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역질이 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가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망토를 들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과 뮬을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다. 미의 기준이 아무리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지라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였던 그를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에 가깝다.

 조안 드잔의 <스타일 나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행의 근거지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미시사에 해당되는 이 책은 헤어드레서와 패션, 구두 부츠에서부터 샴페인, 거울, 우산,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물건과 패션에 관련된 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환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품과 허상이 빚어낸 꿈들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전우익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그걸 사면 버리고 또 사고 그리고 또 버리고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물건의 노예가 된다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스타일이라도 모방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람들에게 획일성과 유행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무리 사회에서 혼자만 고립된다는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을 이겨낼 만한 이념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얼마나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는지.

 전근대 사회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사치와 허영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다. 그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구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했던 민중들의 삶은 검은 밤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은 이면으로 사라지고 밝고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생활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며 그들이 선도했던 패션과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 산업과 패션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위한 소품들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또다시 자본의 노예가 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옷에 대한 관심과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어지러운 환각처럼 느껴진다.

 첨단 패션과 유행을 탄생시킨 루이 14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랑스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흉내 낸 유럽의 문화가 탄생했다면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 삐딱한 시선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 책은 패션과 유행에 관한 ‘스타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루이 14세와 당시의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그 이면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면사가 펼쳐진다. 스타일로 자신을 말하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책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일 매만지는 머리나 뿌리는 향수 그리고 보석이나 거울 하다못해 접는 우산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대답과 같은 책이다.  ‘스타일,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떤 패션과 유행이든 실용적인 목적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겠지만,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과 소위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과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책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이 책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일 뿐이다.


07021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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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설 잘보내시기를.......

sceptic 2007-0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