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서로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거나 극단적인 불행을 선물한다. 서로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으며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찢어지고 갈라진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을 때 불행은 시작된다. 특히 헤어진다고 해결되지 않는 가족 관계가 가장 심각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는 물론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관계의 출발이다.

<천 개의 공감>은 김형경의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타인에게 말걸기를 통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을 걸어도 좋겠다. 다만 말을 걸 수 있는 적당한 대상과 방법이 있다면 말이다. 한겨레 지면에 연재되던 코너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짤막한 사연과 자기 상황에 대한 문제를 보내면 김형경이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자기알기, 가족관계, 성과사랑, 관계맺기 등 4개로 나누어진 이 책은 아무 때나 어디를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짧은 글들 속에 압축된 상황들은 대개의 경우 일반적인 80% 범위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극도의 자기 부정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상처입는 사람들,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거나 대책이 없는 사람들의 괴로움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김형경은 거의 모든 경우에 예외없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사용하거나 시도하고 있다. 객관적인 분석이라는게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저자 나름의 잣대와 뚜렷한 방법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으로 스스로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내용은 개별적인 상황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공감이 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상에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의 경우 생각보다 해답은 간단하다. 내면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갈등과 고민이 적어질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단도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책은 자기 안에 있으며 문제는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당연히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계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사람들은 오히려 해법이 간단하다. 거울 마주보기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는 기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관한 문제는 쉽지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감정들과 부딪히게 된다.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우리는 가장 큰 행복과 생의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신을 비추어 봅기도 하며 인생을 가꾸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 맺기에 실패할 경우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넘어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특정인에 대한 관계가 전체로 확대되기도 하고 자신의 작은 문제가 타인들과의 관계 맺기에 지속적으로 간여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역에 대한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우리는 늘 고민하고 생각한다. 지혜롭게 그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의 생은 당연히 행복해 보이지만 그 방법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먼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며 타인들과의 관계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와 용기이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으면 타인을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용기가 없다면 실천할 수 없다. 저자가 요구하는 해결책들은 스스로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족한 상담자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 용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김형경의 잣대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에 있고 id, ego, super-ego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리비도와 집단무의식, 어린 시절의 억압과 어머니와 애정관계가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가족관계’나 ‘성과사랑’에 관련된 문제들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일 경우가 많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겠지만 개인적 성향과 상황들이 모두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적인 처방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 만능 열쇠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역할을 넘어설 수 없는 우가 많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거의 대부분 여성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상담자의 경우 상담자 자체의 문제를 부각시키거나 지적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상대에게 원인을 찾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여성은 가족 관계에서나 사회적 관계에서 약자인 경우가 많다. 감정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개별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도 생길 수 있어 아쉽다.

전문 상담가나 의사가 상담자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의 포괄적인 문제를 다룬 책으로서 ‘천 개의 공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책이다.


07010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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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님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었었는데, 작가분이 심리학 전공이신가요? 아무튼 좀 특별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어요. 근데 천개의 공감은 소설이 아니라 신문에서 상담사례를 모은것이었군요.

sceptic 2007-01-0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김형경은 국문학 전공잡니다. 신문과 한겨레 상담 코너의 칼럼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꼭 여성들만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주로 여성들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