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궁리하는 과학 4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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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 전체가 한 단위를 형성하며, 그 단위가 다른 어떤 사람의 단위와도 다르다는 명백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단위를 라 부른다. 과연 그 는 무엇일까? - 148

 

19449월에 쓴 에르빈 슈뢰딩거의 서문이 낯설다. 6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때문이 아니라 그간 상전벽해 해버린 과학의 발달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이론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막막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론적 정의보다 우선 그 의미를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쉽게 답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여 파동역학을 수립하고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한 축을 담당한 공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말년에 과학철학에 몰두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은 무엇일까. 더구나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던지는 호기심은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이다. 살아있는 세포의 활동과 역할을 고찰하는 일은 단순히 환원주의 입장에서 원자와 분자 수준의 물질을 탐구하는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2500여 년 전부터 철학자들이 했던 고민과 현대 물리학자들의 고민이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게 없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 수많은 질문 중에 하나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과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궁구하게 만든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재미있는 소설처럼 풀어낸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에 소개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일단 재미가 없다. 과학자들이 극찬하는 고전이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책이고 제임스 왓슨 때문에 읽게 됐지만 이중 나선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최재천이나 제임스 왓슨처럼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은 그들을 빛나게 한다.

 

이 책은 궁리하는 과학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정신과 물질을 함께 묶었다. 두 권을 한 권으로 묶는 데는 분량의 문제 뿐 아니라 내용의 흐름도 고려했을 것이다. 옮긴이 전대호의 말대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살펴보는 내용과 연결된다.

 

우선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전 물리학의 접근 방법에서 시작하여 유전의 매커니즘과 돌연변이, 양자역학적 증거를 살펴 본 후에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엔트로피를 통해 생명의 물리학 법칙들을 점검한다. 생명은 일정한 계통에 따라 순차적으로 개체가 발생하는 기계가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밝혀진 과학의 이론에 입각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슈뢰딩거의 이야기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들어볼 만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거나 재미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정신과 물질이 이해가 빠르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로 가득한 정신과 물질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논쟁처럼 어디까지 혹은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도 달라지고 영역도 분리된다. 정신은 무엇이며 그 정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것이 정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가만히 들여달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한 권에 묶여 있어 자연스럽게 두 권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개념적인 용어와 이론들이 들장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거나 하나의 현상을 밝히는 책이었다면 고전이 되었을 리가 없다. 모든 고전은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 질문은 시간을 견뎌내며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고 정답은 없지만 언제나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이 명제 앞에 나약한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그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감에서 종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이 발달하면서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으며 지구상에 가장 오만한 생명체가 되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선악이 없으며 인위가 없다. 돌연변이 조차도 하나의 흐름이며 생명의 신비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슈뢰딩거의 성찰은 생명과 정신과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출발이다. 목적은 없지만 본능적인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인 생명이란 무엇인지 여전히 탐구 중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만들 뿐이다.” 자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가치는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의미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 226

 

 

20111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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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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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서평 사이

 

문학 연구자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학문이 될 것이다. 문학사와 문학 이론은 물론이고 사회학과 역사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은 비평은 어느 작가의 비유처럼 소 잔등위에 앉은 파리처럼 귀찮기만 할 뿐이다. 이론적 기준에 입각한 정치한 글쓰기는 일반 독자를 쉽게 설득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은 비평을 읽을 만하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그러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품의 안과 밖을 두루 살피며 객관적인 검증 절차로 받아들이느냐 개별 비평가의 주관적 평가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늘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비평의 시대를 넘어 서평의 시대가 도래했다. 평론가들의 비평 기능과 역할이 2000년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능동적인 독자들의 참여가 결정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에 소설을 발표하는 시대에 문학 비평의 역할은 설 자리가 좁아졌고 문단 권력과 주례비평에 대한 반성과 비판들은 일반 독자들과 비평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평의 역할과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로서의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혹은 창작되는 작품들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해석은 여전히 평론가와 학문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온라인 시대의 문학에서 서평의 의미와 위치는 애매~하다.’ 개별 독자들의 단순한 독서감상문으로 보기에는 그 깊이와 영향이 상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과 서평을 큰 틀에서 볼 때 객관적일 수 없다고 본다면 백락청과 김현 같은 스타 평론가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은 신문 서평란의 전문 기자와 서평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가들은 전문 연구자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전문 직업군이기도 하다. 기존의 작가들이 겸업하는 경우고 있으며 일반인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김미월의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비평과 서평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신진 작가에 대한 접근 경로와 판단 때문이었다. 평론가는 최근에 출판된 한국 소설을 두루 읽고 그 흐름을 파악하며 한 작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작품세계를 꾸준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경우에는 어떤 작가가 주목할 만한 작가인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전체 작가의 작품을 고루 읽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많이 팔리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지만 김애란의 초기작에서 느꼈던 발랄함과 감각적인 언어, 즐거운 상상력은 첫 번째 장편소설에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겠으나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음 소설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 코너만 기웃거리고 영화를 보고 책을 구입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처음 만난 김미월

 

책과 무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한 가지 더! 시집과 소설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학력표기는 필요한가? 중졸 학력이나 박사학위를 가진 작가의 이력이 작품을 읽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내력, 개인적 관심사와 취미, 집안 분위기, 인상 깊은 성장과정의 에피소드, 정치적 성향,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이 아닐까? 천편일률적인 학력 소개와 펴낸 책 소개는 표정 없는 증명사진처럼 의미도 재미도 없다.

 

강릉에서 태어났다, 는 소개는 강릉에서 태어나서 몇 살까지 성장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소설 곳곳에 배어있는 서울에 대한 느낌과 서울 살이에 대한 생경함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작가의 관찰과 경험인지 잘 설정된 주인공의 몸에 어울리는 상상력인 궁금했기 때문이다. 소설집과 장편 소설을 각각 한 권씩 펴내고 두 번째 소설집으로 처음 만나는 김미월의 소설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보인다. 9편의 단편들이 가진 각각의 얼굴은 따로 또같이 잘 어울린다. 조금씩 다르면서 어우러져 화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낸 소설집의 경우 내용이 다양하다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일관된 성격이나 흐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표제작에 나오는 표현을 차용하자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르긴 힘들지만 그 뒤편 서가 구석에 꽂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인지망생이었던 편집자, 가난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여고생, 불법취업 외국인, 다문화가정, 취업준비생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웃들과 있어도 표나지 않는 개성도 특징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하거나 개성이 뚜렷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막히고 놀라운 사건이나 인상 깊은 장면으로 독자를 사로잡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미소 짓게 하는 상쾌한 비유,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 어색하고 딱딱하게 관념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 황망하지 않는 결론 등 김미월이라는 작가의 분명한 빛깔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분명함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유였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처럼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생각들을 문장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다수 평범한 우리에게 작가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따뜻함을 확인하게 한다.

 

흔히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겨우 ‘29200’일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영원을 살 것처럼 욕망하는 사람들이나 아무도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쓰고 있는 작가의 심정이나 달리할 것도 없는 사람의 미래를 담담하게 들여다 볼 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닌 작가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공감과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로 떠올랐으나 그 말 또한 언제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언제나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소설을 꿈꾸겠으나 그것은 지금 여기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치밀한 관찰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비록 누추하지만 희망혹은 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멈추지 않기를. 모든 것이 우중충하지만 쨍쨍한 햇볕에 잘 마른 빨래처럼 팽팽한 내일을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모든 것이 우중충했다. 저 남자애는 곧 학교에 도착할 것이다. 곧 졸업을 할 것이고 저 아저씨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레깅스를 신은 아가씨들 중 한 명과 결혼하겠지. 두 남녀는 아파트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낮밤 없이 일할 것이다. 주말에는 주중에 밀린 잠을 자기 바쁠 것이고. 드디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면 아마 나이 쉰쯤 됐으리라. 그때쯤이면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당뇨나 허리디스크, 우울증도 피해갈 수 없겠지. 아아, 정말이지 너무나 우중충한 미래였다. - ‘292001’, 45

 

 

2011121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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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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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어린 아이를 떠올려본다. 제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혼자서는 제대로 먹을 수조차 없다. 미숙한 인간은 조금씩 움직이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걸으며 제 몸 하나를 겨우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면 듣고 보고 읽고 쓰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식을 습득하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생각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이 불완전함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조차 두렵다.

 

특히 직접 경험하지 못한 모든 지식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조차 확실치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과거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전통은 습관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들 겨우 걸음마를 뗀 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배운다. 이 과정이 맹목적인 주입식으로 이루어질 경우 주체적인 판단력과 사고력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보고 토론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비판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인 설득력 그리고 종합적인 판단력 때문이다.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세상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자각 혹은 삶의 패러다임 전체가 흔들리는 지적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면 나는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제자백가의 귀환 두 번째 책, 강신주의 관중과 공자는 앎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관중과 포숙의 교우 관계를 일컫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정도로 알고 있는 관중은 누구인가. 또한 500년 조선 왕조를 지배하며 우리의 전통 문화의 사상적 배경으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현실주의자 관중과 이상주의자 공자

 

역사 속의 두 인물을 비교하는 일은 많은 책에서 시도해 왔고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다른 인물들과 조금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제후들처럼 따로 다루고 있을 정도로 공자는 여느 철학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만큼 공자는 위대한 철학자일까. 학교에서 배운 혹은 공자에 대한 막연한 의심은 춘추전국시대와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대의 행운아로 보이는 관중도 마찬가지다. 후세 사람들에게 평가 절하된 관중은 어떤 상황에서 제나라의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들었을까.

 

작가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통해 인물의 생애를 조망한 후 그들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우선 혼란스런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을 더듬는 일은 어떤 책보다도 흥미롭다.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 체제를 갖추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상황과 1권에서 다루었던 의 관계는 2권을 읽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제자백가의 귀환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이다. 강신주가 제자백가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이 기대되면서도 끝까지 이 시리즈를 읽어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든 인물로 기억된다. 그가 가졌던 정치적인 능력과 꿈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현실이 되는지 살펴보는 일은 당대의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작가의 통찰력을 빌리는 일이기도 하다. 폭넓은 인문학적 사유와 적절한 원문의 인용은 이 책이 단순히 알기 쉽게 풀어 놓은 해설서나 쉽고 재미있는 입문서를 넘어서는 이유다. 우리가 관중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제나라의 상황을 읽어내는 능력 뿐만 아니라 경제가 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관중의 전략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정치철학 구분

관중

공자

정치 논리

가족 논리 국가 논리

가족 논리 = 국가 논리

정치 주체

군주

군주 + 귀족층

정치 대상

귀족층 + 민중

민중

정책의 우선순위

경제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 경제

민중에 대한 인식

능동적 사회계층

수동적 사회계층

 

그에 비해 공자는 어떠한가. 주나라의 를 숭상하며 오랜 시간을 견뎠으나 그의 이상은 결국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관중과 공자가 비교되는 지점이다. 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관점과 유사하게 서술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양비론(兩非論)과 양시론(兩是論)이다. 공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모두 옳거나 모두 그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사회의 관점에서 공자를 바라보거나 현재적 유용성으로 공자를 해석하거나 정확한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먼지 묻은 중국 고전의 원문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누구의 해석과 관점이 정확하다고 순위를 매기자는 말이 아니다. 강신주의 해석과 관점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 많다. 지면의 한계도 있겠으나 아쉬운 면도 있다. 그러나 컨텍스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아주 조금 안다는 생각이 든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201112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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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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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와 인문학

 

개별 생명체는 모두 아름답다. 눈부신 태양아래 태어난 생명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다.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관점의 차이를 넘어선 명제다. 물론 그 생명 탄생의 신비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결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생명 자체의 신비를 넘어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춘기를 겪는다. 통과의례나 단순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춘기는 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시작한다. 우리가 아닌 개별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니.

 

그러나 이 충만한 생명감과 성인의 단계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공간도 책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은 모두 학생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원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대안학교가 생기고 공동체들이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의 목표가 이름난 대학 진학, 돈 잘 버는 학과 합격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른들이 심어준 잘못된 믿음과 거짓 신화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삶의 목표와 방식의 차이일 뿐 거짓이나 신화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고민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인간의 지혜는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그러나 실용적 지식에 목매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먼지 묻은, 냄새나는, 고리타분한, 쓸모없는, 골치 아픈, 추상적인, 어려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공부할 시간도 없는 학생들에게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사춘기의 고민은 인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고민의 흔적들이 녹아 있고 근본적인 답을 찾고 싶다면 인문학에 길을 물어야 한다.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등 마치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듯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권하고 읽히고 고민하게 할 의무가 있다. 쉽고 단순한 답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그만큼 깊고 넓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

 

감정(emotion)과 상징(icon)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이모티콘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경계를 허문다. 어색한 상황이나 할 말이 없을 때도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모티콘은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대면 상황이라면 이모티콘이 필요 없다. 우리들 몸짓이 고스란히 이모티콘이 되기 때문이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당황스럽고 어색한 모든 감정들이 몸으로 표현된다. 비언적적 표현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몸은 가장 인간적인 이모티콘이다.

 

을 주제로 길담서원에서 청소년인문학교실을 열고 강연과 질의응답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을 펴냈다. 한의사 이유명호부터 철학자, 물리학자, 연극인 등 7명의 전문가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생명의 근본적 문제까지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강사의 책을 미리 읽고 강연을 듣고 질문과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 , , 집 등 주제별로 인문학교실을 진행해온 길담서원의 두 번째 책은 서울 통인동 인왕산자락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진짜 공부는 무엇인가,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고민할 시간이다. 장회익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온생명 차원에서 40억 년간 지속되어 왔다. 릴레이 주자와 불과하지만 앞선 주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왜 달리고 있는지 알고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문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경쟁과 승리만을 위해 무한 질주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화두는 던져주고 있다.

 

수학문제가 아닌데 인생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인문학은 거창하고 어려운 분야가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이다. 좀 더 쉽게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이런 모임과 책읽기와 강연들이 이어지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깊은 겨울밤, ‘에 대한 고민을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결국 몸 철학이라는 것은 몸에 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 핵심은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과 행동은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 조광제, 290

 

 

201112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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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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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잔하기로 했다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 한잔하고

한잔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잔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 오규원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우화(寓話)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이솝 우화>보다 오규원의 시가 먼저 떠오른 것은 우화에 대한 어떤 정의보다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유와 상징을 통해 대상을 비틀어 웃음을 주거나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우화라고 한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 우화는 정교한 논리와 합리적인 대안으로 머리에 차가운 물을 들이 붓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소설과 시나리오처럼 특별한 형식과 기교가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만들거나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화는 아주 오래된 문학의 한 양식이다. 짧고 간단하지만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우리는 잊지 못하는 법이다. 머리를 움직이는 것도 어찌 보면 가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가장 이성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상세한 설명과 논리적인 호소가 아니라 때로는 한토막 우화인지도 모르겠다.

 

나른한 토요일 눈을 뜨고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책장을 넘기다가 눈물을 흘릴 뻔하다. 사람마다 웃음의 코드가 조금씩 다르듯이 눈물이 많건 적건 슬픔이 아닌 눈물샘은 제각기 다른 뇌의 영역과 연결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100°C울기엔 좀 애매한을 통해 최규석의 만화를 읽고 주목하고 있던 차에 새 책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읽고 그에게 감동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감상적이지 않다.

 

대책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허무하다. 풍성하고 화려한 말의 잔치 속에는 뼈가 없다. 삶의 지혜를 전한다는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의 책이나 명상가와 종교지도자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긍정의 힘만 강조하고 모두 네 탓이니 마음을 닦으라는 말도 그렇다. 듣고 나면, 읽고나면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거나 헛된 용기와 희망만 불어넣는 이야기와 최규석의 우화는 어떻게 다른지 읽어보면 안다.

 

우화는 기본적으로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숨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어야한다. 만약 이면의 이야기가 닿지 않는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재미있는 만화책보다 못하겠지만. 김규항의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된 코딱지만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라고 하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물론 삶의 태도, 타인과의 관계까지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

 

민주주의, 다수결, 법치주의, 경쟁, 차별, 자본, , 나눔…… 등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최규석의 우화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적절한 만화 그림이 어우러져 읽고 보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순식간에 넘어가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감동은 길고 여운은 오래 남는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 두꺼운 책, 딱딱한 이론, 이해하기 힘든 논쟁, 쓸데없는 이념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더욱 큰 설득력을 얻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최규석은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작가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알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작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잊을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살이 빠지고 얼굴이 예뻐지는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영혼이 성숙하는 변화를 말한다.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아무리 값이 오르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싼 물건은 책이다. 더 재밌는 만화 더 좋은 글 더 값진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 준 좋은 책이다.

 

 

20111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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