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안 84>가 럭셔리 하우스를 두고 미술학원에 더부살이하는 이유는 단지 허세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길들여진 안락한 습관과 결별하기 위해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단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뭔가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내적 고통에 시달린다. 수월하게 쑥 하고 결과물을 내놓은 이가 있다면 그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오리지널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만큼 괴로우니까.
기안 84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매주 인터넷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늘 1위를 지키던 그의 만화가 3등까지 떨어졌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 84는 순위가 떨어진게 중요한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가 새로 이사한 멀쩡한 집을 두고 한다리 건너 알게된 선배의 화실에서 숙식을 하며 수험생들과 부대끼면서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단지 괴짜여서가 아니다. 영감이 생기는 장소라면 어디든 가야한다는 절박함이다. 실제로 기안84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걷고 뛰고 먹고 마시고 소리를 지른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당사자를 포함한 창작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십분 공감이 간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느낀 감성을 짧게 적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무엇인가에 열중하느라 못한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억지로라도 문장을 만들어 깔끔한 글은 생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펜을 내려놓고 혹은 노트북을 닫고 영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은 어슬렁거린다. 천상 게으른 놈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제가 다가오고 전체적인 내용이 어른거리고 결정적으로 첫 문장이나 제목으로 뽑을 만한 글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때부터는 밤낮없이 열중하게 된다. 누가 말리든 상관없이 창작자의 숙명을 따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