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궁리하는 과학 4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 전체가 한 단위를 형성하며, 그 단위가 다른 어떤 사람의 단위와도 다르다는 명백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단위를 라 부른다. 과연 그 는 무엇일까? - 148

 

19449월에 쓴 에르빈 슈뢰딩거의 서문이 낯설다. 6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때문이 아니라 그간 상전벽해 해버린 과학의 발달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이론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막막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론적 정의보다 우선 그 의미를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쉽게 답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여 파동역학을 수립하고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한 축을 담당한 공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말년에 과학철학에 몰두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은 무엇일까. 더구나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던지는 호기심은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이다. 살아있는 세포의 활동과 역할을 고찰하는 일은 단순히 환원주의 입장에서 원자와 분자 수준의 물질을 탐구하는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2500여 년 전부터 철학자들이 했던 고민과 현대 물리학자들의 고민이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게 없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 수많은 질문 중에 하나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과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궁구하게 만든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재미있는 소설처럼 풀어낸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에 소개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일단 재미가 없다. 과학자들이 극찬하는 고전이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책이고 제임스 왓슨 때문에 읽게 됐지만 이중 나선처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최재천이나 제임스 왓슨처럼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은 그들을 빛나게 한다.

 

이 책은 궁리하는 과학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정신과 물질을 함께 묶었다. 두 권을 한 권으로 묶는 데는 분량의 문제 뿐 아니라 내용의 흐름도 고려했을 것이다. 옮긴이 전대호의 말대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살펴보는 내용과 연결된다.

 

우선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전 물리학의 접근 방법에서 시작하여 유전의 매커니즘과 돌연변이, 양자역학적 증거를 살펴 본 후에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엔트로피를 통해 생명의 물리학 법칙들을 점검한다. 생명은 일정한 계통에 따라 순차적으로 개체가 발생하는 기계가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밝혀진 과학의 이론에 입각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슈뢰딩거의 이야기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들어볼 만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거나 재미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정신과 물질이 이해가 빠르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로 가득한 정신과 물질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논쟁처럼 어디까지 혹은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도 달라지고 영역도 분리된다. 정신은 무엇이며 그 정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것이 정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가만히 들여달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한 권에 묶여 있어 자연스럽게 두 권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개념적인 용어와 이론들이 들장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거나 하나의 현상을 밝히는 책이었다면 고전이 되었을 리가 없다. 모든 고전은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 질문은 시간을 견뎌내며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고 정답은 없지만 언제나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이 명제 앞에 나약한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그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감에서 종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이 발달하면서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으며 지구상에 가장 오만한 생명체가 되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선악이 없으며 인위가 없다. 돌연변이 조차도 하나의 흐름이며 생명의 신비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슈뢰딩거의 성찰은 생명과 정신과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출발이다. 목적은 없지만 본능적인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인 생명이란 무엇인지 여전히 탐구 중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만들 뿐이다.” 자연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가치는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의미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은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 226

 

 

20111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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