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최초의 문민 정부의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전공이 철학이었다. 세상이 달라졌나?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는 철인 정치였지만 진정한 철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철학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이상 국가가 실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노태우와 김종필, 셋이서 한 화면에 잡힌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철학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국가라는 제도와 형태 자체가 가진 모순을 완전하게 가릴만한 차양은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아나키즘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기 보다 국가를 비롯한 모든 권력과 제도에 대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이다.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한 개인의 생각을 적어 놓은 ‘마음의 철학’으로 보기에는 그 위치가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단순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했던 황제의 생각은 단순한 철학자의 그것과는 확연한 변별점을 지니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군주’가 지녀야할 덕목과 치세의 도를 말하는 처세술과 관련된 책이라면, <명상록>은 황제의 자리를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경험적 추론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2장 3절에 ‘네가 불평하면서 죽지 않고 즐겁고 참되고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으려면 책에 대한 갈증을 버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책에 대한 갈증으로 항상 목말라 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곰곰이 뜯어본 구절이다. 아는 것이 힘이거나 모르는 것이 약이거나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진정한 행복을 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 방법과 태도도 나름대로 다 달라진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필요한 것에 대한 ‘마음’과 그 마음을 다스리는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조언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시대를 초월해서 죽음과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간이다.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보편성에 기대어 개별적 상황과 개인의 특수성과 무관한 본성에 대한 인식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다. 로마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을 빌어 현재의 나를 돌아보겠다는 생각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주의 본성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와 넓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적 유용성을 전해주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로 로마의 황금시기가 저물 무렵에 황제에 오른 아우렐리우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우주 그리고 생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짧은 생에 대한 감각이다. 이 책에는 인간의 생 순간에 불과하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그 깨달음은 철학자나 황제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단순한 진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 생에 대한 인식과 그 찰나와 같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면 지나치게 건방져 보인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목소리는 높지 않고 차분하며 분명하고 명확하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놀라다니 이 얼마나 가소롭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인가!

  물론 이렇게 냉소적인 목소리로 놀라게 하기도 하는 12절 13장을 보면 냉철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살아 있는 친구의 충고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목적이 인류의 역사를 더듬거나 발자취의 향내를 맡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선인들의 지혜를 빌려 오늘을 살펴보려는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키에르케고르의 목소리가 뼈에 사무치는 순간과 마주치기도 하는 법이다.

  로마의 황혼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전장에서 일기를 적듯 쓰여졌다는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한 처세술로도 혹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인생에 대해 냉소하는 철학자의 고백담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 두고 두고 가슴에 새겨지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오래 남는다면 이 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070430-05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7-04-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읽으셨군요. 저는 구판으로 읽었는지라^^
참 배울 것이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그의 심오한 철학의 깊이 빠질 수 있었던 책이라고 할까요.

sceptic 2007-05-0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판, 신판이 상관있나요...암튼 이중, 삼중역보다는 천병희의 번역은 꼼꼼하고 주석을 통해 스스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