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얼마나 견고한가. 어쩌면 점점 단단해지는 구조물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기득권을 가진 자와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을 위한 철옹성이 되어간다. 이념적 성향을 떠나 이기적 욕망이 앞서고 다수를 위한 사회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은 식후의 디저트처럼 항상 2차적이고 부수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고 더 많이 가질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다는 태도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과연 현재와 같은 상태가 꾸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인류는 독재와 파시즘, 식민지 등 암흑과 같은 시대를 견뎌내기도 했지만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학은 이 견고한 구조물에 계란을 던지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우스꽝스런 건물의 외관을 비웃기도 한다. 또한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지도 못하는 구조와 설계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장애물을 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이대로 좋은가? 과연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얼마나 견딜 수 있으며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통해 공지영을 처음 만났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이 소설가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소설 외적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작가는 항상 그저 소설로 말할 뿐이다. <도가니>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를 잇는 그녀의 장편소설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포털 Daum에 연재했던 소설이라는 발표 형식상의 특징이 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비유와 구체적인 표현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저리들은 독자들을 몽롱한 안개 속으로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너무 깔끔하고 정돈된 솜씨로 유려하게 읽히는 소설의 문장들은 때때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번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을 그려낸다. 사형 문제에 이어 장애인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과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작가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구조적 모순들과 우리 안에 잠재된 ‘광란의 도가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가니의 사전적 의미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작가는 소설 속 공간인 ‘무진(霧津)’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구별되지 않는 안개의 특성은 진실과 거짓이 뒤엉킨 채 우리들의 사고와 가치판단조차도 흐리게 만드는 듯하다. 가장 추악한 인간의 모습과 이기적 욕망들이 결합된 도가니는 무진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오롯하다.

  이 사회의 흉측한 몰골을 여실히 드러내는 무진시의 기득권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간략하게 묘사한다. 단순한 스케치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문제들을 거론하며 윤리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문제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고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거나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가치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이 없을 것 같은 모호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선명하고 확고한 진실 앞에서도 우리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가진 자의 손에서 무언가를 뺏어내는 일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자기 것을 지키려는 자가 쉽게 손가락에 힘을 빼지는 않는다. 선악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문제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립학교법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미디어법은 목숨을 걸고 통과시키려하고 있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암묵적 합의, 우리는 보통 이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한다. 말없이 서로를 위해 복무하고 정교한 그물처럼 짜인 세상에서 변화는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나와 무관해도 그 피해정도와 여파를 고민한다.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좌절하고 쉽게 포기하며 타협하고 손을 내민다.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하는 삶이 시작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경우의 수를 측정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은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평범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더 불행할까?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고뇌의 흔적이 별로 없다. 무진을 떠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지만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주인공처럼 무진을 떠난다. 하인숙을 떠난 윤희중처럼 서유진을 떠난 강인호는 도피라고 볼 수 있을까. 또 다른 현실과 진실 사이의 고뇌와 갈등의 결과일까. 이 소설의 결말은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강인호였다면?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5년형이 구형됐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건이다. 단순히 ‘용서’의 문제가 이 소설의 주제는 아니다. 김승옥의 소설에서 차용한 구조는 현실 밖의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다. 동떨어진 머나먼 장소에서 끈적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무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2009년의 현실이 무진 아니겠는가? 그래서 서유진은 이렇게 외쳤는지도 모른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것예요.” - P. 257


090708-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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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7-0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날카로우시네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거에요. 이 문장에 가슴을 벤 듯 아려요.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진실하나로 버텨가기에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들.

sceptic 2009-07-10 23:0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