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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 조재도의 교육 에세이
조재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능력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모든 시험에 반대한다. 최근에는 벌어지는 반역사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 행태는 울분을 참을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실시하다니 - 21C 대한민국은 시대를 거슬러 살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즐기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인간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다. 성적이라는 숫자로 학생을 평가하고 그것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지 묻고 싶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했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이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교육에서 특히 학교 공교육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목적은 발전해 왔는지 묻고 싶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숫자 놀음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의 지능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면서 각각의 지능은 독립적이라고 주장했다.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 자연친화적 지능이나 대인관계 지능이 뛰어나서 나름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꼼짝 마라! 일단 국영수라는 삼발이를 굳건히 세워놓고 이야기하자는 논리이다.
교육에 관해서라면 나름대로 모두가 전문가이고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신념과 믿음들이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인가? 해법은 제각각이고 현장에서 혹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대입 제도의 개선의 초, 중등 교육 환경 개선의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과연 대입제도가 줄세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서 대학교육을 통해 우수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재능있는 사람으로 교육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괴감과 모순 투성이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과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합의해야 가능한 교육적 토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전교조 합법화 시절 해직교사였던 조재도 선생님이 다시 학교에 돌아와 오랜만에 담임을 맡으면서 써내려 간 교육 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단숨에 한 호흡으로 읽힌다. 1년간의 담임 기록장에 불과한 이 책은 특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시선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특수성, 공교육에서 담임의 역할과 애환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장감이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학교 교육 현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준다. 지역에 따라 학교급별로 상황이 다르겠지만 조재도 선생님이 느끼는 학교와 모순들은 일반적인 수준에서 모든 학교가 겪는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사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선은 다르다. 한 줄로 세우는 교육에서 일등은 참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일등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리인가.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제목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등을 할 수는 없을까? 쉽지 않지만 우리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사의 역할과 기능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좋은 교사가 되려는 노력은 교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니,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조차 제각각일 것이다. 자신이 그려놓은 훌륭한 교사상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많겠지만, 그려놓은 상(象)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우려할 만한 노릇이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고 합리적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교사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주장과 과정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고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좋은 교사는 지금 여기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 P. 128
책 전체를 통해 가장 훌륭한 문장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존재 자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교사, 알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쌓여온 수많은 편견들과 학생이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완고한 도덕적 틀과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보수적 관념들을 가진 교사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모범생으로서 역할에 충실해서 체제 순응적인 교사 집단의 문제점은 내부적인 모순조차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지만 상명하달, 교장 교감에 의한 전횡 등 구태연한 모습들은 20대의 교사와 60대의 관리자가 공존하는 학교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학교가 변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변해야 하고 교사가 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 대한 태도와 미래에 대한 안목과 열린 마음과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아는 똘레랑스의 정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1C 교육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 교사는 성과를 쉽게 계량화 할 수 도 없고 측정하기도 힘들다. 그들이 변해야 학교가 변하고 학생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답답한 우리의 교육현실을 통해 무언가 변화의 필요성과 개혁의 단초를 확인했다면 이 책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느 교사의 푸념이 아니라, 일년 동안의 학급 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수만은 문제점과 학교라는 완고한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공교육의 현장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학교로 질주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됐어.”라고 서태지처럼 외치지 못하고 있다.
08031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