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생각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는 것이 많은 선생과 잘 가르치는 선생이 다르듯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글을 쓰는 능력은 사유의 폭과 넓이, 상상력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플러스 알파가 전제마저도 무력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진중권의 글은 적어도 내게 흡인력이라는 면에서 손 꼽을만하다. 숟가락을 허공에 든 채 만화 영화에 시선을 빼앗겨버린 어린 아이처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이론과 예리한 시선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실감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공허하게 들린다.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현실적인 공감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코미디 프로 보다 더 낄낄거리며 읽었다. 예를 들어 ‘포토샵, 일주일만 하면 황우석만큼 한다’는 인용문을 보고 대략 2분간 미친듯이 웃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이 새롭다.

 근대화에서 전 근대성 그리고 탈근대가 아닌 미래주의라는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인간개조에서 된장남과 된장녀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한국 사회를 요리한다. 독일에서 유학했던 경험이 이 책에서는 진중권의 제3자로서의 시각으로 돋보인다. 이 후 한국 사회에 돌아와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개성들을 날카롭게 그리고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국은 이래서 안된다’는 유의 책들과 다르고 ‘한국인은 이래서 뛰어나다’는 민족적 우월성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차분하지만 예리한 칼날로 단면을 드러낸다.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들춰내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드러내는 날카로움은 저자 특유의 글솜씨로 마무리된다. 강준만의 <인간사색>과 비교해서 읽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문제점을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은 아니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화상을 그려내는 데 서투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거울의 역할을 한다. 라캉의 말대로 거울을 통해 자의식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발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대중적인 글쓰기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라서 다양한 측면의 분석과 해석은 미흡하고 지나치게 주관적인 관점으로 서술되는 아쉬움은 상쇄될 만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군대다’라는 책이 나올만큼 기계화된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다.

창의성이 생산력이 되는21세기에 대한민국은 자신의 미래를 군대 훈련소에서 찾고 있다. 모자라는 상상력을 사디즘으로 보충하는 변태들이 너무 많다. - P. 37

 거침없는 표현과 실날한 비판의 메스는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독자에게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넘어 우리들의 자화상을 어떤 모습으로든 새롭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저자의 시선 속에서 21세기 한국인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우리들의 모습 사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국 사회와 마주하게 된다. 단편적인 이슈와 거시적인 담론의 틈바구니에서 마주치는 이 책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같은 달력을 사용한다고 같은 시대에 사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처럼 근대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된 사회에는 종종 전근대와 근대의 시간 축이 공시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 P. 110

 갈등의 근본 원인 중 하나를 근대와 전근대가 공존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정확해 보인다. 같은 달력을 사용하면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하는 내용은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하늘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 일보다 거울을 보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할 때가 있다. 코레아니쿠스의 축소된 자아가 나의 많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나는 아니라고 외치는 대신 큰 거울을 들여바 보는 일도 의미있다.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이제 거울을 들여다 보았으니 어쩐다. 머리를 빗을까? 아니면 화장을 할까?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려 버릴까? 너는 누구냐고 외쳐 볼까? 각자의 몫이다.

07012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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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3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진중권의 책은 인기가 많군요...리뷰 잘보고 보관함에도 넣었습니다.지금 당장 읽을 것은 아니지만.진중권이 그동안 냈던 -미학책을 제외한-책들 또는 계간지들에 올렸던 글들과 유사할 듯 합니다.갈등의 원인을 한국사회의 근대와 전근대의 병존으로 보는 것은 여러차례 썻던 글인가 같기도 합니다.엘리아스와 푸코의 예를 들면서 그 둘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계론적 방식에 대한 거부. 근대와 전근대,탈근대가 공존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기때문에 비단 한국 사회에만 적용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저자의 지적이 정확하다기 보다는 '8월에 물조심하라'말 만큼 보편적이라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럼에도 진중권의 책을 읽는것은 재미있습니다.

sceptic 2007-01-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에 물조심하라'는 비유가 적절합니다. 이 책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방식을 제 나름대로 읽어낸 거니까 진중권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겠지요. 관점이 새롭거나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드팀전님의 지적대로 저자의 지적이 정확하다기보다 말하기 방식이 재미있지요. 읽는 맛은 별미에 해당하니 저로서는 잘 참아지지 않습니다. 대리만족이든 대리배설이든 일단 시원하니까요. 대안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겠죠. 누구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