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한 장면. 수입업체에서는 이 영화를 '아름다운 영상 + 애절한 분위기'라 평했다. 딱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내게는 할로퀸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듯한 신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밀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오가던 중 여교수가 돌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유산 경험을 말하며 남자들을 공격해댄 것이다. 술이 취한 것도 아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짐짓 모른체 하고 있었다. 늘 있었던 일처럼. 알고보니 가끔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처음 들은 나로서는 매우 놀랐지만.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틱하면 도리어 감동이 사그러든다. 설마 저렇게까지. 등대지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여인. 첫 아이를 임신중에 잃고 어렵사리 다시 아기를 가졌는데 설마 또다시 유산. 둘 사이에 비극적인 암시가 짙게 드리워질 무렵 나룻배가 발견된다. 젊은 사내와 갓난 아기. 남자는 죽었디만 다행히도 아이는 살아있다. 여자는 운명이라며 자기 아기처럼 키우자고 하지만 남편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승자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성. 적어도 부부 사이에서는. 그러나 진짜 부인이 발견되면서 남편은 감옥으로 여자는 홀로 남겨진다. 시간이 훌쩍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고 돌봐주신 아버지를 만나 추억에 잠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신파지만 호주를 배경으로 한 장쾌한 자연이 오글거림을 다소나마 완화해준다. 감독은 코멘터리에서 관계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만들고 남을 속이는 사람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비밀이 드러났을 때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온갖 희망과 사랑은 사리지고 한 줌의 욕망만이 남는다. 

 

그 교수와는 밋밋하게 관계가 유지되다가 결국 소원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절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다. 자신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는 사람은 언젠가 내 이야기도 만들어서라도 나쁘게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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