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 교과서 -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테마로 본 11개국의 역사교과서
이시와타 노부오.고시다 타카시 엮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와 교과서가 만나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역사 자체에 대한 논의만으로도 시대와 사관에 따른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도 사학계는 논쟁중이다. 물론 건전한 학문의 발전과 역사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진행 중일 것이다.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면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이제 7차를 시행하고 있다.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통치이념을 주입하는 수단으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해방이후 대한민국 교과서의 특징이다. 특히 윤리와 도덕, 국어와 역사는 더욱 교묘한 헤게모니의 장악 수단이 된다.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논란은 앞으로도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개별적 사건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이해하는 방식은 계층에 따라 혹은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국가 간의 전쟁에 대한 역사 서술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현상들을 비교 분석하다보면 무엇인가 접점을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눈으로 바라보길래 같은 사건에 대해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이토록 상이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그것이 후세에 대한 역사교육의 관점이라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이시와타 노부오와 고시다 다카시가 편저한 <세계의 역사교과서>는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우선 주제가 선명하다. 세계사의 수많은 사례와 쟁점들을 점검하려는 무모한 계획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전쟁’과 ‘식민지지배’라는 두개의 주제만을 다룬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각국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을 것이다. 1,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나라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식은 일본과 관련된 국가들을 살펴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첩되는 나라들의 역사교과서를 분석하는 일은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11개국의 작은 소제목이 각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특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민족주의사관에 의거한 역사 - 한국, 생생하고도 사실적인 기술 - 중국, 1980년대 ‘교서 문제’가 불러일으킨 ‘변화’ - 싱가포르, 역사교육과 ‘과거의 기억’ - 베트남, 독립을 쟁취했다는 자부심 - 인도네시아, 역사를 현대의 문제로 생각한다 - 독일, 역사의식은 가정에서 형성된다 - 폴란드, 세계를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인식력을 기른다 - 영국이 그것이다.


  각 나라는 고유한 역사 발전과정을 가지면서 현재를 이루고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태도로 역사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겠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렇지 못하다. 선택적으로 자국의 피해사실에 대한 부분은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가해 사실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아예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식민지 지배 사실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로를 세습시켜나가지만 베트남 민족에 대한 가해 사실은 기초적인 사실관계와 피해 사실조차 확인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침략 전에 가세한 한국의 경우 베트남전에 대한 성격규정조차 모호하다. 그나마 7차 교육과정에 ‘근현대사’라는 과목이 설정된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역사교육이란 사실만을 가르치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배우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역사인식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사실의 학습과 역사인식을 동시에 시야에 넣고 실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역사교육입니다. - P. 42


  역사교육에 대한 논의가 각국의 교육당국과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런 논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교육은 한 나라의 미래다. 특히 역사 교육은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나와 우리,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제다. 눈물 질질 짜는 애국주의에 호소하거나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서술에서 벗어나 전국역사교사모임 등에서 활발히 벌이고 있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에 관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획일적이고 공통된 관점으로 보이지 않는 실체, 국가와 민족에 복무하는 역사가 아닌 현재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역사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교과서를 읽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 달라야 정상이다. 서로 다른 해석을 두고 대화하는 장소가 교실인 것이다. 빵틀에 구워낸 듯 똑같은 생각을 하는 섬?한 공부기계들은 이제 그만 생산을 중단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교사는 전쟁에 대해서나 다른 일들에 대해서나 언제나 비폭력, 인권존중이라는 가치관을 가치관을 가지고 수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 P. 291


  역사를 국가에서 분리하고, 보다 더 민중 쪽으로 이끌어 가는 역사가 교과서에 배어 나와야 할 것입니다. - P. 338


  역사교육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위와 같은 관점이라면 교사와 역사교육의 위치가 그래도 적당하다고 합의할 수 있을까? 우리 현실에선 아직도 이념논쟁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소원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 역사는 의미 없다. 차갑고 냉정한 논리만 남은 역사교육은 더 위험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남아있다. 각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 하면서도 반드시 점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그것을 반증한다. 어쨌든 이런 거시적인 프로젝트가 민간에 의해 주도되고 올바른 역사인식과 미래의 역사교육에 대한 거시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작업들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그 의미와 성과 면에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후소샤 교과서’ 파동에 대한 우려로 시작된 작업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나름의 의미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를 넘어서 앞으로의 논의와 진행과정이 주목된다.


06011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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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0-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세계에 대한 역사를 정확하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매우 독창적이죠.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sceptic 2006-10-30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님도 즐거운 독서 계속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