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아침 일찍 얼어나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직장을 다닐 때는 잘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할 일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엄밀히 말하면 무언가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목적없이 방황할 뿐이다. 그나마 돈이라도 있다면 쇼핑이라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그저 길거리를 돌아다닐 뿐이다. 더위가 몰려오거나 추위가 닥치면 그들은 조금이라도 서늘하고 따뜻한 곳을 찾아 둥지를 튼다. 동네 도서관, 주민센터, 노인정. 그곳에 모여 끝도 없이 불만을 털어놓는다. 대통령 욕에, 젊은 것들 비난에, 왕년에 왕년에를 되풀이한다.
<갱년기 소녀>는 사회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잉여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소녀취향을 지닌 아줌마들이 어떻게 살인마로 돌변하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남편에게 줄곧 폭력을 당하면서도 한 때 피운 바람이 들킬까봐 숨직여 살다가도 거짓말로 남의 돈을 뜯어 먹으며 남 험담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홀어머니의 연금은 악착같이 타내면서도 빠칭코 돌아다니고 만화책 보는게 취미인 그녀들은 꿈을 꾼다. <푸른 눈동자의 눈>은 그렇게 갑자기 중단되어서는 안되었어, 우리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야 해.
마리 유키코의 솜씨는 놀랍다. 우리 같으면 복고풍으로 흘렀을 소재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며 날카롭게 잘 드는 칼로 후벼파고 있다. 이야기 중간중간 기사성 글을 집어넣어 현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스티븐 킹의 놀라운 데뷰작 <캐리>를 보는 느낌이다. 단연코 올해 발견한 가장 빼어난 작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