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투 운동 여파로 영원히 밝혀질 것 같지 않던 추악한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출발은 검사였지만 예술계를 거쳐 어디까지 이어질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남성 지배 체제였음을 뜻이다. 흥미로운 건(?) 이 논쟁에 진보, 보수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 진보는 양성평등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현실은 성욕(?)앞에 맥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구분이 없음이 아니라 이른바 좋은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었던 사람들의 이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피상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포장된 허상에 휘둘려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현상을 위선이라고 보았다. 곧 실제보다 과장되게 스스로를 착한 척 포장한 것이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나 얼굴이 잘 팔린 인간들이 이런 짓을 한다.

 

그러나 위선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위악이다. 자신의 처지를 극도로 비참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도움을 얻는 것이다. 어금니 아빠가 대표적인 예다. 장애인인 상황을 악용하여 패륜범죄를 저질렀다. 따라서 사회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대는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진짜 문제는 누구나 위선적이며 동시에 위악적인 면을 모두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는 너그러운 상사인척 하다가 집에 오면 아내에게 함부로 대한다거나 시민단체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면서 동시에 무단 횡단보도를 일삼기도 한다. 어쩌면 사람이란 본능적이라 감정의 노예인지도 모른다. 곧 어떤 사람이든 실수를 할 수 있다. 죄에 대한 평가는 법정에서 다투면 되지만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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