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行 야간열차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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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아침은 찬란하기만 하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눈을 뜨며 살아있음을 감사할 때가 있다. 이른 새벽에 헤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이기도 하지만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된다. 현실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거나 외롭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황인숙의 <리스본行 야간열차>는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들, 삶의 구석구석을 헤집는 눈과 날선 감각들, 둥글고 부드러운 시선보다 음울하고 어두운 감각이 신선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장면과 사물은 색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의 본질은 언제나 대상과 시선 그리고 언어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시인의 시선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대상에서 무엇을 읽어내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독자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사소함에서 위대함을, 무심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삶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방법은 다양하다. 삶의 형태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시인의 개성이고 시의 특징이 된다.  

산오름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그의 기척이 이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구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 새 획획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여전히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욕심도 없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산과 하늘을 무심하게 보고 있다. 그는 나무도 돌도 풀도 구름도 데리고 산에 오르리라. 아득한 거리에 있는 사람을 재촉한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보폭과 속도가 있다. 앞과 뒤가 아니라 걷는 목적과 태도가 다른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여름 저녁

조금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을 듯한
먼 하늘에
태양이 벗어놓은 허물
둥실 떠 있다
조금쯤 바람 빠진 듯
맥없이 부푼 주홍빛 풍선
맥놀이 퍼지는 하늘

“그래, 이대로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버럭 중얼거리며
어리둥절하다
뭘?
몰라, 가슴 쓰리다.

  황인숙의 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잡아내기는 어렵다. 아니 어느 누구의 시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가슴을 쓰리게 하는 복병이 숨어 있는 삶처럼 그 혹은 그녀가 그러하듯이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족과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독자의 모습이다. 이대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문답하듯 모른척 외면하기도 한다. 삶을 계속된다. 여름 저녁에도.

카페 마리안느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내 청춘은 못생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앞날은 훤하지만 눈앞은 캄캄했던 청춘의 뒷골목을 회상한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는? 그것도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뒤돌아보는 시간을 이렇게 잠깐씩 가질 수 있는 것은 황인숙의 시가 아니라도 독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청춘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카페도 있겠고, 이쁘고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도 있겠지만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비춰보기 위함이다.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현재는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청춘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라져간다.

  동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과 관찰로 만들어 낸 시편들이 읽을만하다.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고양이는 시인이 되고 시인은 고양이가 된다. 언어는 매개가 되어 진경을 선보이고 독자들은 순간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떨군다.

깊은 졸음

뒤로도 양옆으로도
벽을 훑내리는 비바람 소리
방충망에 걸러져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빗가루들
등덜미에 잔소름으로 맺힌다
산란한 빗소리
속수무책.

  산란한 빗소리에 대상과 목적 없이 속수무책이라는 사자성어로 끝내버린 ‘깊은 졸음’은 정말 속수무책이다. 그 빗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외로운 섬처럼 떠 있거나 흔들리는 사람들의 가슴은 속수무책이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거나 상황을 즐기는 것 뿐이다. 졸음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볼 밖에.


080219-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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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2-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못 봤습니다.
덕분에 얼른 사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가네요.

sceptic 2008-02-19 21:1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즐겁게 음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