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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마녀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박춘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7월
평점 :
이 이야기는 내가 아끼던 것이다. 언젠가 소설에서 활용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미리 살짝 공개한다. 작가는 자기 체험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그렇다고 경험한 잔뜩 있다고 술술 글로 나오는 건 아니다. 결정적인 장면이 거듭 거듭 머리속을 굴러다니게 만들어야 한다. 곧 언제나 꺼내 쓸 수 있게 생생하게 기억에 각인시켜두어야 한다.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날. 뿔뿔이 흩어지려는 순간 누구는 울고 어떤 병사는 웃는다. 본부에 남게 된 나는 따로 버스를 탈 필요없이 군장만 챙겨 걸어들어가려는데 부대장이 외쳤다. 뛰어. 다들 어리둥절해 서로 바라보았다. 뭐해, 다들 뛴다. 전방 앞으로. 그제서야 정신인 번쩍 든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진채 전속력으로 뛰쳐나갔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부대에 남게된 병사들에게 기합을 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힘들다기보다 희한하게 쾌감이 들었다. 그래, 이게 군인이지. 동시에 함께 뛰는 병사들이 이야기로 다가왔다. 구체적으로 한명 한명의 스토리가 내 머리속으로 들어왔다.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
다카기 아키미쓰는 미스터리 법정 소설의 대가다. 법과 관련되어 찾아온 사람가운데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가라면 탐나는 금광이다. 애정과 배신, 분노와 화해, 갈등과 협력이 공존한다. 속고 속이다가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손을 맞잡는다. 역설 또한 난무한다. 비싼 돈을 들여 사들인 변호사 보다 국선이 훨씬 더 논리정연하게 대응하는 박근혜 씨를 보라.
더욱 놀라운 건 이 글이 쓰여진 때가 1963년이라는 점. 그 때 이미 일본은 짙은 사회성 미스터리를 쓸 줄 알았다. 구름잡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와 달리.
덧붙이는 말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원작아이냐며 오해할 분들도 있겠다. 엄연히 다르다. 이 책의 제목을 살짝 바꿔 화제를 끌어보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