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활한 늙은이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자가 접대하는 술집에 딱 두번 가봤다. 이른바 룸살롱이다. 처음엔 망설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술을 따라 준다는게 어색해서다. 그러나 나를 위해 마련한 자리라 피할 수 없었다. 직장일이란 이처럼 내키지 않을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대충 분위기만 맞춰주고 자리를 마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가게 되었다. 이번엔 처지가 바뀌었다. 희한하게도 금세 익숙해졌다. 낯설기만 했던 붉은 조명이 어느새 편안하게 느껴졌다. 술집을 나와 집으로 가면서 결심했다. 관둬야겠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시인 최영미씨가 제이티비씨 뉴스에 나와 문단의 성희롱, 폭행 사례를 폭로했다. 상대가 늘상 노벨문학상 단골로 오르내리는 인물이라 파장은 컸다. <괴물>이라는 시를 읽어보니 더욱 적나라했다. 그 시인은 상습범이었다. 술자리에 젊은 여자 시인이나 편집자를 앉혀두고 주물럭댔다.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치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연상시킨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인이 검사보다 훨씬 더 자주 습관적으로 했다.

 

아직은 최 시인의 주장이라 정확한 실태를 알기는 어렵다. 한가지 분명한 건 그 시인이 무명이었을 때는 그런 짓을 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권력을 잡게되면서 어느새 부지불식간에 즐기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도 잘못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 대충 쉬쉬하니 급행열차는 계속 내달렸다.

 

문제는 시인이 여성에 대한 욕망을 창작의 원천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어차피 자신은 예술인이고 다른 사람과 다르니 원초적 욕구를 표출하는게 뭐가 문제냐라는 식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이미 창작자로서의 삶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곧 자신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위를 이용하여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차라리 어떤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면 이혼하고 바람을 피우는게 솔직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미투 운동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불공정하고 비정상적이었던 상황을 털어냄으로써 새로운 잣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또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시인 최영미씨의 용기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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