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정의인가? -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이택광 외 지음 / 마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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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래 정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제 자신의 할 일에 마음을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면 ‘책임’이라는 말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샌델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이택광, ‘정의없는 사회는 왜 정의를 욕망하는가?’, 31쪽

수많은 말들의 향연. 그만큼 2010년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수 있다. 인문서로 8년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단순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스테드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고전이 되는 가장 영광스런 자리를 순서를 밟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한권의 책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는 부제를 달고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이후 급격한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각 언론과 글쟁이들에 의해 이 현상을 파헤쳐왔고 그 이유를 분석했으며 미래를 전망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의’라는 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아전인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교집합과 여집합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찾아내야 하는 퍼즐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를 읽고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존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 분석한 후 11명의 해석과 분석을 따라가며 비판적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제대로 읽는 방법은 길고 지루하게 보이지만 지금까지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배경지식이 조금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 이택광, 장정일, 이현우(로쟈), 이양수, 김도균, 최원, 박홍규, 노정태, 서동진, 박가분, 이권우.

낯선 이름도 있겠으나 글의 내용과 방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필자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공정사회’를 외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살펴보는 글들에 이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들이 이어진 후 우리 사회의 정의를 고찰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쓴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필자들의 글속에 중복되는 이론적 배경과 해석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과 미세하게 차이나는 부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의’를 고민하자는 내용으로 읽힌다. 과거 그리스에서 기원한 ‘정의’와 ‘도덕’이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을 거쳐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끈끈하게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홍규는 직격탄을 날린다.

출판 대국이니, 전국민 대졸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느니, 대부분 대학에 철학과가 있다느니 하는데도 그 유명한 디오게네스를 알 수 있는 책 한 권 없다니 너무 디오게네스하다. 너무 개같다. 개판이다. - 박홍규, ‘정의가 돈이라고?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과 한국사회’, 267쪽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의 계보학 자체를 부정하고 디오게네스 철학을 갈급해한다. 노정태는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에 따를 때 정의롭다’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다른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그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 노정태,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285쪽

두 사람 이외에도 필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 놓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다. 다만 어떤 책에 대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과 과정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으로 나아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국방부 불온서적 『나쁜 사마리안인들』을 쓴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정의와 우리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자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의미와 실현 방법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2011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는 것은 70만부가 팔린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사회현상 때문이다. 이권우의 말대로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까지도 바꿀 수 있을지 책보다 흥미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책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의를 현실에 세울 수 있을는지에 있다.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이권우, ‘‘정의’가 읽혔던 2010년 한국사회의 풍경’<무엇이 정의인가?>, 346쪽


11020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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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2
마리아나 발베르데 지음, 우진하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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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 혹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착한 사람들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이 말은 분쟁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고 포기하는 성향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두 사람만 모여도 서로 관점과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와 ‘도덕’은 바로 이런 분쟁 상황에 대한 기준을 의미한다.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현대 사회에서는 ‘법’이라는 말로 규정된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법’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법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법은 항상 인간의 행위와 사회 변화를 뒤쫓아갈 수밖에 없고 법을 만들고 운용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 항상 돈과 권력을 움직이고 반대로 돈과 권력이 법을 부린다. 우리는 모든 질서와 규칙과 합의된 원칙들을 법과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에 의해 공식적인 폭력이 가능한 법과 그 구속력과 효력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법치(法治)’는 국가를 통치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법치’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민주시민 권리장전」 두 번째 시리즈 시리즈의 두 번째 『법치란 무엇인가』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틈엔가 법의 이름으로 규정된 ‘정의’와 ‘도덕’들의 우리들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국가 통치의 목적, 공공선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대가만큼 제도와 법도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의 대가로 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 책은 먼저 법치 제도의 중요성과 법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서유지를 위한 법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법은 이제 인간사회를 지해한다. 사람이 사람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인간을 지배한다. 이것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정의로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하지만 정말 법은 정의를 실현할까? 그 자체가 모순인 준법 투쟁, 잘못된 입법 과정과 각종 이익단체들의 로비, 입법과 시행 과정의 이해관계는 대다수 국민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투표로 심판하고 하나로 뭉쳐 문제를 제기하는데 소홀하다. 우리들의 삶을 조건 짓는 과정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법의 집행과 경찰의 존재에 주목한다. 근대 경찰의 탄생과 사설 경비업체를 다루고 도대체 경찰의 임무가 무엇이며 주로 어떤 일을 하는데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법을 시행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각국의 상황이 조금씩 다르고 그 역할이 비교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특히 법 집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딜레마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만의 고민으로 미루어 둘 수 없다. 늘 논란이 되고 있는 성매매, 아편과 코카인 마약을 예로 들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는 사람들에게도 고민의 시간을 남겨준다. 최근 연예인들의 도박과 마약 사건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개인적 선택의 문제와 사회의 공익의 문제가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다’라고 했지만 공권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결국 국민들의 입장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니 거꾸로 경찰이나 검찰의 태도와 입장을 잘 살펴보자. 답은 명약관화하다. 때때로 ‘중립성’을 외치지만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일이다. 어찌 ‘중립’이라는 말이 가능한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경찰과 검찰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민주주의와 정의사회의 구현은 역대 정부가 내세운 식상한 가치이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제도와 법의 테두리를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시민들은 끊임없이 경찰의 독립을 감시하고 검찰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적극적인 민주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그들은 단 한순간도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가져다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정의와 도덕은 없다. 플라톤의 말대로 정의는 어쩌면 토론과 대화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우리들 스스로가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의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사람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며 인류 전체의 환경조건을 개선시키는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특수한 상화에서 정의의 개념은 달라질 수도 있다.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 정의란 항상 토론과 대화의 문제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 85쪽


11020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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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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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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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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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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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나 할 듯한 고민을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장삼이사의 일화, 세상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사건 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했던 내밀한 고민과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갈등이 느껴질 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글들은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에 자원한다. 5년간의 인도 경찰 생활 후 귀국해서 부랑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를 다시 돌아본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의 반전과 그가 남긴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는 왜 쓰는가』를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동물농장』, 『1984』로만 기억되는 조지 오웰은 다양한 글과 소설들을 남겼다. 이한중은 그의 에세이 중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을 묶어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선택한 글들이 읽을 만 했고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읽힌 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영국,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전까지 소용돌이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대응방식이 흥미롭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71쪽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조지오웰은 신랄한 풍자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썼다. 명성을 얻기 전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나 헌책방에서의 경험, 부랑자 생활, 간디에 대한 생각 등을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재치 있고 발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느 시대를 살았던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조지오웰은 백인 영국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랑자를 바라보고, 인도에서의 경찰 생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부족한 점, 간디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그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든 ‘글’은 오래 기억되고 읽히고 해석되고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지오웰과 그의 소설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7쪽

가령 이런 고백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문장이다. 그것이 소설로 어떻게 실현되었고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내면 풍경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표현론적 측면에서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부한 배경지식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시공간적 무대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비틀고 냉소하는 태도는 당대 현실을 넘어 현실을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케케묵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방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도 그의 글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442쪽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통렬하게 다가온 글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재미있는 글이다. 더구나 대가없이 미친 듯 읽고 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공짜 책은 없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짜책 서평이벤트와 서평 관련 잡지들과 기자들 그의 표현대로 ‘꾼’들에게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상적인 문장 몇 개를 옮겨둔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댛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게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 세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6쪽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11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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