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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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꿈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에 도움이 되며,
통찰의 순간들을 통해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시대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이 마음껏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가 창조되는 모습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고, 제아무리 참혹한 세상도 나를 흔들어대지 못한다.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을 떠올려본다. 철학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과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철학자들 중에 버트런드 러셀처럼 실천적인 삶을 기록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루고 시대를 기록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고 그 변화를 위해 노력했던 철학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러셀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에그너 교수가 편집한 ‘러셀의 베스트’이다. 1872년에 태어나 1970년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러셀의 글 중 정수를 모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어지간한 러셀의 사상과 철학을 일괄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 등 여섯 개 분야로 나누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였던 러셀의 면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엮었다. 『서양철학사』에서 ‘노벨상 수상 연설’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러셀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의심치 않았던 철학자로 이해된다. 따라서 윤리학은 러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분야다. 서양 사상의 근원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러셀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강단의 평온한 철학자를 거리로 나서게 한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가 아닌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아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러셀은 평생 대중적 글쓰기, 즉 쉽고 편안하면서도 풍자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죽을 때까지 매일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 러셀은 여전히 글쓰기의 전범으로도 삼을 만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철학자의 문장이라고 해서 빛이 날만큼 눈부시게 현란하지 않다. 번역문을 통해 그 진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특유의 기지와 풍자가 번뜩인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급변하는 인류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철학자는 불변하는 철학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까. 생각은 갈피갈피 흘러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러셀의 글은 하나의 주제와 일관된 흐름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긴 여운과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하지만 아쉬운 점은 짤막한 호흡이다. 하나의 주제와 연관된 러셀의 방대한 저서 중 일부분 만을 발췌해서 실었기 때문에 러셀의 저작을 어느 정도 읽었거나 집중력 있게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대의 사회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만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 책을 즐기기 위해서는 세계사의 급박한 흐름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또한 러셀의 저작들을 어느 정도 섭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쉽고 편안한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러셀의 유머를 통해 고뇌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백 년 가까이 긴 세월을 살았다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엉뚱하게도 러셀의 하얀 머리칼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겨우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십대,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 중년의 사십대 그리고 황혼녘에 선 사람들에게 인생은 무엇일까. 나이가 인생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러셀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존재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존경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 러셀, <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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