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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준지 자선 걸작집
이토 준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7월
평점 :
과학자들은 논문을 제출할 때 반드시 실험노트를 함께 낸다. 곧 어떤 가설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결론을 도출했는지를 밝힌다. 다른 누가 해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만약 예술가들에게 똑같은 방식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뜸 욕이 날아올 것이다. 날 뭘로 보고. 창작의 영감을 설명하라는게 말이 되나? 무식한 놈 같으니라구?
글쎄 사이언스든 소설이든 창작가가 자신이 어떻게 결과물을 내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엉터리가 아닐까? 실제로 나도 이런 방법으로 글을 썼다. 예를 들어 단편을 완성한 다음 이 글은 어떻게 생각이 떠올랐으며 써나가면서 느낀 감정을 짤막하게 후기식으로 달았다. 그래야만 독자들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가끔 덧붙이는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토 준지도 그랬다. 그의 독자라면 대체 당신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들어있길래 이토록 줄기차게 공포물을 그려내는 것입니까, 라고 궁금해했을 것이다. 이토는 자신의 저작집에서 그 비밀을 속시원히 밝히고 있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을 첨부한 아이디어 노트까지 함께. 괜히 대가가 아니다.
덧붙이는 말
이 책에 수록된 만화중 가장 섬뜩한 것은 <목매다는 기구>다. 여러가지 자살방식중 가장 이해 안되는 것이 목을 매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널리 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나라면 조용히 약을 먹고 자는듯이 죽어버리는 방법을 택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토는 아예 정면으로 달겨들었다.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