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1980년대 “아파트로 이사갈래?” 저녁 식사 자리로 기억하는데, 어머니의 말에 모든 식구가 반대한다. 그게 사람 사는 집이냐, 닭장에서 어떻게 사느냐, 성냥갑처럼 갑갑하다…… “싫으면 혼자 간다.” 그렇게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 장면 2. 2000년대 “그 집이 국회의원이 나온 집입니다. 터가 좋은가 봐요.” 부동산 중계업자의 말을 듣고 입맛이 떨어졌다. 정치인이 살던 집이면 정말 재수 없는 집이라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누군데요? “단병호라고, 왜 있잖아요, ……” 민노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전 민노총 위원장 단병호.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 분이 아파트에 사셨다니……. 농담이 아닌가 했고 사실이라면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의 대부 전 민노총 위원장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고민은 사라졌다. 전 전주인이긴 하지만 존경하는 분이 살았던 집이라니……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중계업자에게 계약하자고 말해 버렸고 그 곳에서 밤마다 책을 읽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참 대책 없는 인간이다.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배곯아보지 않은 먹물의 배부른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돈의 위력과 힘에 압도되어 본 적도 그것을 부러워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생활은 생활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아파트 생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농촌 생활을 해 본적도 없으면서 늘 마음은 산에 가 있다. 단순한 동경과 낭만이 아니라 최소한 땅과 호흡하고 나무를 볼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하다. 언제 그 도서관 같은 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으나 누구에게나 소박은 희망은 있는 법이다. 사방팔방 아파트 콘크리트 덩어리로 둘러싸인 이곳은 수용소나 군사시설을 연상시킨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생활의 터전이 되지 못한다. 이곳은 신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욕망의 블랙홀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과연 ‘아파트’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묻는 것은 실존적인 고민해 해당된다. 삶의 뿌리와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적 계층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면 미래와 희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나친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허의도의 <낭만 아파트>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치적 입장과 사회경제적 위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칙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 허의도의 입장은 매순간 삐걱거린다. 책을 쓴 목적도 입장도 모호하고 구석구석에 드러나는 모순은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중앙 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월간중앙’ 편집장이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인인 그는 아파트가 없다. 나의 경험을 본문에 소개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아파트 투기 광풍의 피해자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업은행에 다니던 시절 아파트를 분양받고 퇴사하면서 팔아버린 사연이나 그 후 최근에 구입 기회를 놓쳐 버린 경험은 책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저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것이 어떤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는지 설명한다. 먼저 아파트를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는 1부는 박정희와 건설 공화국의 의미를 고찰하는 데서 출발해서 IMF를 거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이르기까지 경제 문제와 아파트의 상관관계를 짚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는 대단히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고 있으며 감상에 기대고 있는 면이 많다. 아파트를 키워드로 우리 경제의 발전과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아니면 2부에서처럼 문화사회학이라는 측면에서 아파트의 의미와 역할을 집중적으로 풀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두 다양한 관점이 하모니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어설픈 만남으로 읽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나만의 감상일 수 있으나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과 분석을 전제로 하는 기획이거나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문화적 관점에 철저했다면 훨씬 읽을 만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시인으로 등단해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문장들은 읽을 만하고 인용된 내용이나 적절한 비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낸다.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무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파는 건설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으로 명명될 만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아프게 그려낸다. 개발 독재 시절의 고통과 아픔은 이 시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향수에 젖은 사람들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물론 노무현의 ‘아파트’는 한 두 마디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는 어느 아파트 광고의 카피를 기억한다. 역겨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슬픈 천민 자본주의의 단면을 드러내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오늘도 안녕한가? 아니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안녕할 것인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을 뒤적여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옹호론자든 반대론자든, 강남 공화국 시민이든 아니든 입장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 손은 뜨거운 물에 한 손은 얼음물에 담근 사람처럼 묘한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된다. 080818-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