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마개가 없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데 총을 잃어버린 난감함이 온몸을 감싼다. 어떻게 하지? 분명히 조금전까지만 해도 목욕탕 늘 놓아두는 곳에 있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수영을 가지 말까, 라고 생각하다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낡긴 했어도 여벌이 하나 있었지. 여름내내 계곡에서 노느라 완전히 버리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어찌됐건. 무사히 헤엄을 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쓰레기통 옆에 있었다. 아마도 바쁘게 수경과 수영모로를 챙기다 떨어뜨린 모양이다.
살다보면 반드시 플랜 비가 필요하다. 곧 올인하면 낭패다. 언제나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인생은 예스와 노의 양자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을 하지만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바람직한지는 늘 의문이다. 그만두지 않고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아니 왜? 당장 돈이 끊기는데, 요즘처럼 직장구하기가 별따기인 시절에 무슨 헛바람. 아니다. 다른 무엇인가를 절실히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이 지겨워 도저히 버티기 어려울 때는 뒤로 몰러서야 한다. 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플랜 비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나온 말이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골격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석유에 의존한 전기 문명사회다. 석유와 전기라는 양 축은 세상을 풍요롭게 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길게 드리웠다. 바로 자연파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대표적인 예이다. 플랜 비는 이 두 주역을 대체할 사회를 고민하는 계획이다. 당장 실현이 불가능할지라도 꿈은 꾸어야 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주요 개념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시라. 직장 혹은 가족. 대게 이 둘일 것이다. 이 두가지는 살아가는 힘이 되는 동시에 엄청한 짐이 된다. 상상해보자. 직업이 없고 가정이 사라진다면. 불행하게도 실제 이런 분들도 있다. 아니 겉으로는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홀로 외로이 지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비극일까, 아니면 새로운 희망일까? 플랜 비의 처지에서 보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플랜 에이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마치 늘 쓰던 귀마개를 잃어버렸을 때 대체제가 있어야 하듯이. 요컨대 플랜 비를 준비하는 이유는 플랜 에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다.