 가혹하게도 약품과 같은 의료지원도 이뤄지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그들은 배고픔을 탈출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빈터에 무조건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비료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유기농이라는 방법으로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국가도 도시농업에 대한 플랜을 세워서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다. 도시농업은 시민의 자발적 농민단체와 정부의 지원, 대학의 연구단체가 하나가 되어 점차 그 생산력을 높여가고, 그것은 석유의 부족으로 인한 유통이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그 지역에서 난 생산품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생태적 건강성을 갖게되는 이유가 된다. 또 석유부족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교통수단이 바뀌게 되고, 에너지 또한 태양열과 같은 지속가능한 수단으로 모습을 바꾼다. 의료정책 또한 허브와 같은 자연의학과 침 뜸과 같은 전통의학 동양의학 등을 접목해서 건강을 회복한다. 또한 유기농 야채 중심의 식단으로의 변경은 자연스레 현대병이라 일컫는 비만과 당뇨, 암의 발생률을 떨어뜨려 의료비가 30~40% 줄어드는 부가적인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즉 도시의 빈터에 과실수와 채소를 심는다는 행위 하나가 국가 전체의 모습을 건강하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정부의 헌신과 시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지만 가능하다. 아바나 시민이 모두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 변화에 모두 수긍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 사회주의의 실패요인중 하나인 노력과 결실의 불평등함이 가져다주는 나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임승차에 대한 문제점이 사회제반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야채나 과실을 훔치거나, 일하지 않으면서도 복지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등) 하지만 이들은 풍부한 사회자본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해나간다. 또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보장하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도 부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고취시키기도 했다. (이기주의에 기초한 시장과 권위주의에 기초한 하향식 관료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제 3의 대안으로 서구학자들이 제안한 사회학적 개념이 사회자본이다. 제임스 콜먼이 제창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의 유형을 말한다) 시민사이의 네트워크가 충실해서 시민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무임승차자가 되게끔하는 동기가 희박해져 사람들의 태도도 협력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신뢰는 개인적 도덕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시스템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도 경제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쿠바를 바라볼때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진정 유토피아라는 것이 물질적 소유의 확대인지 행복의 확장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한다고 본다.
쿠바의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보여지는 것은 교육과 의료의 완전무료와 그것을 바탕으로한 자발적 시민단체에의 참여,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분권적 자율적 지방정부, 그리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이 아직 물질적 풍요를 우리만큼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직 배고픔으로 죽거나 범죄를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병 하나 걸렸다고 집안이 망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장애인 가족을 두었다고 소외되거나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자살이나 살인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이 못사는 나라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분명 쿠바가 유토피아는 아닐지 몰라도 그들이 향해가고 있는 지점은 유토피아임을 이책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