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중요한 서류에 꼭 따라붙은 게 있느니 바로 도장이다. 최근에는 지장도 늘고 있다. 본인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사인, 정확하게 말하면 서명을 한다. 자기 이름을 자필로 적는 것이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이름을 써넣으면 어떻게 되지? 왜 서양에서는 동양처럼 도장을 사용하지 않지?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서양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문맹시대를 거쳐왔다. 글자를 안다는 건 아주 높은 계급에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평민이나 천민은 읽고 쓸 엄두도 내지못했다. 그 결과 계약서와 같은 문서에 자기 이름을 쓰는 풍습이 생겼다. 어차피 글자를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서명이 곧 권위를 인정해준 셈이다.

 

흥미로운건 누구나 글자를 알고 난 이후에도 이 전통을 지킨다는 점이다. 자기 이름이 곧 모든 결정의 주체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문맹시대를 겪은 동양은 왜 서명을 사용하지 않고 도장을 활용했는가? 인쇄술의 발달도 한 원인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계급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컸기 때문이다. 눈에 확실히 보이는 도장이 누군가 사기로 이름을 써놓는 것에 비해 확실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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