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21세기 - 2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노자와 21세기> 2권은 7장부터 24장까지의 내용이다. 인상 깊은 구절들을 적고 F9를 누르면서 한자로 변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독자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은 그들의 삶의 형태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天長地久,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간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               하늘과 땅이 너르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것은,
以其不自生,                           자기를 고집하여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故能長生.                              그러므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 7장


피 흘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유덕화의 모습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스팔트를 다리는 오천련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영화 <천장지구>는 깊은 인상을 남긴 청소년기의 영화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유일한 상태가 사랑의 빠진 인간의 감정이 아닐까? 비극적 사랑이 보여주는 안타까움에 관객들은 가슴을 졸였었다. 노자가 다시 태어나 이 영화를 보면 기겁할 일이겠지만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와 상황을 불문하고 도달하기 힘든 경지다. 바람직한 상태나 상황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학문의 세계이든 사랑이든.

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處衆人之所惡,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故機於道.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 8장


노자 도덕경에서 자주 인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 중의 하나지만 역시 기가 막히다.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에 곳에 처하려는 노력은 인간에게 가식일 수 있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정한 ‘道’의 실체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인간이 닮고자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누구나 그럴 수 없다. 겉멋 든 표현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천의 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단순 무식한 노력과 기본적인 심성에만 기댈 수는 없다.

五色令人目盲,                       갖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五音令人耳聾,                       갖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하고,
五味令人口爽.                       갖가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 12장


색과 소리와 음식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때로는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욕망들을 경계하는 이런 표현들이 거북하다. 에피큐러스 학파의 진정한 쾌락이 금욕주의로 흐르듯이 지속 가능한 영원한 쾌락을 위한 자기 극복은 필요하다. 하지만 범인들의 입장에서는 고문이다. 내 방식대로 현실의 모습 속에서 노자를 이해하고 풀이하는 나같은 수많은 독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맘에 새기고 뼈에 사무쳐도 실천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외물에 미혹하지 않는 경지는 하루 이틀에 완성될 수 있는 내공이 아니다.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단지 훈련만으로 가능하다면 조금씩 흉내내고 싶다.

大道廢, 有仁義.               큰 도가 없어지니 인의가 있게 되었다.
慧智出, 有大僞.               큰 지혜가 생겨나니 큰 위선이 있게 되었다.
六親不和, 有孝慈.            육친이 불화하니 효도다 자애다 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
國家昏亂, 有忠臣.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라는 것이 있게 되었다.
- 18장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와 관계의 구속이 아니라 자유로움에 근거한 통쾌한 역설! 바로 이런 구절이 노자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인의, 지혜, 효와 자애로움 그리고 충신을 뒤집어 바라보는 시원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던져주는 18장의 의미는 색다르다. 가슴으로 읽는 구절이 다르겠지만 이 구절은 발상과 표현에 주목한다.

絶學無憂.                        배움을 끊어라! 근심이 없을지니.
- 19장


공부하기 싫은 놈들을 위한 최고의 변명이 될 수 있으니 주의요망! 그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希言自然.                        말이 없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故飄風不終朝,                  그러므로 회오리 바람은 아침을 마칠 수 없고,
驟雨不終日.                     소나기는 하루를 마칠 수 없다.
孰爲此者? 天地!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하늘과 땅이다!
- 22장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부분이다. 회오리 바람이든 소나기든 천지가 만든 것은 영원할 수 없으니 인간이야 말해 무엇하랴. 논란이 많은 해석에 대해 도올은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나같은 문외한이야 어느 판본을 인용해서 비교하든 중요하지 않다. 미미한 해석상의 오류도 그렇다. 다만 지금, 여기 나의 문제를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할 따름이다. 어차피 모든 독서의 과정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06110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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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이 TV에 나와 묘한 억양으로 강의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재미있었고 실생활과 상관없이 듣고 즐길 수 있었어요.
이 글 중간 중간에는 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마지막 문장은 제가 책을 파고 들때마다 하는 생각입니다.

sceptic 2006-11-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모든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을 거쳐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니까요. 특이한 억양만큼 외모와 생각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겠지만요.

비로그인 2006-11-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학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만은 본받고 싶더군요.

sceptic 2006-11-1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합니다. 세상과 학문에 대한 날선 목소리는 본받을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