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이반 일리히 전집 3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행복을 말하는 것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다. 그만큼 다양한 제 나름의 목적과 기준과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유치환은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말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행복이다. 행복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시키면 ‘행복’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이상론으로 발전한다. 벤덤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역설했지만 실천적 한계와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단순한 문명 비판 서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책이다. 짧은 발표문으로 적은 분량으로 심층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일리히가 주장하는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 사고는 귀담아 들을만하다. 특히 발전과 속도의 맹목에 목숨건 사람들에게 필요한 처방전이다.

우리는 빨라진 속도만큼 행복해졌는가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KTX를 타고 부산에 당일로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에 행복도 그만큼 늘어났을까? 인간의 행복을 어떤 기준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자전거와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 말하는 이야기는 무언가. 그것은 에너지와 속도의 문제로 모아진다. 이 책의 원제는 ‘Energy and equity’이다. 화석 원료로 매장량이 제한되어 있는 석유에 대한 인류의 에너지 의존도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석유 먹는 하마가 되어 버린 중국의 석유 사용량의 증가는 미국과 함께 미래의 에너지에 대한 대책이 코 앞에 닥쳤음을 예고한다. 평등하지 못한 에너지의 사용과 주로 교통 수단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사용에 대해 일리히는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인간의 잠재된 상상력과 자연 속에서 누려야할 행복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읽는 사람을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할 만하다. 우리가 잃어 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인간의 자율적 이동이 아닌 타율적 수송은 인간의 삶의 형태를 바꿔버린 것은 물론이고 인간 사이의 불평등을 파생시켰다. 이동 속도의 증가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율적 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점점 더 바쁘고 시간이 없어진 사람들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과는 거리가 먼 실천적 행동을 요구하는 일리히의 목소리는 새겨 들을만하다. 자전거는 인간의 신진대사의 한계만큼 활발하게 신속한 이동을 가져왔으며 에너지에 대한 공포와 환경 문제에 대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과 결론을 이끌어 내는 논리적인 말하기는 부드러움의 힘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21세기와 자전거라니? 빛의 속도를 흉내내는 인간의 이동 수단의 발달에 딴지를 거는 무모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전거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빠른 교통 수단이 되어 버린 대도시의 교통난과 에너지 문제는 단순하게 치부할 만한 주장은 아니다. 실제 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들을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적용해 보느냐하는 용기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쉽지 않겠지만 필요한 일이라면 신중해 질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자는 주장과는 거리를 두고 일리히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본다면 미래의 대체 에너지 개발에 열올리는 대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출퇴시간에 소요되는 시간의 효율성과 우리들 삶의 질을 비교한다면 발상의 전환은 가능하다. 일거에 자동차를 모두 없애자는 원천 봉쇄의 오류를 범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의 시작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도로와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겠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생각과 방법들이 있다. 노력하고 실천하고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환경은 중요하다는 식의 단순 분류의 오류를 범할지도 모르는 이 책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생각할 문제를 던져준다.

자전거를 타고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율적으로 이동하는 것과 퍼스트 클래스 1등석의 안락함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일리히가 말하는 에너지 위기와 속도에 마비된 상상력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가속도의 무익성이나 파악하기 어려운 속도의 한계, 인력이동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들은 놀랄만한 과학 기술의 과학과 더불어 고민해 보아야 할 핵심적 사안들이 아닐까 싶다.


06082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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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경 2015-04-1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정성이 담긴 리뷰 고맙습니다

sceptic 2018-03-16 23:41   좋아요 0 | URL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