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만큼 애매한 관계가 또 있을까? 친구란 남남이 되거나 더 나아가 원수가 되기도 한다. 둘 사이에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끼면 또 어떤가? 작가들에게는 이처럼 뻔히 보이는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에 매혹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증국상 감독은 이 미묘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열과 봉합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김고은을 닮은 안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때 홍콩 영화가 붐인 적이 있었다.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등이 번갈아 등장하며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 중에는 대만 영화도 섞여 있었지만 굳이 구분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못 알아듣는 중국말이니까. 그러나 홍콩이 느와르였다면 대만은 사회성이 짙었다. <비정성시>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518 혹은 413에 해당하는 중국 본토인의 대만인 학살을 다룬 이 영화는 폭력 장면 하나 없이도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언젠가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우리처럼 민주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제약이 심하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대안으로 삼은 것은 청춘물이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안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대만의 연이은 청춘 연애물과 다른 점은 운명의 엇갈림을 다룬 것이다. 열세살의 나이에 만난 칠원과 안생. 둘의 우정은 잘생긴 가명을 두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결국 결혼식 전날 가명과 칠원은 헤어진다. 얼핏 보면 흔한 막장같지만 비밀은 다른 곳에 숨겨 있었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철저하게 여자들끼리의 우정, 애정, 증오가 한데 뒤섞여 있다. 젊은 날의 순애보 같던 영화는 롤로코스터를 타며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는 대목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의 뜻을 따라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칠원과 달리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삶을 꾸려가는 안생은 겉보기에는 자유롭지만 속으로는 찌들 때로 찌른 생을 살아간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은 가명이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면서 뒤바뀐다. 가명은 가정적인 여자로 칠원은 가명의 아이를 낳은 후 갓난애를 안생에게 맡기고 세계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 아닌가? 쉿,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이 영화의 진짜 비밀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잘 만든 영화에는 심오함이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